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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즐거움/유목과 제국

[유목의 눈으로 본 세계사] 6부 헤로도토스의 기록, 스키타이.



유목민의 역사는 근대 이전 2000년에 걸쳐 세계사의 중심무대에서 주인공 역할을 해왔으나 기록된 역사가 별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정주민에게는 정해져 있는 테두리에서 토지를 나누고, 성을 쌓고, 체제를 계승하는 것이 중요해 일찍부터 기록 문화가 발달했지만, 말을 타고 대초원을 누비며 생활의 근거지를 바꾸어나갔던 유목민에게는 기록문화가 취약한 것이죠. 그 이유 때문에 유목의 역사가 오랑캐로 치부해 폄하되며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기도 하는 건데요,

 

[유목의 눈으로 본 세계사]는 저평가된 유목의 이야기를 표면 위로 부상시키는데, 그 일번 타자가 바로 스키나이입니다. 스키타이에 대한 이야기는 BC 424년 무렵에 간행된 헤로도토스의 역사(Histories)’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헤로도토스는 전문 여행가로 배를 타고 이곳 저곳을 떠돌며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들을 기록해 역사라는 역작을 남기는데 여기에 스키타이라는 유목민이 가볍지 않은 비중으로 언급되고 있는 겁니다.

 

그는 스키타이에 대해 스키타이족은 아시아에 살던 유목민이었다” “그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쟁기질도 하지 않는다” “스키타이족의 나라에는 어디에도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가 아는 모든 부족들을 능가한다” “그들이 추격하는 자는 아무도 그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무도 그들을 따라 잡을 수 없다” “그들은 도시도 성벽도 없고, 집을 수레로 싣고 다니고, 말을 타고 활을 쏘기에 능하고, 농경이 아니라 목축으로 살아가는데 그런 사람들이 어찌 다루기 어려운 불패의 부족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쓰고 있는데요, 당시 지중해 연안에서 스키타이의 위력은 정말 어마무시했던 것 같습니다.

 

스키타이는 성경에도 언급되는데요. 선지자 예레미아가 BC 629~588년에 기록한 구약 예레미야 6장은 보라 한민족이 북방에서 오며 큰 나라가 땅 끝에서부터 떨쳐 일어나나니 그들은 활과 창을 잡았고 잔인하여 자비가 없으며그들이 말을 타고 전사같이 다 항오를 벌이고 딸 시온 너를 치려 하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때 자비가 없는 북방민족이 바로 스키타이입니다.

 

스키타이 기마군단의 치고 빠지는 기동력, 잔근육에서 출발한 화살의 위력, 어디선가 바람같이 나타나 순식간에 상대를 초토화시키는 전술은 적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는데요. 스키타이는 BC 7세기 전반에 흑해 동안에서 강력한 유목민 세력인 킴메르를 쫓아내고 이후 흑해 및 카스피 해 북안과 서아시아 일대로 세력을 넓혀 강대한 세력을 형성했다고 하는데요, BC 514년 스키타이와 그리스 제압을 세계 재패의 핵심으로 봤던 페르시아 다리우스 대왕이 요놈 끝장 내야겠다70만 대군을 전쟁터로 보냈지만, 가뿐하게 제압했고, 이후 페르시아 제국은 대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스키타이하면 쳐다도 안봤다고 합니다.

이후 스키타이는 흑해 연안에서 카스피 해와 북부 돈 강 및 볼가 강을 건너고 우랄산맥을 넘어 몽골고원 동부의 알타이산맥 너머 알타이지역에 이르는 대교역로를 장악했는데요. 그들은 기마유목민족 문화와 서방문화를 융합해 스키타이 문화라 일컬어지는 고유의 문화를 창출하고 동서교역로를 통해 이를 전파했다고 합니다. 이 동서교역로에서는 가축, 모피, 갑옷, 금속제품, 장신구, , 황금, 청동기, 견직물, 올리브유, 포도주, 직물 등 다양한 물품이 오고 갔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스키타이는 하나의 민족 또는 국가를 의미하는 걸까요? 헤로도투스의 역사를 살펴보면 스키타이는 스키타이인의 땅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리스 계통의 스키타이인,농경 스키타이인, 유목 스키타이인, 왕령 스키타이인 등 다양한 스키타이인이 존재했다는 것이죠. 실제로 스키타이는 다양한 중층 구조를 이르며 유라시아에 넓게 분포되어 있었는데요, 종합 명칭은 왕족 스키타이에서 유래했지만, 권력의 중심이 되는 집단을 중심으로 결성된 대형 광역의 하이브리드 정치 연합체였던 것입니다. 스키타이는 인종, 생업이 무엇이든 자기가 소속되어 있다고 의식하는 최대의 정치, 사회 단위, 인데, 이건 민족 단위의 민족 국가와는 명확히 구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결속과 연합의 핵심 고리가 헐거워지면 쉽게 뭉치듯 쉽게 와해되기도 하는데요(p. 118), 스키타이 역시 역사 구조의 전환기로 꼽을 수 있는 알렉산드르 대왕의 시기, 그러니깐 기원전 4세기 경 쇠락하기 시작해, 동방에서 진출한 사르마타이(사르마트)라는 집단에게 밀려 서쪽으로 이동했으며 기원전 3세기 중반에는 완전히 해체됩니다(p.120). 흥미로운 것은 동방에서 진출한 사르마타이 역시 곧 중앙아시아 방면에서 밀려온 훈족에 병합된다는 건데요. 서북유라시아 방면에는 이러한 패턴, 즉 동쪽의 흐름이 서쪽의 바람을 압도하는 패턴이 지속됩니다(p. 121).

 

스키타이로부터 시작하는 유목의 역사는 몇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웅변해줍니다. 초원을 배경으로 한 권력의 중심에는 이동성, 집단성, 기동성, 전투성이 뛰어난 군사집단이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위력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다는 단순한 사실. 이에 더해 권력과 영토를 넓히기 위해 연합체의 측면을 보유하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것, 마지막으로 인종주의, 지역주의를 넘어선 하이브리드적 성격이 두드러지고, 근현대에 직조된 민족 같은 좁고 단단한 틀로는 적용할 수 없다는 사실 등이 놓쳐서는 안 되는 요점인 것 같습니다. (p. 129).

 

 

참고문헌)  최초의 유목민 기마군단 스키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