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작년이었습니다. <유목의 역사>라는 세미나에 참여하게 되었고 구글맵에서 지도를 바라보며 내가 가진 시야의 좁음에 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세상에 중국이 이렇게 작은 나라였어? 중앙아시아의 초원이 이렇게 거대한 공간이었어? 몸의 감각이 조금 달라진다는 느낌을 받았죠. 그리하여 금년에도 “유목”이라는 큰 범주 하에서 공부를 계속해 가려 합니다. 그 첫 번째 책은 양하이잉의 <반중국 역사>입니다. 제목에서도 느껴지는 것처럼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역사에 반기를 드는 책입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한족 중심의 중국사는 그들의 로컬사인데도 자신들이 보편적이라고 믿고 있는 나르시즘적 세계관과 피해의식의 혼합물일 뿐이다.” 히야~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운 중국의 역사를 나르시시즘과 피해의식의 혼합물이라 말하다니, 뭔가 도발적인 문제제기입니다.
그는 중국사에 도도하게 흐르는 하나의 한족, 중심으로서의 중원이 모두 환상이라고 말합니다. 한족은 수 천년 전부터 한자를 가지고 의사소통을 하던 사람들을 일컬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 역시 언어는 달라도 한족의 일부인 거죠. 중원이라는 공간 역시 마찬가지로 환상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말하는데요, 중국사의 관점에서 보면 황하와 양쯔강 사이 중원은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자, 한족의 허브이지만, 유목의 관점에서 보면 “애초에 중원이란 여러 민족이 들어갔다 나왔다 한 곳이지 한인만의 보금자리는 아니었다.(p. 66)”고 말합니다.
우리가 중원하면 생각하는 것이 뭔가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곳을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중원은 황토로 된 고원이기 때문에 비가 많이 내리지 않고 물이 충분하지 않으며 농사를 지어도 수확량이 미미하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이 척박한 곳에서 어떻게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저자의 답은 치수사업이었습니다
황허의 범람을 막기 위해 대규모 인력을 동원하는 치수사업, 이것의 반복이 곧 황허 문명이라는 거죠. 국가가 황허 범람을 억제하는 일에 막대한 공사비를 투입하고, 인력을 동원해서 치수공사를 시키고 먹고 살 수 있게 했던 통치시스템으로 인프라 정비문화. 치수사업이 문명을 발달시키고, 그렇게 되면 지배체제는 필연적으로 전제주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관리와 통제와 동원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중국의 전제주의가 여전히 강력한 것은 이 황허 문명의 특징을 표현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제가 중국과 친해지는 게 이렇게 쉽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어쩌면 치수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중국은 오랜 시간 대규모의 사람을 모아 치수사업을 하고 사방으로 높은 성벽을 둘러 쌓습니다. 이게 만들어낸 역사이고 문명이라는 거죠. 사방으로 높은 성벽을 쌓아 나와 너를 구별하고, 강력한 전제정치가 일상화된 공간이 전 불편하게 느껴지는 겁니다.
양하이잉은 ‘5000년 중화문명’이라는 중국의 주장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황허문명, 양쯔강 문명, 그리고 초원문명, 이렇게 3대 문명으로 중국은 중화문명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하는데요, 애시당초 황허와 양쯔강 문명만 자기들 뿌리로 삼다가, 이들 문명이 어느 날 사라져 계승이 안된다는 걸 알고 부랴부랴 오랑캐라고 놀리던 초원 문명을 자신의 것으로 삼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래야 5,000년이 되거든요.
그런데 초원 문명이라는 게 참 애매하기 그지 없습니다. 어떻게 초원이 문명일 수 있을까요? 굳이 문명이라 이야기해야 하는 걸까요? 초원에 사는 유목민은 특정한 장소에 귀속되지 않아요. 말을 탈 수 있고(그리스나 중국의 고대인들은 말을 타지 못했다고 해요. 말을 탈 수 없는 자들이 어쩔 수 없이 우연적으로 만든 것이 문명이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개인적인 가설) 광대한 시베리아 초원지대를 이동하면서 살기 때문에 각각의 민족이 고정된 영토를 가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죠. 유목민에게 있어 이른바 미세먼지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동하면 되거든요. 반면 문명이란 것은 공간에 붙박혀 있는 게 기본 토대 아닌가요? 같은 지역, 같은 종류의 작물, 같은 문화, 같은 인종에 고정되어 있죠. 유목과 문명, 초원과 문명은 그래서 함께 이야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꼭 “문명”이어야 해? 그런 질문이 드는 거죠. 그래서 5000년 중화 문명은 일종의 허구라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저자 양하이잉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너무 중국을 싫어하는 것 아냐, 그런 생각도 드는데요, 중국 내몽골 오르도스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일본으로 귀화한 학자로서 그의 관점은 일관되게 반중국적입니다. 이게 좀 중국적 관점을 오래 견지한 사람들에게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불편한 것은 과거의 관념, 생각, 상식에 질문을 탄생시킨다는 점에서 이 책은 동아시아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 유목적 삶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나쁘지 않은 레퍼런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유목의 문명적 특성은 간소함이다. 간소함은 모든 생활 체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유목 생활은 간소 그 자체다. 유목 세계에는 사상을 포함해서 모든 게 투명하다. 유목의 토대는 이동성이다." (p.84)
제가 <반중국 역사> 1~2장을 보면서 가장 굵게 밑줄을 친 문장인데요, 유목을 굳이 문명이라 이야기한다면 그 특성은 간소함에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떠날 수 있게 몸도 마음도 가볍게 가져갑니다. 정말 도시에 살다보면 우리는 이것저것 너무 많이 쌓아두잖아요. 이사를 갈 때마다 버릴 것은 산더미이구요, 어쩌면 문명이라는 건 그래서 쓰레기더미 같은 무거움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알고보면 대부분은 다 필요 없는 것인데 말이죠.
제가 유목민의 간소함을 부러워하는 것처럼 유목민은 그들보다 더 간소한 수렵, 채집인에게 강한 경의를 보였다고 해요. 더 가볍게 더 먼 거리를 이동하는 수렵, 채집인들이 자신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지식인이라고 경외했다는 거죠. 반면에 도시에 뿌리 박힌 상인은 돈에만 집착하고 지킬 것만 많고 삶에 보수적인 친구들이라고 무시했다고 해요.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보수적이고 고정관념에 속박되기 쉽다고 본 것이지요.
<반중국 역사>는 중국사를 다르게 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중국 밖 거대한 초원과 유목의 삶을 따라가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양하이잉은 지나라 불리는 중국의 왜곡된 역사의식 대신 다양한 집단들의 상호작용으로 유라시아 모습을 그릴 필요가 있다고 말해요. 아직 1~2장밖에 안 읽어 그 모습이 잘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유목이 지나(중국)보다 앞서다는 것을 강조해 또 다른 중심을 만들려는 느낌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유라시아에 대한 새로운 입체적 감각을 새겨준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 분명합니다. 유목민은 사막을 불모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풍요로움의 개념이 유목민과 정주민 사이에 다를 수 있다는 것, 유라시아에서는 하늘의 선물인 초원을 가축을 풀어놓는 사람 모두가 공유하는 재산이라 생각한다는 것, 유라시아를 동서로 나누어서 보면 강은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흐르고, 그래서인지 시베리아와 몽골에는 ‘지구는 태양이 지는 북서 방향이 낮게 기울어져 있다’는 신화가 전해진다는 것, 편서풍은 모래의 분포를 북서에서 남동으로 퍼지게 하고, 만약 편서풍이 불지 않아다면 몽골 엘리스도 오르도스 고원의 북동부도 푸른 초원이었을 것이라는 것, 유라시아 각지의 사막을 녹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그것은 지구에 부는 편서풍에 맞서겠다는 인간의 망상적인 행위이며 낭비일 뿐이라는 것 등은 이 책이 아니었으면 알지 못했을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다음 주 에는 <반 중국역사> 3~5장에 대한 감상평을 짧게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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