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는 클라스]에 생활형 검사라는 꼬리표가 붙는 김웅 검사가 출현했습니다.
우선 김웅 검사는 <검사내전>이라는 에세이집으로 셀럽에 등극한 분인데요,
문유석 판사와 함께 법조계의 스타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검사내전>, 김웅 검사에 대해 궁금하다면 다음 두 곳을 구경하면 좋을 듯...
각설하고, 바로 프로그램으로 직행을 해보면..
이번 클라스의 주제는 “법대로만 하란 법 있나요?”
김웅 검사는 말합니다.
법은 분쟁을 해결하는 여러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것도 단점도 많고 에너지도 많이 들어가는 방법이다!. 그래서 가장 마지막으로 써야 할 도구다! 주의할 것, 공정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어찌보면 뻔한 이야기를 형사법의 탄생 배경과 역사 속에서 조근조근 이야기하는데요,
일단 목소리와 인상이 참 좋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에 흡입력이 있더라구요.
전 세계적으로 범죄 중 가장 많이 발생하는 유형은 절도라고 합니다. 사유재산제가 발달한 시스템에서 거의 부동의 1위라고 하는데요, 우리나라만는 조금 예외라고 해요. 우리나라 1위 범죄는 바로 사기! 1년에 총 25만건, 형법 범죄의 25%, 전체 범죄의 12.5%가 사기라고 하네요.
우리나라는 왜 유독 사기가 많을까요? 이걸 김웅 검사는 제도에서 이유를 찾고 있습니다. 절도나 폭행이 우발적일 수 있다면 사기는 100% 계획적이죠. 호모사피엔스라는 동물들. 잔머리 굴리기의 고수죠. 잔머리 사기꾼들은 늘 기대수익과 리스크를 계산하며 범죄를 도모하는데요, 우리나라의 경우 이 잔머리를 굴릴 때 손해보다 기대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합니다.
형법상 사기죄 형량은 고작 10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 법원의 양형 기준상 일반사기(1억원 이하) 기본형량은 징역 6월~1년6월에 불과하다고 하네요.
너무 낮은 거죠. 형량이 낮으니 갈수록 죄에 무뎌져 범행은 반복되게 되죠.
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사기범이 처벌을 받은 뒤 다시 사기죄를 저지르는 비율(동종 재범률)은 38.8%. 전체 범죄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하네요.
사기가 횡행하는 곳은 대부분 서민들이 밀집한 지역에 집중합니다. 시골 할머니들, 동네 시장 상인들, 사람 좋고, 잘 믿는 사람들이 사기꾼의 1순위 표적이 되는 거죠. 법이 이걸 방치한다면 공동체가 점점 더 각박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누군가의 피눈물을 보게 한 사람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댓가는 있어야 하는 법인데, 아직 우리 법체계는 적어도 사기범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가봅니다. 그래서 정치도, 경제도 사기꾼 천지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다면 어떻게 사기꾼에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김웅 검사님의 처방은 간단하면서 어렵습니다.
첫째, 내 욕심, 내 탐욕만 잘 조절하면 사기당할 일 없다! 그러니깐, 고수익 올려드린다, 원금 보장해 드린다, 이런 말에 혹하지 말라는 겁니다.
둘째, 선의는 자신이 베풀어야지, 타인에게 바라서는 안되는 것, 타인의 선의를 근거없이 믿으면 안된다는 건데요, 좀 서글픈 처방이죠. 타인의 선의는 믿지만, 금전에 대해서는 단호함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네요. 셋째, 어설프게 아는 것은 사기 당하는 지름길이라고 합니다. 주식, 부동산, 이런 게 딱 그런 케이스겠죠.
일단 사기 범죄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매듭짓고, 다음으로 김웅 검사가 달려가는 이야기는 검사의 공권력입니다.
사기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라도 검사의 공권력을 엄청나게 높여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는 게 김웅 검사의 이야기입니다. 막강한 공권력은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연결되기 때문이죠. 저는 한번도 검사의 역할이 무언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검사의 역할이라는 것은 피해자가 아니라 피의자의 기본권 보호라고 합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거기서 나온 거죠.
그러다보면 피해자들이 너무 화가 나지 않을까, 이런 질문이 떠오르는데요, 사실 엄청난 강력 범죄의 경우에는, 게다가 대중과 여론이 “이 새끼 죽여야 돼!”같은 감정이 주변을 두텁게 색칠할 때 검사 개인도 그 감정으로부터 자유롭기가 쉽지 않겠죠. 인간이니깐요. 그래서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던지, 미란다 원칙이라던지, 절차만 지키면 피의자의 기본권이 보호될 수 있도록 법집행 과정이 복잡하게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검사제도와 사법제도의 기원에 대해 조금은 이해해야 하는데요,
이 부분을 설명하는 김웅 검사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문명이 탄생하고 언제든 누구든 갈등이 있었겠죠. 이 해결책을 제시한 최초의 법이 함부라미 법전입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탈리오법칙,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법칙이 이야기되는데요. 이는 사실 약자 보호법입니다. 무제한 보복을 제한하고 당한만큼만 돌려주라는 거죠.
이 법이 만들어진 후 1,000년을 훌쩍 뛰어넘으면 소크라테스 법정을 마주합니다. 기원전 399년이죠. 시민 대표 500명이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듣습니다. 변론을 들은 후 시민들이 투표하여 30표차로 유죄판결을 받는데요, 이 시절 그리스 재판의 특징은 민중 재판이었습니다.
다음으로 로마시대, 황제권이 확립된 후 재판은 황제나 총독이 주관했다고 하는데요, 이때의 가장 상징적인 재판은 로마 시대 유대 총독이었던 빌라도 앞에서의 예수 재판이었죠. 교회를 가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사도신경을 들어본 적 있을 텐데요,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여기에 나오는 빌라도를 말하는 건데요, 사실 빌라도는 예수를 사면하려 했다고 해요. 빌라도가 보기에 예수는 아무런 죄가 없었던 거죠. 그런데 격분한 유대인 대중들이 예수를 죽이라고 아우성이고, 이 여론에 빌라도도 어쩔 수 없었던 거죠. 이때도 느낌은 민중 재판과 비슷하죠?
기원 후 4세기 로마가 무너지고 구성된 게르만 시대, 이때는 보복이 곧 법이었다고 해요. 게르만족에는 전통적으로 친족간의 부양과 복수의 의무가 내려왔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보복이 법의 근간이 된 것이죠. 그런데 맨날 복수를 하다보면 모두가 모두를 죽이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죠. 그래서 만들어진 게 배상금 제도입니다.
근데 이 제도도 8세기가 되면 유명무실하게 됩니다. 게르만 사회가 공중 분해하면서 화폐경제가 무너진 거죠. 그러면서 중세시대, 그 유명한 결투재판이 재판 절차에 공식화됩니다. 니가 죽든 내가 죽든 끝장을 보자! 결투 당사자들은 죽을 것을 각오하고 미리 관과 덮을 천을 준비해서 나왔다고 해요.
그리고 또 하나의 골때린 재판, 바로 종교재판이죠. 이것도 결투재판만큼 심플합니다. 모든 것은 신이 결정한다. 신이 무고한 이는 지킬 거다. 그러니 너 이놈! 뜨거운 물에 들어가라 뜨거운 물에 담갔는데 화상이 없으면 무죄, 싫다고? 그러면 차가운 물에 들어가라. “악마는 사람을 가볍게 만드니깐” 물에 뜨면 사형.
사실 이건 이미 대중에게, 교회에게, 낙인찍힌 사람들을 죽이는 재판이었답니다. <왕좌의 게임>같은 미드가 어떻게 나왔을까 생각하니 이런 거친 역사적 배경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 야만의 시대를 지나 1214년 교황의 권력을 절정으로 올려놓은 인노첸시오 3세가 소집한 제4차 라테리노 공의회에서 카톨릭교회를 쇄신하는 일환으로 종교재판을 금하고 당사자가 직접 변론하는 당사자주의를 채택하는데요. 이건 한마디로 재판부가 증거를 찾으라는 거였습니다.
와~ 이렇게 서구에서 야만의 시대가 종언을 고한 걸까요? 천만에, 만만에요. 당시 프랑스 남부를 중심으로 카타리파라는 한 기독교 분파가 있었는데요, 이들은 예수의 부활을 믿지도 않고 교황청 권위도 인정하지 않았대요. 이들파는 세상의 권세와 육체와 물질은 렉스 문디라는 불리는 악마가 전유하고 사랑과 평화, 질서는 하나님이 전유하는 것으로 구분하고,,삶의 희망은 물질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봤다고 하는데요. 탱탱한 육체와 금딱지로 무장한 로마 카톨릭의 입장에서는 이들을 가만둘 수 없었겠죠. 이단으로 규정하고 잡아들이기 시작하는데... 그런데 이단이라는 증거가 없는 거예요. 재판부가 증거를 찾을 수 없는 상황.
이때 나온 게 자백이라는 고백적 증거이고, 이 증거를 뽑아내기 위해 고문이 시작됩니다. 자백을 얻으려 각종 고문술이 발달한 거죠. 고문을 못견뎌 이단임을 인정하면 곧바로 화형장으로, 고문을 버텨내면 마귀가 씌운 걸로 불 속에 넣었다고 하네요.
이 야만의 종언이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었는데요, 그 기본정신은 인본주의이고, 그걸 상징하는 대표적인 게 단두대였대요. 그 전에는 죽여도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였다면, 단두대와 함께 죽일 때 단칼에 죽이게 된 거죠. 인본주의 도입으로 사법제도도 바뀌게 되는데요. 민중을 대변하고 법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육성하자, 그렇게 만들어진 게 검사제도이고, 그래서 검사제도는 기본적으로 국가의 공권력, 사법권을 견제해 국민을 보호하라는 취지하여 만들어진 거라 합니다.
이 제도는 1846년 프로이센을 통해 성공적으로 제도화되었는데요, 그렇다면 과연 18세기 이후 검사들은 인본주의의 대표주자, 정의의 사도였을까요? 에이 설마. 그도 사람인데.. 게다가 힘있는 사람이 스스로를 정의라고 생각하면 반드시 잔인해지죠. 다른 생각을 억압하기 때문이고 자신의 정의를 강요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검사 체계의 정착에서 중요한 것은 검사 개개인의 정의가 아니라 절차적 정의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는 자주 절차라는 걸 귀찮은 형식으로 치부하는데요. 저도 실은 그렇습니다. 끙. 그런데 이게 무시될 경우 아주 쉽게 마녀사냥과 재판이 반복될 위험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비근한 예로 한 누리꾼이 버스에서 4-5살쯤 돼 보이는 아이가 버스 인파에 떠밀려 내린 후, 어머니만 싣고 그대로 달리는 일이 일어났다고 인터넷에 갈긴 후 문제가 되었던 2017년 ‘건대 240번 버스 사건’, 두 아이와 엄마가 상시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며 기자회견을 했던 2014년 ‘세모자 성폭행 조작 사건’, 2012년 한 맘카페 회원이 채선당 직원에게 배를 걷어차였다고 주장해 논란이 됐던 ‘채선당 사건’,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척결, 분노, 마녀재판의 반복이 이루어지죠. 세 사건 모두 거짓으로 판명되었죠. 절차적 정의가 속터지고 지겨워도 반드시 필요한 이유입니다. 절차가 없으면 검사도 휘둘리고, 대중의 분노와 수사권이 결합하면 없는 일도 만들 수 있다는 김웅 검사의 이야기는 곱씹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피해자의 인권만큼 피의자의 인권도 중요하다.
가짜 뉴스가 창궐하고, 그 뉴스에 달리는 댓글들이 점점 더 강팍해지는 시대에 어쩌면 “절차적 정당성”, “절차적 정의”는 갈등과 논쟁의 국면에서 불편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좀 더 정교하게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인간이 “괴물”은 되지 않는 방편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마주하게 한 <차이나는 클라스>는 분명 차이나는 강연 프로그램이 분명합니다.
오랜만에 똑똑해진 느낌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절차" "과정" 이런 것을 무시하지 말아야지. 그건 어쩌면 답답해도 나의 오류, 감정의 소용돌이를 걸러내고 그래도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게 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인지도 모르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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