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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즐거움/유목과 제국

[반중국 역사] 3부 제국은 차이와 다원성이다.


<반 중국역사> 6장과 7장은 만주 여진족의 시대, 12세기~13세기 금왕조와 17세기 이후 청나라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여진족, 이제껏 살면서 한 번도 관심을 두지 않은 인류입니다. 변방의 야인, 그런 이미지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보면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동북아 지역을 지배하던 강자였다고 합니다.


좀 딱딱하지만 거칠게 강자의 연대기를 요약하면, 

12~13세기 거란(키타이)이 세운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송나라까지 멸망으로 이끌면서 금의 세계를 엽니다. 남쪽으로 도주한 송나라, 우리가 흔히 남송이라 부르는 곳을 신하의 나라로 만듭니다. 그러나 금의 시대는 칭기스칸의 등장과 함께 13세기 중반 몽골, 원의 나라에 패권을 넘겨줍니다. 그렇다고 여진족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원의 멸망 이후 씨족 공동체로 점점이 박혀 있던 이들은 1616년 누르하치에 의해 후금국으로 재결합합니다. 그러더니 1636년 홍타이지에 의해 중원의 강자 명나라를 순식간에 제압하면서 청이라는 거대 제국으로 탈바꿈합니다. 사실 이 과정이 매우 드라마틱한데, 사실 누르하치도 홍타이지도 애초에 기획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던 우연의 연속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우연의 기회를 제국으로 완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분명 독특한 힘이 있었던 건 분명합니다. 도대체 이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사실 제가 궁금한 것은 이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부분에 대한 답을 명징하게 얻지는 못했습니다. 앞으로 공부를 하면서 찾아가야 하는 부분인데요, 다만 제국의 탄생에 있어 독자적인 문자의 창조, 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문화의 창조는 중요한 전제조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12세기 금나라의 태동과 함께 여진족은 독자적인 문자를 만듭니다. 이 문자는 금왕조가 무너진 뒤에도 거의 200년 동안 사용되었

다고 하는데요, 새로운 문자와 문화를 만들어내는 힘은 새로운 제국의 탄생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과거의 것을 그대로 차용하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힘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정체성 구축 역시 제국의 탄생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근대에서 이 정체성은 국가, 민족, 인종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얼마나 많은 전쟁과 학살을 가져왔는지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청의 탄생과 맞물려 만들어진 정체성은 근대 이후 국민국가의 모습과 결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여진족은 주센(jusen)을 한자로 음차 표기한 것이라 하는데요, 청나라를 세운 홍타이지는 주센이라 부르던 여진족들을 서서히 만주족으로 명명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몽골인이든 한인이든 조선인이든 원한다면 만주인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17세기 후금-청으로 이어지는 공동체는 여러 씨족과 부족이 모이고 융합하면서 만들어졌는데, 여기에는 8개의 유력한 부족이 있었습니다. 이 8개 부족을 만주 팔기라 하는데 여기서 기인이 된다는 건 인종과 고향이 어디든 만주인의 삶과 가치관을 받아들여 만주인으로 사는 것을 의미했다고 합니다출신이나 얼굴 모양에 관계없이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고 어떻게 사느냐로 누구인지를 규정하는 것이지요즉 공유하는 생활양식과 가치가 만주족이라는 이름을 만들어냈고이들은 결코 동일함을 강요받지 않으며, 그렇게 구성된 8기군이 청 제국의 근간이 됩니다. 사실 이런 열려있는 정체성은 "만주족" "여진족" 뿐만 아니라 "몽골", "거란", "투르크"에서 유라시아 초원 지역에서는 쉽게 발견되는 모습이기도 한데요, 이건 근대 이후 우리에게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특징이기도 합니다. 낯선 인종, 지역의 사람과 섞이는 것은 제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언어적인 장벽도 있고 인종적인 구별짓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몽골도 그렇고 여진도 그렇고, 근대 이전의 유라시아 초원의 제국은 이것을 훌쩍 넘어설 수 있었을까요? 이건 초원에서 다져진 자신감과 강인한 신체성에 기반할 수도 있고, 실크로드로 표상되는 동서 교역의 활발함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르며, 열린 정체성과 그로부터 얻게 되는 지식, 정보가 드넓은 초원지대에서 살아가기에 유리하다는 본능과 경험으로부터 기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유가 무엇이든 분명한 것은  니편, 내편 분할선을 만들고, 여기는 내땅, 저기는 니땅으로 아웅다웅하는 집단이 서로의 고유성과 개별성을 인정하면서 다원적이고 열린 문화를 지향하는 공동체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중국 역사]를  마무리하면서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 대한민국,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유약해서일까요? 한반도라는 반도와 3,8선에 갇혀 교류가 활발하지 못해서일까요? 우리가 남이가, 연고, 지연, 학연 등등 닫힌 정체성으로 얻게 되는 이득이 커서일까요? 차이를 인정하는 데 인색하고 집단을 만들고, 내부와 외부를 차별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게 우리는 얼마나 쪼잔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말입니다. 


그리하여 지금 필요한 것은, 배워야 하는 것은 차이와 다원성을 인정하는 제국의 언어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하나, 찌찔하게 나누고, 배제하고, 싸우는 것 좀 고만 좀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