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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즐거움/동양의역학

불안이라는 감정, 어떻게 조절할 수 있을까?


지난 주에 대학생들과 저녁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 속에 흐르는 감정을 보면 불안이라는 게 공통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요? 동양 사상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인간과 우주 사이의 긴밀한 연관성인데요, 이것은 하나의 은유가 아니라 직접적 연관을 말합니다. 지금 이 순간 숨을 쉰다는 것은 천지에 가득 찬 기운을 들이마시는 것이고 그 기운 속에는 가깝게는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실업, 승자독식, 부동산불패 등 서울이 만들어낸 것도 있지만 좀 더 부감에서 보면 미세먼지도 있고 물도 있고 벚꽃도 있고 하늘도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음식을 먹는 것은 천지에 가득 찬 기운을 들이마시는 것이기도 한데요, 여기에는 삼각김밥, GMO 작물, 인스턴트 음식이 있는가 하면 제철나물, 현미밥, 된장, 유기농 작물 등도 있습니다. 무엇을 먹느냐는 곧 내가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인 거죠. 그러니깐 불안이라는 것은 동양의 관점에서 보면 내가 숨쉬는 천지와 서울이라는 공간이 만들어낸 문명, 그리고 식탁 위에 올려진 음식과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동양 사상은 한 개인을 개별적 실체와 본질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관계와 흐름, 운동으로 이해합니다. 이 관계로 개인이 자리한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지는데요, 2018년 서울이라는 시공간에서 우리가 살아가는데 불안을 느끼지 않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어려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특히 젊은 친구들의 경우 불확실한 미래, 취업문의 좁아짐, 경쟁의 치열함 등 눈앞에 펼쳐진 이야기들이 만만치 않아 불안은 느끼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할 정도입니다.


문제는 그 감정이 과도하게 커져 내 삶에 장벽이 되면,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기는데요, 이 감정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한 개인의 감정이 내가 숨쉬는 천지와 오늘 먹은 음식, 그리고 서울이라는 문명, 거기서 만나는 관계와 무관할 수 없다면 지금 내 일상을 좀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먹는 것, 숨 쉬는 것, 내가 관계 맺는 세상과 타자. 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거죠.


일단 먹는 것. 이른바 인스턴트 음식은, 빨리 데워지고 빨리 헤치워지는 음식들은, ‘빨리빨리를 부추기는 음식입니다. 가급적 지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조급증에 들뜨지 않은, 농부들의 땀과 땅의 시간이 짙게 묻어 있는 담백한 밥상을 선호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동의보감에서 가장 좋다고 추천하는 메뉴는 밥물이 걸죽하게 고인 것인데요. 밥이 보약이여, 어르신들의 말씀은 그래서 일정부분 참입니다. 물론 밥보다 누룽지와 숭늉이 좋은 것 같지만요. 제철 음식 역시 좋습니다. 동양에서는 차서(시간적 순서와 공간적 질서)를 중요시하는데요, 제철 음식은 이 시간과 공간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순응한 음식들입니다. 모든 과정을 건너뛰지 않고 밟아가는 것. 이것은 음식에게도 인간에게도 좋은 겁니다.


다음으로 숨 쉬는 것. 일단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은 정말 중요한데, 서울에서는 쉽지 않죠.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죠. 맑은 공기가 주변을 감쌀 때는 몸을 움직여 활동량을 늘리는 게 좋습니다. 마치 좋은 공기를 저장하는 심정으로 몸을 움직이고 들고나가는 공기의 양을 높이는 게 필요합니다. 유산소 운동, 걷기, 달리기가 좋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단 미세먼지가 짙은 날에 뛴다는 것은 재앙과 같은 겁니다. 동양에서는 인간의 호흡을 천지에 해당하는 기운을 흡입한다고 하는데요, 이 숨은 입이 아니라 코로 깊게 들이쉬고 천천히 나가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코로는 하늘에 해당하는 기운을 흡입하고, 입으로는 땅에 해당하는 액체와 고체의 음식을 흡입하는 것이 천지의 원리에 합당하기 때문이죠. 이에 더해 볕좋은 날에 광합성을 하러 태양을 마주하는 것도 좋은 습관이라 하는데요, 이유는 피부 역시 호흡을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관계. 인간은 관계의 동물이죠. 그리하여 내 마음에 불안이 과도하게 크다면 무엇보다 지금 맺고 있는 관계에 문제가 있지 않은지, 좀 돌아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주변에 친구나, 연인, 세상과 단절하자는 이야기가 절..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누군가의 시선,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소유와 경쟁에 대한 허기,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조급함, 내가 지금 어떤 관계장에서 이런 것 때문에 마음도 머리도 과도하게 과열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이것 때문에 역설적으로 관계도 흐름도 막혀 있는 것은 아닌지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뜨거워진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앉히는 연습이 필요한데요, 계절로 비유하자면 앞뒤 주변 살피지 않고 단호하게 자신의 열매를 맺어내는 가을과 아랫목에서 이불을 덮고 쉬면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겨울의 느낌을 몸에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불안은 나무가 흙을 뚫고 나오는 봄과 불타오르는 기운의 데시벨이 높은 여름의 기운을 배경으로 삼거든요. 우리 시대가, 서울 문명이, 자본주의가 활활 불타오르는 봄과 여름의 기운을 넘치게 한다면, 그것 때문에 내 마음이 과도하게 불안을 느낀다면 일부러라도 내 마음에 가을과 겨울의 기운을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남들과 다른 나만의 길(열매)을 발견하고 작은 성공을 맞보는 가을, 아랫목에서 휴식을 하면서 천천히 세상과 나를 돌아보고 지난 봄과 다른 새로운 봄의 씨앗을 마련하는 겨울. 이 느낌으로 타자를 만나고, 세상을 만난다면 아무리 뜨거운 시공에서도 과도한 불안은 중화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저녁 7시 즈음에 회사를 나와 집에 오는 길에 한참을 걸었습니다. 날씨가 좋았거든요. 집에 오면서 달래와 두부, 오이와 버섯을 사가지고 와 현미밥에 달래된장국을 끓여 먹었습니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니 10, 종일 이런저런 쏟아지는 일들에 열이 머리 끝까지 올라와 몸도 마음도 무거웠는데 지금 이 시간 너무 가벼워졌습니다. 정말이냐구요? 정말이라니깐... 잘 먹고 잘 싸고 잘 비우고 잘 숨쉬고 잘 관계 맺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