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부의 즐거움/유목과 제국

[유목의 눈으로 본 세계사] 3부 유목의 무대, 중앙유라시아2


오늘은 몽골고원의 서쪽을 집중 탐험해보려 합니다. 하늘과 맞다은 천산(톄산)에서부터 시작해보죠. 천산이라 불리는 톈산은 만년설로 덮인 곳으로 유목민과 오아시스에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성스러운 산이었습니다. 천산의 북쪽은 삼림과 초원이 펼쳐져 있고 녹음이 풍부하다고 합니다. 시베리아에 불어온 습기와 천산을 넘지 못하고 북쪽 기슭에 머물기 때문이죠. 특히 천산 북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이리강 주변은 유목민들이 서로 자기 게르를 세우기 위해 치열하게 치고 박고 했던 곳이었습니다. 나중에 좀 더 살펴보겠지만 서돌궐, 차가타이한국, 중가르왕국 모두 이 주변을 삶의 거점으로 삼았죠.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톈산산맥에서 내려와 발하슈호로 흐르는 이리강을 지나는 대초원은 천지창조를 떠올리게 할 정도의 경치를 보여준다고 하네요.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 마음 먹으면서...


천산산맥



천산의 북쪽이 풍부한 녹음으로 이루어졌다면 남쪽은 건조의 극강이 무언지를 보여줍니다.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대표되는 천산 남쪽은 오아시스 루트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마르코폴로 등이 오간 동서 교통의 주요 간선도로였던 것이죠. 우리에게 익숙한 실크로드 길은 사실 천산의 북쪽이 아니라 천산의 남쪽 기슭을 잇는 오아시스 루트인데요, 이 길이 유명하게 남은 것은 기록 때문이죠. 유목민들은 거의 기록이란 걸 남기지 않고 기록을 중시한 중화왕조들이 서방 개척을 단행할 때 점령해간 곳인 쳔산 남쪽의 오아시스 도시국가이기 때문에 여기에 유명해진 거랍니다. 그런데 좀 더 동서를 쉽게 오갈 수 있는 자연 환경은 천산 북쪽에 마련되어 있죠. 왜냐면 거기는 살기 좋은 곳이니깐요.

천산 지역은 역사적으로 유목민의 슬픈 영혼이 잠든 곳이기도 합니다. 청나라의 3대 천왕 중 한 명인 건륭 시대에 서역 개척은 끊임없이 이어지는데요, 당시 이리 계곡에 근거지를 둔 중가르 왕국은 청군에 의해 거의 몰살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 수가 60만 이상이라고 하는데요, 이게 정말이야? 상상이 잘 안됩니다. 중가르 왕국을 최후의 유목민이라 부른다고 하는데요, 이 정도의 말살이었다면 거의 세계의 종말에 버금가는 것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가르 왕국이 무너진 후 유목민의 세계였던 천산 북쪽은 한족 농민들이 이동하면서 농경 지대로 탈바꿈합니다. 중가르 왕국뿐만이 아닙니다. 청왕조는 천산 남쪽의 오아시스 도시들도 차례대로 정복해가는데요. 건륭제는 이 지역을 새로 개척하였다 하여 신강이라 부르고 이리 장군을 두어 통치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신장위구르 자치구가 되고, 이리 장군의 이름을 본따 그곳을 흐르던 강물은 이리강이라 명명됩니다. (p. 67)


@파미르고원


다음으로 파미르 고원과 티벳고원으로 가보겠습니다. 파미르고원은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타자키스탄, 신장위구르 자치 지역에 위치하는데요, 세계의 지붕이라 불립니다. 파미르 고원은 해발 5,000미터가 넘는 산맥들로 구성된 하늘과 맞닿아 있는 곳입니다. 이보다 더 험하고 높은 곳이 바로 파미르고원의 남동쪽에 솟은 티베트고원이죠. 얼마나 험한지 티벳고원 중앙 부분을 돌파한 부대는 체왕 랍탄Tsewang Rabtan이 거느린 3000명에 이르는 중가르 청기대뿐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빛이 넘치고 공기가 희박합니다. 습도가 낮으며 태양은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피부는 햇볕과 눈에 그을어 까맣고 주름은 깊습니다. 자연의 힘에 압도되는 이 지역은 왕권보다 종교가 우월한 세계였습니다. 언젠가 티베트 불교를 공부해볼까 고민하는데요, 그 이유는 하나, 몽골제국을 위시해 유목의 제국에서 티베트 불교는 자주 소환되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달라이라마의 권위는 오랜 시간 티베트 지역을 넘어 중앙아시아 광대한 지역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제 좀 더 서쪽으로 가보겠습니다. 파미르고원에서 발원한 아무다리야강과 시르다리야강이 서쪽으로 흐릅니다. 두 강이 좁아지는 곳은 오아시스 지역을 이루고 흥망의 여러 유목민들이 이 곳을 차지하기 위해 분투하는데요, 고대에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옥수스oxus 강 너머의 땅이라 불렀습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 시절 아케메네스왕조가 지배한 동쪽의 끝이 아무강이었다는 것에서 유래합니다. 페르시아는 아무강 너머를 문명 바깥의 땅으로 간주했지만 이곳에는 오래 전부터 이곳에는 소그드(본래 스키타이인이라 불림)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소그드인은 아케메네스제국을 굴복시키고 동쪽으로 진군해온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군대에 맞서 3년이나 버틸 정도로 지독히도 강한 사람들이었는데요, 소그드 상인들은 이 지역을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13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동서유라시아를 아우르는 제국으로 자리했던 투르크제국, 이른바 돌궐은 소그드인을을 경제 정치 외교 첩보를 위한 협력자로 활용했다고 합니다(p. 79).

 

힌두쿠시 산맥의 남쪽 산기슭 카불


이 지역의 역사와 지세를 좀 세세하게 보면 동서의 움직임과 별도로 남북에 결쳐 오버랩되는 종적 관계의 구조도 있는데요, 북쪽에서 남쪽으로 5개의 층이 연결됩니다. 우선 제 1! 시르다이강의 북쪽. 그곳은 유목 초원으로 천산 북쪽의 푸르른 초원과 연결됩니다. 2층은 아무다리야강 북쪽의 오아시스 지대로 사마르칸트, 부하라 등의 집락지가 전개된 마 와라 알나흐르라 불리는 곳입니다. 마 와라 할나흐르[Mā warā al-Nahr]는 강(아무다리야) 저편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3층은 아무다리야 강의 남쪽으로 힌두쿠시의 높은 준령과 맞닿아 있는 아프가니스탄과 투르키메니스탄입니다.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진 건조한 땅입니다. 4층은 힌두쿠시 남쪽 기슭에서 간다라 등 북서 인도에 이르는 지역이구요, 5층은 북인도의 인도-갠지스(힌두스탄) 평원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제2,3 혹은 제4,5가 서로 조합하며 움직였다고 합니다. 멀리로는 쿠샨왕조 (105~250년경), 에프탈(5세기 중엽~6세기 중엽)을 꼽을 수 있구요, 이들은 힌두쿠시 북쪽에 본거지를 두었다네요. 남북으로 펼쳐진 조합과 그 역사적 전개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는 티무르왕조(1369~1598)인데요. 티무르왕조는 마 와라 알나흐르에 본거지를 둔 대제국이었습니다. 최후의 중앙아시아 제국이기도 하구요. .


티무르왕조에서 좀 흥미로운 인물이 자히르 알딘 무함마드 바부르(1483~1531)인데요, 그는 아버지를 통해 티무르를 어머니를 통해 칭기즈칸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합니다. 13세기~15세기 중앙아시아의 두 영웅의 피를 고스란히 받은거죠. 피에 흐르는 역사의 DNA는 대단하지만 중앙아시아에서 현실은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작은 왕국을 세우지만 연이은 전투의 실패로 인도로 피난을 가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로디 왕조를 멸망시키고 무굴왕조를 건설하는데요, 페르시아어로 무굴은 몽골을 의미한다고 하네요. 그러니깐 우리가 세계사에서 배운 무굴왕조는 알고보면 인도의 왕조가 아니라 중앙아시아의 유목민, 좀 더 구체적으로는 티무르왕조의 남하에 의해 세워진 왕국이었던 것입니다.(P. 13)


이 남하가 이루어진 게 16세기인데요, 이 시기의 세계사가 흥미롭습니다. 중앙아시아의 유목의 거두 티무르왕조가 인도로 남하를 하고, 인도양에서는 포르투칼을 시작으로 서유럽의 출몰이 나타나기 시작한 거죠. 무굴왕조를 둘러싸고 땅과 활의 시대와 바다와 총포의 시대가 동시에 존재한 겁니다. 이 구조는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영국의 인도대륙 지배와 방위를 위한 북상, 남하를 도모하는 러시아와의 대립, 여러 차례의 아프간 전쟁, 완충국으로서 아프가니스탄의 확정 등은 그 후에 전개될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P. 83).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지뢰밭은 어쩌면 이 거대한 종적 관계의 역사 속에서 이해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구요.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총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