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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내 맘대로 감상문

[대화의 희열] 김숙의 자유로움


[대화의 희열] 1회는 재미있습니다. 왜 재미있었을까, 생각해보면 그건 90% 갓숙때문입니다. 첫 방송 시청률은 2.1%. 수치는 정직합니다. 나는 재미있게 봤어도, 대부분은 그러지 않았다는 겁니다. 갓숙의 이야기를 듣는 패널은 공교롭게도 중년 아재들로 수렴되었고, 그 중 누군가는 잘 듣지 못했고, 누군가는 어색했고, 주변의 경쟁 프로그램은 너무 강력했습니다. 방송 종료 후 인터넷에는 수많은 질타가 쏟아졌습니다. 갓숙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패널은 죄다 아재새끼들인 거냐? 이런 지적들을 어떻게 듣고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어쩌면 [대화의 희열]의 생로병사를 판가름하는 주요한 준거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이 프로그램이 좋았습니다. 내가 왜 “김숙을 좋아하는 지를 이해하게 돼서 좋았고, 방송에서 여성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어서 좋았고, 게임 중독에 빠진 삶이 무엇인지를 듣게 되어 좋았고, 그 중독에서 벗어난 계기와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어 좋았습니다. 만약 [대하의 희열]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사적이고 깊은 이야기를 다양하게 꺼내 놓을 수 있다면, 그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이면서 너의 이야기라면, 그리고 그 이야기로 누군가가 선한 자극을 받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면 이 프로그램은 누군가에게는 적지 않은 희열을 달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화의 희열]을 보면서 김숙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갓숙, 퓨리오숙, 가모장숙, 숙크러쉬 등 다양한 별칭으로 불리는 김숙을 떠받치는 담론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여성주의일 겁니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던가 여성주의라고 이야기하지 않지만 스스로 체득하고 육화시킨 스타일로 여성 동지들의 엄청난 지지와 응원을 받는 우리의 갓숙.. 2010년대 중반<님과 함께 2: 최고의 사랑>을 중심으로 김숙은 수많은 토크쇼에서 남자가 조신하니 살림 좀 해야지”, “갖은 남자짓다하고 있네”, “어디 아침부터 남자가 인상을 써?”, “남자 목소리가 담장을 넘으면 패가망신한다는 얘기가 있어”, “집안에 남자를 잘 들여야 한다더니.”처럼 남성 중심의 가부장을 비트는 말들을 속사포처럼 쏘아대면서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하던 2010년대 예능은 사실 남자들의 무대였습니다. <무한도전>, <12>로 대표되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다양한 흠과 결함이 있는 남성성을 캐릭터로 그 저변을 확대해갔다면 여자들의 이야기는 주변부로 사라져간 시대였던 거죠. 생존할 생태계가 기존의 TV무대에서 사라지자 김숙, 송은이 등 절친 여성 연예인들이 주목한 것은 인터넷 영역이었습니다. 20154, 송인이와 김숙은 사재를 털어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런칭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강력한 두 사람의 만담 케미와 에레나 선생님으로 분한 김숙의 속시원한 고민상담, 그리고 지인들과의 전화 연결을 통해 대히트를 칩니다. <나는 꼼수다> 이후 팟케스트 세계에서 <비밀 보장>은 독보적인 자기 지대를 구축하게 된 것이죠.

 

이 프로그램에 열광한 것은 단연 여성들이었습니다. 왜 무엇이 이 팟캐스트에 열광하게 만든걸까요? 이에 대해 심혜경씨는 다음과 같이 진단합니다

 

초반에 유료 광고가 없어서 황보카페, 마반장, 김영철 같은 지인들의 개인 사업 광고를 삽입해 웃음을 끌어냈고, 저작권 문제로 기존 라디오처럼 음악을 틀 수 없어, 이영자의 넋두리, 유재석의 염려, 김영철의 자기 자랑, 이성미의 기도 같은 친한 연예인들의 음성을 전달한 것도 인기의 비결이 되었다. 특히 여기에서 매력을 발산한 것은 송은이보다는 김숙이었는데, 송은이가 보수적인 지상파의 윤리와 감각을 놓지 않고 안정적인 진행을 하는 반면, 김숙은 비속어를 적절히 사용하면서 청취자들의 색다른 경험들에 가치를 부여하고 가부장적인 규범에서 내리는 정답(?)보다는 다른 해결책을 제시했다. , 그녀는 자신만의 매력적인 통찰력(혹은 본능적 방어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는 그녀가 밝히는 것처럼 딸 다섯 중의 막내로 살아온 이력과 그간 연예계 생활 속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함부로 다뤄지거나 같은 행동을 해도 다른 개그맨과는 달리 여자가 무슨 짓이냐’, 비슷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여자라 안 된다며 거절당한 경험 속에서 나온 것일 게다.(여성이론, 2016,5, p. 72).

 

김숙이라는 존재는 남성중심의 가부장제와 우리 사회의 권위주의에 저항하고 반항한다는 측면에서 대중의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이 저항의 방식이 결핍이 아니라 당당함, 콤플렉스가 아니라 (긍정적 의미에서) 자기애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배 이성미를 처음 만났을 때 우쒸, 선배가 인사를 안 해?”라며 위계가 강력한 개그계를 조롱한다든지, 선배 이봉원이 10만 원짜리 수표를 주며 담배를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자 10만원 어치 전부를 사갔다든지 하는 일화들, 누군가 권위로 누르려 할 때 상처주네?”라고 담백하지만 강력하게 짚어주는 것 등은 김숙을 갓숙으로 만든 소소한 일화들입니다.

 

다음주면 [대화의 희열]에는 새로운 사람이 나올 것이고, 갓숙의 인기는 언젠가는 사그라들 겁니다. 그러나 그때 즈음이면 갓숙은 그게 뭐?”하며 툭툭 털고 일어나 어디 이타카의 해변에 앉아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김숙이라는 한 인간에게 내가 왜 매력을 느꼈는지를 [대화의 희열]에서 알게 됐습니다. 그걸 굳이 하나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자유로움이었습니다. 권위에 주눅들지 않고 늘 새로움을 열망하는 김숙의 당찬 행보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너에게 선한 자극을 줍니다. 그래서 그의 삶을 응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꾸 누군가에게 꼰대짓을 하고파지는 마음이 근질거릴 때 갓숙의 명언을 잊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네가 문제야!”소


 

[부록] 김숙의 말말말

즐거움에 대하여

무엇을 해서 즐거운 게 아니라 가만히 있어서 즐거운 게 분명 있거든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생각할 거리가 많아져요. 기존의 관심 영역을 넓혀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기도 하고요. 그렇게 해서 생긴 취미가 목공, 가야금, 피아노, 기타 연주, 오페라, 여행이에요.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뭐든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새로운 즐거움도 찾게 되고요.”

 

여행에 대하여

““큰맘 먹고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는데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삶과 전혀 딴 세상이더라고요. 늘 방송국과 집만 오가며 프로그램 하나에 연연하고, 방송국 연락 기다리고, 개편 때 맘 졸이면서 살았는데, 그게 얼마나 좁은 세상인지 알게 된 거죠. 그때부터 가치관이 바뀌었어요. 유연한 삶의 자세도 배웠고요. 여행을 즐기다 보니 열정이 다시 끓어오르는 것 같아요.”

 

나이듦에 대하여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경험이 쌓였다는 것이지 새로운 정보를 더 많이 안다는 건 아니에요. 때문에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것에 귀를 열 줄 알아야 해요. 이미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꼰대가 되기 십상이죠. 제가 다양한 분야를 접하고 공부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문화 생활을 하면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삶이 풍요로워지거든요. 문화 생활을 허세나 사치라고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마음으로 아낌없이 즐겼으면 좋겠어요.”

 

여유에 대하여

-조금씩 진짜가 되어가는 것 같긴 해요. 실수를 인정하고 부족함을 인정하니 조금씩 진짜가 되는 기분이랄까요. 또 예전에는 두렵고 불안해서 시도하지 못했지만 여유가 생겨 이것저것 다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에 은이 언니와 모바일 방송국을 만든 것도 그런 이유예요.

 

채우고 싶은 것

-지적 능력요. 책 보는 것도 좋아하고 배우는 것도 좋아하는데, 요즘 너무 바빠서 공부할 시간이 요만큼도 없거든요. 여행은 꿈도 못 꾸고요. 그나마 다행인 건 제가 지금 1~2년 차면 이 인기가 영원할 거라 생각하겠지만, 이미 산전수전을 다 겪은 터라 잠깐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다음을 생각하게 된다는 거예요. 바쁜 거 끝나면 당장 어디로든 떠날 생각입니다. 새로운 것을 보고 느껴야 새로운 생각이 나오니까요.

 

우정에 대하여

나한테는 영자 언니와 은이 언니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