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문화인류학과 서보경 선생님의 “몸의 언어와 고통의 공동체”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의료인류학(medical anthropology)이라는 낯선 영역을 소개하는 글이었습니다. 의료인류학은 인간의 질병과 고통이 경험을 중심으로 의료 및 보건의 실천 양상을 탐구하는 인류학의 한 분야인데요, 이 글에서 서보경 선생님은 의료인류학에서 발전시켜온 몇 가지 이론적 쟁점이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에서 고통의 사회성을 이해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전쟁, 재난, 참사, 구조조정과 실업과 같은 폭력적 경험과 상처가 어떻게 몸의 고통과 기억으로 되살아나는가에 대한 사회과학적 관심은 어떻게 고통의 치유를 사회적으로 이뤄낼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의료인류학에서 캐어낸 개념들은 많은 생각거리를 남기는데요, 이 글에서 설명하는 핵심 개념은 고통의 의료화였습니다.
‘고통의 의료화’. 이는 모든 고통을 의료의 문제로 파악하는 과정을 지칭하는데요, “자 병원가야지!” 몸과 마음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겼을 때, 그걸 이해하려는 과정이 축소된 채, 의사부터 찾는 것을 의료화의 한 사례라 볼 수 있는데요, 이 개념은 의료의 영역이 인간의 일상과 존재에 끼치는 영향이 급속도로 확대되는 양상을 포착하는데 유용함을 제공합니다. 인간의 출생에서 죽음까지 전 과정이 병원의 영향 아래 놓여 있는 현실에서, 의료 기술과 담론은 인간 삶의 특정 측면을 부각하거나 탈각하는 데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인데요, 여기에는 삶과 죽음, 고통과 질병 앞에서 인간 경험이 파편화되고 대상화되는 과정이 동반되기 마련이구요. 이 과정에서 전문가에게 나와 공동체의 문제를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전문화, 거대 병원의 시스템에 종속되는 관료제, 그리고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규범화의 문제가 나타납니다. 또한 고통의 의료화는 특정한 성질의 고통만을 질병의 영역으로 선별적으로 흡수한다는 점에서 고통의 위계 만들기에 기여하며, 동시에 고통을 질병화함으로써 어떤 고통도 의료적 해결이 가능하다는 믿음 체계를 만들어냅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의료화”에 대한 부정적 해석과 비판이 있어 왔는데요, 서보경 선생님은 이런 시선이 “의료화”의 현장과 구성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벽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의료화가 전문가 집단에 의해 인간 경험의 점유, 침탈, 왜곡의 과정으로 여겨질 때, 모든 의료 행위가 동일한 원리에 기반하고 있으며, 동일한 목적에 복무할 것이라고 상상하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마치 “의료”가 이미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사고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사고는 능동적인 전문가 집단(의료 집단)과 수동적 위치에 놓이는 대상(환자 집단)을 구분하는 이분화된 구도에 기반하고 있는데요. 조금만 생각하면 이런 이분적적 대립 구도가 매우 불안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는 현장에 널리 퍼져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의료화는 무엇이 의료의 영역이어야 하느냐를 두고 벌어지는 경합의 결과물이자, 끊임없이 기존의 의료적 형식과는 다른 삶/생명의 형식을 흡수하는 다이내믹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고통의 의료화와 개별화에 대한 사회과학적 비판은 한국 사회가 사회적 타살의 시대를 겪고 있다는 통찰 속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국가가 심리치유를 일시적 미봉책으로 삼으면서 문제의 근원을 덮으려는 모습을 보일 때, 재난 희생자 가족과 생존자를 자살위험집단으로 분류하고, 그들이 경험하는 감정을 측정, 관리하는 것을 의료 전문가의 책임으로 한정할 때, 고통의 의료화가 어떻게 사회적 고통을 심화시키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저자는 말합니다. 이러한 비판적 현실 인식이 “사회적 치유”가 인식론의 차원에서 의료적 치료와는 무관한 것으로 개념화되거나 혹은 시민사회 운동과 같은 정치적 참여의 경험으로 승화되어야 하는 것으로 요구될 때, 바로 이 부분에서 고통의 존재론과 윤리성을 탐색할 가능성은 닫혀버린다!
사회적 고통은 고통의 경험이 존재론적으로 개인, 몸, 마음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그 경험은 언제나 복잡한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관계 속에서 구체화됩니다. 사회구조적 폭력은 사회적 고통, 세계의 비참을 야기하는 힘들이 개별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며, 의료, 언론, 법, 윤리, 종교가 서로 연루되는 과정을 통해 공고화되고 구조화됩니다. 여기서 고통의 의료화는 그 표면적 목표와 무관하게 고통의 정치화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동시에 도덕적 판단의 지평을 구성합니다. 의료화 과정은 일견 고통의 주체를 환자로 특정하고, 그에 따른 개별적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고통의 사회적 성격을 무화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환자 역시 여기에서 실존적 반향을 일으키며, 이를 통해 고통에 사회성을 부과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의학적 치료와 사회적 치유를 구별하고자 하는 방식은 의료를 사회 밖에 있는 것으로 상정함으로써 고통에 사회성을 부여하는 가장 강력한 기제를 충분히 다룰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서보경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의료가 사회적 고통을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게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특수한 매개 없이 누구도 타인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미디어가 그런 것처럼 의료 역시 타인에게 들어갈, 새로운 사회적, 관계적 공감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매개 조건이 된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어쩌면 의료적 치료와 돌봄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시장의 논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여전히 사회적 고통, 나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료에서부터 의도적인 거리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미디어를 대하는 태도와 비슷한 것입니다. 사회적 고통이 병원과 미디어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에서 내가 나의 고통, 타자의 고통, 사회적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은 지배적 매개로부터의 독립이 필요한 것 아닐까요? 특수한 매개 없이 누구도 타인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매개가 과도한 권력을 가졌을 때, 나의 시선이 그 매개의 논리와 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망상이기 때문이죠.
이 글을 읽고 더 읽고 싶어진 책.
Dying for Growth: Global Inequality and the Health of the Poor (Jim Yong Kim 등, 2002)
권력의 병리학 : 왜 질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는가. (폴파머, 2009)
감염과 불평등 (폴파머, 2010)
김상숙 (2015). 사회적 타살의 시대, 트라우마 극복의 길 찾기. 역사비평, 110, 418~427.
디디에 파생, 리샤르 레스만 (2016). 트라우마의 제국. 바다출판사.
이현정 (2013). 의료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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