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좋아했던 수많은 공인들이 성희롱과 성폭력의 가해자였다는 것이 하루가 멀다하고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의 면면을 보면 인간이라는 것이, 남자라는 것이 얼마나 치졸하고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스스로를 경계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보통 두려운 것, 치졸한 것, 야만적인 것, 몰상식한 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예외는 아니겠죠. 그러나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그 모든 이야기가 곧 나의 과거이자 오늘이자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했던 말과 행동에 그런 찌질함과 폭력이 없었을까,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이 드는 겁니다.
수많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남성이라는 이유로 내가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며,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이 너무도 넓게 포진해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어디 이뿐일까요? 세상에는 침묵하는 수많은 작은 목소리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저는 그들의 이야기를 알지 못합니다. 제대로 듣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무지와 둔감함 때문에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적고 큰 잘못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전 여동생이 집에서 당한 차별에 대해, 세상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에 대해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엄마에 대한 원망을 표현할 때, 세상에 불평과 불만을 토로할 때 애써 무시했던 것 같습니다. 미안 동생!
“두려워할 것은 나 자신만 한 것이 없다네. 내 오른쪽 눈은 용이 되고 왼쪽 눈은 범이 되며, 혀 밑에는 도끼를 감추고 있고 팔을 구부리면 당겨진 활과 같아지지. 차분히 잘 생각하면 갓난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으나 생각이 조금만 어긋나도 짐승 같은 야만인이 되고 만다네. 스스로 경계하지 않으면 장차 제 자신을 잡아먹거나 물어뜯고 쳐죽이거나 베어 버릴 것이야. 이런 까닭에 성인께서도 이기심을 누르고 예의를 따르며 사악함을 막고 진실된 마음을 보존하면서 스스로 두려워하지 않으신 적이 없었다네.” (박지원의 민옹전에서)
박지원의 민옹전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두려움이 외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박지원은 말합니다. 정작 두려워할 것은 나 자신이다! 약간만 느슨해지면 사악하고 치졸하며 이기적인 마음이 침투하고, 그 마음이 스스로의 일상과 관계를 잡아먹고 물어뜯고 쳐죽이게 될 거다.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경계해야 하는 이유일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스스로의 삶을 경계하며 살 수 있을까요? 좀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자신의 말과 행동을 경계하면서도, 외부에 대한 두려움은 줄여나가는 자유로운 삶이 가능할까요? 자유롭고 윤리적인 삶이란 도대체 가능한 걸까요? 우리가 소위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이유, 낯선 존재와의 접속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나를 창조하는 것은 어쩌면 모두 이를 위한 작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능동적 행위에는 필요한 게 있습니다. 이른바 우리가 “기운”이라 불리는 것. 기운 팍팍! 이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겁니다. 인간은 천지의 기로써 태어납니다. 이 기를 바탕으로 생명의 원천인 마음과 육체가 만들어집니다. 한마디로 몸과 마음의 토대가 바로 기(氣)이고, 기운이 있어야만 능동적이고 창조적이며 예민한 나의 탄생이 가능한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는 팍팍 충전시킬 수 있을까요?
사람은 곡식에서 기를 받는다. 곡식이 위에 들어오면 곡기가 폐에 전해지고 오장육부가 모두 그 기를 받는다. 기는 어딘가에 저장되는 게 아니라 뭔가 왕성하게 돌아다닌다... 기는 주로 몸 안팎을 돌아다니면서 항상성을 유지시켜 주는 에너지의 흐름인 셈이다. 그래서 호흡과 관련이 깊다. 주관하는 장부는 폐가 된다. 그래서 폐기는 패기다! 패기가 없으면 폐기가 약하다. (고미숙,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P. 5).
‘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 거여!’ 옛 어르신들의 말은 그래서 참입니다. 특히 동의보감에서는 아침 7시 30분에서 9시 30분(辰時)에서 먹는 음식이 ‘기’의 관점에서 가장 가성비가 좋다고 합니다. 아침을 거르는 삶보다 조금이라도 먹는 삶이 “기”의 충전에 좋다는 것이지요.
기는 축적도 중요하지만, 운행도 중요하다고 하는데요, 몸 안팎에 골고루 퍼지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여기서 유념해야 하는 게 첫째는 호흡, 둘째는 감정입니다. 당연히 좋은 공기를 마시는 게 좋구요, 아울러 유산소 운동을 통해 폐 기능을 활발히 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단전호흡을 통해 운행의 근거지를 배꼽 아래 단전으로 삼는 게 좋다고 합니다. 저도 단전호흡은 아직 잘 못하는데요, 기본 방법은 이런 거라 합니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머리를 살짝 숙여 아래를 보되 눈은 콧등을 보고 코는 배꼽 언저리를 대하게 되면 기운은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 단학의 최고 경전이라고 하는 북창 정렴의 <용호비결>에 나오는 단전호흡의 기본자세입니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진짜 기의 운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감정의 조절 능력이 정말 정말 중요합니다. 일일 드라마에서 단골로 나오는 장면 중 하나가, 친구의 배신, 배우자의 바람, 경쟁자에 대한 원한 때문에 충격을 받아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건데요, 기의 운행에 감정 흐름이 매우 밀접하게 관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 포인트는 희로애락, 어떤 것이든 지나치지 않는 것, 과하면 안된다는 겁니다.
이 조절을 위해서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나 대상과 거리를 두는 객관화 능력, “자기를 바라보는 또다른 자기”를 만드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하는데요, 그래야 기의 부질없는 소모를 방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화를 내는 시츄에이션에 발휘되는 객관화 능력은 정말 중요합니다. 여러 감정 중 가장 기의 손실이 크기 때문이죠. 누군가 나를 분노하게 할 때 일단 심호흡을 크게 하고,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기운을 밑으로 밑으로 내릴 필요가 있는 이유입니다. 물론 물론 잘 안되는 일이지만...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죠. 어떻게 스스로의 삶을 경계하며 살 수 있을까요? 어떻게 좀 더 자유롭고 윤리적인 삶이 가능할까요? 기운이 세다고, 기운을 잘 운행한다고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운이 떨어지면 이런 예민한 삶, 능동적 삶, 창조적 삶은 육체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감정과 기운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상황에 대한 객관화 능력과 ‘자기를 바라보는 또 다른 자기’를 창조하는 능력이 “기”의 생성과 운행에 긍정적 기여를 한다면, 기운을 축적하고 운행하는 수행 과정 그 자체가 자신의 삶에 대한 예민함과 윤리성을 벼르는 과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봄이 시작됩니다. 봄의 기운을 나의 것으로 삼고, 또 한 번 즐겁게, 예민하게, 스스로를 두려워하며, 자유롭게 가봐야겠습니다. 기운 파팍! 뚜벅뚜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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