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가라! 최근에 읽은 한강 소설의 제목입니다. 소설의 내용과 무관하게 이렇게 바람이 부는 날 한강을 달리면 어떤 기분일까, 그런 생각을 잠깐 해봅니다. 너무 추워서 평상시 같으면 달릴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으면, 그래 한 번 뛰어보는 거야, 그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이건 이 책이 달리기가 정말 건강에 좋은 거에요, 그런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래 나도 달리는 걸 좋아했었지.” 그런 추억을 소환하기 때문입니다. 사회 생활 초년병 시절, 저는 자주 저녁의 한강을 달리곤 했습니다. 저녁 7시즈음 회사 체육관에서 옷을 갈아 입은 후 여의도 공원과 한강 공원을 가로지르며 뛰고 뛰었던 것이지요. 일주일에 두 번 이상 10킬로미터를 뛰었던 것 같습니다.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p. 45)"
그렇습니다.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닙니다. 특히 해질 무렵 서울의 한강을 다니다보면 이 도시가 얼마나 슬프게 아름다운 곳인지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건 제가 30대 중반에 <내 아버지로부터의 전라도>를 쓰게 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지속적으로 꽤 긴 거리를 뛴다는 것은 단순하게 달리기를 넘어 어떤 분야를 자신의 페이스에 맞게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추구해가는 것이 어떤 건지를 익힐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아무도 인정하지는 않지만 파스쿠치 커피숍에 처박혀 박사논문을 쓰고, 단행본과 논문을 꾸준하게 내고 있는 데에는 그 시간이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달리기를 멈춘 것이 언제일까? 잘 기억나지를 않습니다. 아마 2010년 전후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문득 이 책을 펼친 후 달리기를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삶에 있어 예외적인 청춘이 아닌 이상, 달리기를 계기로 삶의 우선순위가 바뀔 수 있겠다는 생각, 시간과 에너지를 배분하는 데 있어 안정된 생활의 확립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루키의 이야기처럼 삶은 기본적으로 불공정합니다. 그러나 가령 제가 좋아하는 공간과 하고자 하는 꿈에 있어서는 일정부분 공정함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 공정함이란 결국 시간과 노력의 투자에 대한 공정함이겠지요. 물론 개인에 따라 투자 대비 가성비는 차이가 있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제가 바라는 어떤 것들, 가령 달리기라든지 책을 쓴다든지 태극권을 배운다든지 독일어를 공부한다든지, 이런 것에는 공정함을 믿으며 한걸음 한걸음 가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아침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저는 샤워를 하고 팔굽혀펴기 150회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워낙 몸이 바보라 70회가 넘으면 헐떡거리기 시작하고 120회가 넘으면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고통을 체험합니다. 어떨 때는 여기서 멈춥니다. 고통에 진거지요. 그러나 대부분은 150회까지 어떻게든 가봅니다. 마눌님은 그런 나를 때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보지만 저는 그렇게 반복하는 프로세스가 제법 마음에 듭니다. 삶에 있어 무엇을 이루고자 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반복된 경험, 그러 인한 몸과 마음의 변화, 더디더라고 고통스럽더라도 그 과정을 자신의 인격의 일부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 하루키는 이렇게 말합니다.
절대적인 연습량은 줄이더라도 휴식은 이틀 이상 계속하지 않는 것이 트레이닝 기간에 있어 기본적 규칙이다. 근육은 잘 길들여진 사역 동물과 비슷하다. 주의 깊게 단계적으로 부담을 늘려 나가면 근육은 그 훈련에 견딜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간다. 이만큼 일을 해주지 않으면 곤란하단다하고 반복해서 설득하면 그 상대도 아 좋지요하고 그 요구에 맞춰서 서서히 힘을 들여 나간다. 물론 시간은 걸린다. 혹사를 하면 고장나 버린다. 그러나 시간만 충분히 들여 실행하면 단계적으로 일을 진행해 나간다면 군소리도 안 하고 강한 인내심을 발휘해서 그 나름의 고분고분한 자세로 강도를 높여 나간다. 이만큼의 작업을 잘 소화해내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기억이 반복에 의해서 근육에 입력되어 가는 것이다. (p. 113)
하루키는 장편소설 쓰기, 지속적인 글쓰기의 가능함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웠다고 말합니다. 자연스럽게, 육체적으로, 그리고 실무적으로 얼마만큼 어디까지 나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이면 좋을 것인가? 얼마만큼의 휴식이 정당하고 어디서부터가 지나친 휴식인가? 어디까지가 타당한 일관성이고 어디부터가 편협함이 되는가? 얼마만큼 외부의 풍경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얼마만큼 내부에 깊이 집중하면 좋은가? 얼마만큼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고 얼마만큼 의심하면 좋은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달리기를 통해 배웠다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페이스를 찾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페이스대로 달리고 글을 쓰고 일을 하고 공부하는 것. 이걸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효율적인” 어쩌구를 버려야 한다고 하루키는 강조합니다.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 진정으로 자신만의 방법론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 나는 올 겨울 세계 어딘가에서 또 한 번 마라톤 풀코스 레이스를 하게 될 것이다. 나는 또 한 살을 먹고 아마도 또 하나의 소설을 써가게 될 것이다. 어쨌든 눈앞에 있는 과제를 붙잡고 힘을 다해서 그 일들을 하나하나 이루어 나간다. 한 발 한 발 보폭에 의식을 집중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동시에 되도록 긴 범위로 만사를 생각하고 되도록 멀리 풍경을 보자고 마음에 새겨둔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장거리 러너인 것이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것이 지금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이다.” (p. 259)
140여일 만에 다시 출근이란 것을 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장거리 러너가 되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눈앞에 있는 과제를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이 보폭에 의식을 집중하면서, 그러나 동시에 멀리 목표와 풍경을 바라보면서, 적어도 끝까지 걷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렇게 달려가보려 합니다. 이게 지금 제가 바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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