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은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의 시대 배경인 1940년대, 50년대의 혼돈을 보여주는 또 다른 이름입니다. 한 사회가 개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시대뿐만 아니라 평온한 시대에서도 배신은 인간의 단골 메뉴 중 하나죠. 우리는 그만큼 자주 가까운 사람을 배신하고, 또 그들에게서 배신당합니다.
아이라는 의붓딸 실피드의 절친 패멀라와 마사지사 헬기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습니다. 반대로 아내 이브는 그와의 결혼생활을 고백한 책을 통해 아이라를 배신합니다. 의붓딸 실피드는 엄마 이브를 배신하고, 아이라의 절친 박제사는 아이라가 공산주의자임을 폭로합니다. 모두가 믿는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배신하는 이야기, 그것이 바로 필립로스가 응시하고자 하는 삶의 진면목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인간에겐 믿을 수 없는 여러 모습이 존재합니다. 모든 게 가능한 게 인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걸 종교의 힘으로, 윤리의 힘으로, 자기배려의 힘으로 통제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구제불능의 경우가 있죠. 어쩌면 소설을 읽는 것은 내 안의 그런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서로를 배신의 소용돌이로 휘몰아치게 했을까요? 패멀라는 싱싱하고 젊고 가벼우며 약삭빠른 소녀였습니다. 영국의 귀족 가문 출신의 그녀는 미국에서 멋진 자유를 즐기는 중이었죠. 아이라는 부르주아 출신의 영국 아이가 부르주아적 관습과 예법에 굴복하지 않는 모습에 매력을 느낍니다. 그러니깐 그녀는 인간이었던 겁니다. 이럴 때는 이런 사람, 저럴 때는 저런 사람, 어디서든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사람(p. 281). 아이라는 패멀라를 통해 삐걱거리며 흔들리는 아내의 자리를 기대합니다. 그가 이룬 최초의 가족, 그 안에서 이브와 실피드의 관계, 엄마와 딸의 관계는 구제불능이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독립적인 것을 기대하는 것보다 미국을 공산국가로 만드는 게 더 쉬워 보이던 때였습니다. 그때 나타난 패멀라에게 아이라가 기대한 것은 이브의 자리를 대체할 미래의 아내였습니다. 그러나 패멀라에게 아이라는 미래의 남편이 아니었죠. 가끔씩 만나 자유롭게 일탈을 즐기는 그런 인연. 젊은 패멀라에게는 패멀라 나름의 꿈이 있고, 직업이 있고, 인생이 있었습니다. 아이라가 결혼하자고 청혼했을 때 패멀라가 단호하게 끝내자고 답한 것은 그래서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패멀라와 헤어진 후 아이라에게 나타난 것은 헬기라는 마사지사였습니다. 에스토니아 출신 노동자계급의 강인한 여자로 보드카를 좋아하고 창녀 기질과 도둑 기질이 약간씩 있는 50대 전후의 여자. 현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덩치 크고 성격 좋은 게으름뱅이와 아이라는 꽤 잘 어울리는 영혼의 짝이었습니다. 아이라는 그녀의 탐욕스런 모습에 흥미를 느꼈고, 그녀는 전문적으로 아이라의 아픈 몸을 풀어주고 욕망을 해소해주곤 했습니다. 헬기는 매력적이었지만 동시에 천박한 거침없음으로 언제든 대담하고 창조적인 배신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이라만큼의 공격적인 태도와 폭압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고 마사지 도구를 들고 누구와도 관계를 맺을 수 있음과 동시에 너무 쉽게 관계를 파탄낼 수도 있는 존재였던 것이죠. 결과론적으로 보면 헬기는 아이라의 모든 관계를 파탄내는 촉매제 역할을 합니다. 그것이 헬기의 의도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헬기가 술에 취해 이브에게 자신과 아이라의 관계를 폭로하는 그 순간 이야기는 아이라의 가파른 몰락으로 이어지게 되는 겁니다.
사실 아이라나 헬기와 같은 존재는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습니다. 어린 나이에 가족으로부터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사람, 어떤 계기로 힘든 상황을 남들보다 훨씬 어린 시절에 경험한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은 거죠. 그 버림의 시간이 길고, 고통의 깊이가 깊은 사람들에게 사랑, 열정, 신념,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고통과 버림의 공간에 비례하여, 이들은 그 어떤 것과도 쉽게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어떤 것에든 쉽게 빠져들어 그 속에 영원히 처박혀 표류하게 되거나, 그것에 방해가 되는 관계를 쉽게 파탄낼 수 있는 거죠(p. 363). 그러면, 이런 사람을 멀리해야 하냐구요? 그럼 독고다이, 고립의 성에 갇힐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죠.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타자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사람일 겁니다. 그 타자가 신이 아닌 이상, 온실 속에 자란 화초가 아닌 이상 고통은 다채로운 모습으로 길 위에 펼쳐져 있고 그 고통을 특수화하는 것, 모순을 지우고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모순 안에 놓여 있는 고통 받는 인간을 보는 것. 혼돈을 허용하고 그걸 받아들이는 것, 그게 바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나의 것으로 삼는 방법일 것입니다. 공감과 이해는 바로 여기에서 싹트기 시작하는 것이구요.
물론 모두에게 이런 모순이 있는 것은 아니죠. 누군가의 삶은 일관되고, 명료하며, 군더더기 없습니다. 이 소설에서 그런 사람이 바로 아이라를 공산주의로 이끈 동료이자 선배이자 스승인 오데이인데요. 그에 대한 묘사를 한 대목 살펴보도록하죠.
“오데이의 방, 즉 그의 감옥은 아이라의 오두막의 영적 본질이었다... 아이라가 설명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열광적 이념이 어떻게 한 남자에게 갇혀 살아야 하는 가혹한 죄수의 모습을 안겨주었는지 하는 것이었다. 선택의 자유가 전혀 없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는 어떤 것도 선택할 여지가 없다. 자신이 믿는 이념을 위해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차단하는 것,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오데이의 목표에는 모순이 없었기 때문에, 그 자신이 개종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는 다른 뭔가에 대한 핑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또한 두뇌의 핵심인 경험 자체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에, 그의 말, 그의 확고한 생각에는 명료한 면이 있었다... 오데이는 열정을 감춘 부드러운 말씨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나본 사람 중 가장 역동적이었다. ... 조니 오데이에게 나는 보호해야 할 누군가의 자식이 아니었다. 그저 포섭 대상이었다... 그렇다, 오데이 같은 사람에겐 누구라도 글린다. 조니 오데이는 사람을 적당히 끌어당기고 말지 않는다. 끝까지 끌어당긴다. .. 자신의 생각 외에는 내세울 게 없는 사람, 존경스러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땐 당신도 나처럼 생각할 것이다. 내가 있을 곳은 바로 여기다!..내 속에 숨어 있는 나약함이 그에게는 티끌만큼도 없었다. (p. 382~394)"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이 아주 가끔씩 존재합니다. 이들은 존경을 받습니다. 나약하지 않음 때문에, 이념과 삶이 이율배반적이지 않은 치열함 때문에. 그러나 대부분의 “체험 삶의 현장”에서 이런 사람들은 자기만의 오두막에 갇혀 있곤 합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말이죠. 반대로 현장을 주도하는 것은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미소를 짓는 자”와 “말과 삶이 모순된 자”와 “선택적인 건망증을 가진 자”와 “뻔뻔하고 요란하고 가식적인 자”와 “누군가의 아픔과 상처를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이용하려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시끄럽게 떠들고, 증오하고 싸우면서 흥분하고 출세하고 세상의 물결에 휩쓸립니다. 그리고 바로 이들이 서로를 배신하고 배신당하면서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씁쓸하게도 유쾌하게도.
배신을 알게 된 이브의 복수는 어땠을까요? 헬기와 아이라의 관계를 알아 챈 이브는 아침방송을 진행하는 소설가 카트리나에게 전화를 겁니다. 그날이 가기 전 아이라의 책상에 있던 물건이 카트리나의 손으로 넘어갔고 그 다음엔 브라이든의 손으로 넘어갔고 거기서 다시 그의 칼럼으로 넘어갔고 결국 뉴욕의 모든 신문 1면으로 넘어갑니다. 그와 동시에 아이라, 그가 배경으로 삼은 공산주의는 끝장나는데요, 그 끝장나는 광경에 대한 필립로스의 묘사는 놀랍습니다.
“그게 말해주는 교훈은 이거라네.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를 이데올로기의 손에 헌납하기로 작정하면 개인적인 건 몽땅 거품처럼 빠져나가고 이데올로기에 유용한 것만 남는다는 것. 이 사건에서는 한 여자가 자신의 남편과 결혼생활의 문제들을 열광적인 반공이데올로기에 갖다 바친 거지. .. 이데올로기가 이용할 수 있는 것만 남았던 거야. ... 그리고 몰아닥친 배신의 물결. 생존, 흥분, 출세, 이상주의 등등. 이유가 뭐였든 모든 사람이 그 물결에 휩쓸렸지. 상대에게 입힐 수 있는 피해, 가할 수 있는 고통을 위해. 그 속에 숨겨진 잔인함을 위해. 그 속에 숨겨진 쾌감을 위해. 잠재된 힘을 입증하는 쾌감, 남을 지배하고, 적을 파괴하는 쾌감. 그들을 불시에 덮치는 거지. 그게 배신의 기쁨 아닌가? 누군가를 속이는 쾌감, 그건 그들이 안겨준 열등감, 그들에게 무시당한 느낌, 그들과의 관계에서 느낀 좌절감을 되갚는 방법이야. 내가 그들이 아니기 때문에 혹시 그들이 내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존재 자체가 내겐 굴욕이지. 그래서 그들에게 당연한 벌을 내리는 거야.....1946년에서 1956년 사이에 개인적인 배신행위가 미국을 휩쓸었던 것 같아. 이브 프레임이 저지른 것은 당시에 난무했던 수많은 역겨운 행위 가운데 아주 전형적인 거였네. 이 나라에서 과거 어느 시대에 배신행위를 그렇게 감싸주고 보상해주었나? 배신을 저지르고도 도덕적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지. 애국자인 양 배신을 하면서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는 시대, 성적 쾌락에 가까운 만족을 하면서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는 시대였어. 쾌감과 약함, 공격성과 수치가 묘하게 뒤섞인 만족이었지. .. 사랑하는 사람을 파괴하고 경쟁자를 파괴하고 친구를 파괴하는 만족. 배신이란 원래 사악하고 부당하고 파편적인 쾌감과 한편이라네. 그렇게 흥미롭게 조작되고 은밀한 쾌감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호소력이 있지." (p. 435~440)
그랜트 부부의 대필로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가 출간된 것은 1952년 3월이었습니다. 멈춰야 할 때 멈추는 지혜라는 게 과연 인간에게 있기나 한 걸까요? 자신의 불합리성을 항상 더 높이 끌어올리는 게 인간의 운명인 것일까요?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필을 한 그랜트 부부의 창작물이었습니다. 그랜트 부부가 그걸 꾸며낸 건 방송계에 침투한 공산주의를 이슈화해서 국회로 가는 길을 닦으려는 남편 브라이든의 수작이었습니다. 이브는 자발적으로 카트리나 부부의 노예가 되었고, 이 책 출판 이후 아이라는 완벽하게 무너집니다.
“이제 아이라는 비난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렸네. 가정, 결혼, 정부, 간통, 부르주아적인 그 모든 쓰레기. 인간으로서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 욕구, 앞날을 읽지 못하는 인간의 무능력, 실수 쪽으로 이끌리는 인간의 성향에 걸려들지 말았어야 했다고, 남자답고 야심만만한 사내가 갖는 세속의 목표를 단 하나라도 좇지 말아야 했다고, 공산주의 노동자로서 이스트시카고 단칸방의 60와트 전구 아래서 혼자 살아야 했다고. 그것이 지금 지옥에 떨어진 그가 도달했어야 한 금욕의 높이라고.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굴욕, 그게 문제였다네. .. 녀석은 아주 강하고 여러 면에서 꽤 둔감한 거인이었지. 하지만 눈덩이처럼 쌓여가는 중상모략은 결국 이겨내지 못하더군. .. (p. 471)"
그리고 복수를 준비합니다.
“아이라가 내게 말했네. 복수하겠어. .. 이란에서 돌아왔을 때 아이라의 인생은 폭력적인 충동을 가라앉히려는 시도 자체였네. .. 아이라는 어릴 적 옆 동네에 산 스트롤러를 죽인 경험이 있고, 이 충동을 가라앉히려는 게 삶의 과제였다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다시 돌아간 거야. 아이라는 징크타운의 숲에서 사격 연습을 시작했어. .. 마침내 두 사람의 진정한 친화성이 느껴지더군. 서로 싸울 수밖에 없는 영혼을 가진 두 사람. 아이라와 이브의 절망적인 뒤얽힘, 일단 시작되면 끝없는 싸움을 향해 대책없이 이끌리는 관계. 아이라의 폭력성은 이브의 히스테리의 남성적 대응이었어. 한 물줄기가 서로 다른 성으로 표현됐던 거야.” (p. 488)
형수 도리아의 조언으로 아이라는 이브를 죽이는 대신 기자 친구들을 동원해 그녀를 무너뜨립니다. 그녀의 책이 철저하게 조작되었다는 걸 보여준 거죠.
“아이라의 기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네이션, 리포터, 뉴 리퍼블릭에 실리기 시작한 기사들이 그녀를 난도질한 거야. 아이라를 깔아뭉개주길 바랐던 대중이라는 기계가 그녀 쪽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네. 암 그래야지. 여긴 미국이니까. 대중이라는 기계는 일단 스위치를 켜면 모두를 파국으로 몰아넣기 전에는 멈추지 않거든.” (p. 513)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멈춥니다. 그 사건 이후 아이라도 이브도 쓸쓸하게 언론에서 페이드아웃되고, 외롭게 생을 마감합니다. 이 인생에 대해 필립 로스는 네이션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최선의 목적을 가망 없이 부여잡고 이제 신기루가 돼버린 건설적인 방향을 향해, 더는 통용되지 않을 공식과 해답을 향해 평생 동안 현실적으로 매진했던 삶. .. 한쪽에서 배신을 억누르면 다른 쪽에서 배신이 튀어나온다. 그건 정적인 체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살아 있기 때문이고 살아 있는 건 모두 움직이기 때문이다. 순수함은 돌처럼 굳은 것이고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조니 오데이나 그리스도처럼 금욕의 귀감이 아니라면 오만 가지가 충동을 다그치기 때문이다. .. 왜 이렇게 행동해야 하는지 일러주는 독선의 거짓이 없다면 매 순간마다 “왜 이렇게 해야 하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몰라도 별 수 없이 참고 견뎌야 한다. (p. 531)
한쪽에서 배신을 억누르면 다른 쪽에서 배신이 튀어나오는 삶. 오만가지가 충동을 다그치고, 매 순간마다 “왜 이렇게 해야 하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는 삶, 그리고 몰라도 별 수 없이 참고 견뎌야 하는 삶. 저자는 미국 사회 저작거리의 삶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이 소설에 작가의 분신으로 그려지는 작가 "네이선"은 젊은 시절 진창 속을 구르는 삶 속에서 글을 쓰다 노년이 된 후 모든 것을 접고 시골의 고립된 성으로 들어와 오로지 글쓰는 일에만 열심히 매달립니다. 그 과정에서 얻게 된 삶의 진실이란 무엇일까요?
이 책의 압권은 네이션이 전하는 마지막 페이지에 있습니다.
“선생님의 이야기에서 아이언맨의 몰락에 한 역할씩 했던 모든 사람은 이제 더는 삶의 순간에 붙들려 있지 않고, 죽어서 그 시대가 놓은 덫에서 풀려났으리라. 그 시대의 사상도 인류의 기대도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했다. 오로지 수소원자만이 운명을 결정할 뿐이다. 이브와 아이라가 범한 실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배신 따윈 없다. 이상주의도 없다. 어리석음도 없다. 양심도, 양심의 부재도 없다. 어머니와 딸도, 아버지와 의붓아버지도 없다. 배우도, 계급투쟁도 없다. 차별도 없고, 불의도, 정의도 없다. 유토피아도 없다. 있다면 동쪽 하늘의 은하수에서 조금 서쪽으로 올라가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의 남동쪽에 높이 걸터앉은 거문고자리가 있을 뿐이다.... 두달 뒤 피닉스에서 머리 선생님이 운명했다. 머리 선생님이 세상을 떠난 그날 밤처럼 눈부시게 맑은 날 밤, 나의 산 위에 마련된 이 조용한 연단 위로 실수라는 것이 주제넘게 끼어들 수 없는 저 우주가 펼쳐져 있다. 거기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을 본다. 반목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장관, 광대한 시간의 뇌.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고 피어오른 무수한 불덩이를 두 눈으로 본다. 별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p. 538)
사실 이런 문장은 노년의 대작가들만이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 책의 여운은 의외로 깊게 남습니다. 필립로스의 첫번째 책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게 아닐까, 싶습니다.
삶에 있어서 유토피아도 오아시스도 없다. 다만 자신이 끌고 가야 하는 자신만의 운명과 욕망과 몰락과 배신과 실수의 서사가 있을 뿐이고, 실수라는 것이 끼어들 수 없는 우주와 별자리가 있을 뿐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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