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영방송이 위기다. 이 추상적인 명제가 늘 참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참과 거짓을 논하기에 앞서 수사적으로 이야기되는 경향이 적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2012년 바로 이 자리에서 공영방송이 위리가는 문장은 참에 가깝다. MBC가 파업에 들어간지 20여일이 지났고, KBS의 파업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MBC 파업은 김재철 사장 체제 아래서 방송의 독립성과 뉴스의 공정성이 훼손되는 것을 더는 용납할 수 없다는 절박한 자기반성에서 시작됐다. KBS 파업 역시 마찬가지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선두에서 외쳤던 사람들이 징계를 받고, 공영방송 뉴스의 수장으로서 자격이 없는 인물이 보도책임자로 내정되면서 KBS 내부가 요동치고 있다.
이러한 내부의 움직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MBC의 파업에 대해서는 심정적으로는 믿음이 가지 않는게 사실이다. 2년 전 이맘 때 MBC 노조는 “이명박 정권에게 MBC는 마지막 눈엣가시지만, 국민들에겐 마지막 희망”이라며 “어떤 인물이 새로운 사장으로 오든 그는 정권에 무릎 꿇은 꼭두각시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단 1분도 자리에 앉아보지 못하고 쫓겨나는 MBC의 첫 낙하산 사장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1분도 자리에 앉지 못할 것이라는 김재철 사장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MBC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그 시간 동안 MBC 내부는 침묵에 빠졌다. 그 침묵 속에 MBC 뉴스는, 시사 프로그램은 정말 순식간에 똘끼를 잃어가며 폐허가 됐다. 스스로를 배부른 돼지라고 자학하면서, 이들은 정말 지난 2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배불뚝이 돼지가 되었다.
지금 이 순간. “MBC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는 슬로건에 즉각적으로 드는 감정이 불신과 의심인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이 친구들. 또 퍼포먼스와 말 뿐인 것 아냐?”
2.
그런 맥락에서 지난 18일 MBC 파업 현장에 강연자로 초청된 강신주 박사의 이야기는 KBS, MBC 노조가 새겨들을 이야기다.
“교수라는 직업, 꽤 괜찮은 직장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권력도 있고, 돈도 괜찮게 번다. 그런데 학생들의 눈이 말한다. 선생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이다. 여러분들도 똑같다. 여러분들은 방송에 돈벌려고 들어왔느냐. 취미생활로 들어왔냐. 어떻게 들어왔든 상관없다. 그런데 이 직장에 들어와서 뭘 봤느냐? 국민, 울분, 비루함을 보지 않았나? 그렇다면 이 직장에서 당신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 여러분은 오는 25일, 월급이 안 나올 때 유혹에 빠질 거다. 그 때 자녀의 눈을 봐라. 짐승처럼 살지, 당당한 언론인으로 살지. 잘 생각해 봐라. 돈 벌어야 한다는 말은 변명이다. 그 말은 두려워서 하는 것이다. 비겁해질 때 사람들은 ‘내가 침묵하면 다른 사람이 편하다’는 말을 한다. 거짓말이고, 뻥이다. 핵심은 내가 (싸움을 더 이상) 안하겠다는 것이다. 차라리 ‘난 개가 되겠다, 난 원래 돈 벌려고 들어왔다’고 얘기하는 편이 낫다. 당신들.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살았다. 당신들이 바로잡혀야 말 못할 사람의 입이 열린다. 다른 이나 후손을 위해 뭘 하고 죽어야 한다. 그런 모습을 보일 때 (시청자들은 비로소) 당신들을 볼 것이다. 당신들이 지금 여기 앉아있는 것은 (방송인으로서) 쪽팔리기 때문이다. 언론자유는 언론에 있는 여러분이 보호해야 한다. 못 지키면 붕괴한다. 민주주의의 싸움은 만만한 게 아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수천명의 말할 자유를 감당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한다. 언론자유가 없으면 언론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언론인으로 살 것이냐 시정잡배로 살 것이냐,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언론 자유의 중심은 법도 아니고 시민도 아니고 자신들이 일어서서 지켜야 한다. 요즘 교수, 기자하고자 들어오는 젊은이들은 많은 스펙을 쌓은 뒤 입사한다. 시작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런 성향을 탈피하지 못하고, 돈과 권력 등에 연연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세태다. 우리나라의 언론 자유는 허락된 자유다. 허락된 자유는 허락한 측에서 폐기할 수 있다.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아무도 안 찾아준다. 더 근본적인 것은 자기들의 성향을 버려야 한다. 생계에 연연한 사람들이 KBS MBC 등 좋은 언론사에 들어온다. 그런 것이야말로 어른이 못된 것이다. 짤릴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하지 못하면서 무슨 언론을 하겠다는 것이냐? 싸우려면 끝까지 밀리지 않고 싸워야 한다. 지금까지 잘먹고 잘살아왔으면, 이제 진짜 국민을 위해 2~3년 굶을 생각으로 싸울 각오가 있어야 한다.”
싸움은 말과 포퍼먼스로 하는 게 아니라 이런 기개와 배짱, 그리고 당당함으로 하는 거다. 이런 당당한 기개가 비겁한 논리를 이겨낸다면, 지금의 움직임은 공영방송, 더 나아가 언론의 자유를 위해 긍정적인 움직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게 전제되지 않는다면, 또 하나의 무력감과 자괴감을 만들어내는 퍼포먼스에 불과할 가능성도 크다.
지난 17일 KBS 38기 방송저널리스트 21명이 "KBS에 만연한 자괴감과 무기력과 냉소를 더 이상 지켜만 보지 않겠다"며 집단 행동 동참의사를 밝혔다. 38기 방송저널리스트는 KBS의 막내 신입사원들이다. 이들이 지난 1년 동안 KBS 선배들을 관찰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선배들 사이에 페스트처럼 만연한 자괴감은 막내인 저희들에게도 번졌습니다. 보도국 소속 기자로 있다가 시민단체의 집회에서 몰매를 맞을 뻔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KBS가 언론이냐'며 밤을 샌 사건기자의 얼굴에 찬물을 뿌려주시던 아주머니의 얼굴을 기억합니다. 그날 다행히 비가 와 아무도 저희의 눈물을 보진 못했습니다…."
페스트처럼 만연한 자괴감, 나는 이 싸움이 KBS, MBC 종사자들이 이 자괴감에서 벗어나느냐, 아니면 더 큰 자괴감에 빠지느냐의 싸움이라고 본다.
3.
가끔씩 지금과 같은 미디어 환경에서 굳이 공영방송을 강조하고, 굳이 언론의 자유를 논할 필요가 있느냐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이런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사례라고 든다는 것은 고작 “나는 꼼수다”라든지, “SNS 혁명”이라든지 뭐 그런 이야기다. 누구나 미디어를 만들 수 있고, 누구든지 미디어와 함께 세상을 돌파할 수 있는 시대에, 공영방송의 가치, (방송, 신문) 저널리즘의 가치라는 것은 너무 올드한 이야기라는 주장도 빠지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는 지금의 MBC, KBS 파업을 참 힘빠지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왜? 그만큼 MBC, KBS의 지난 3년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의제 설정, 권력에 대한 감시 측면에서 아무 것도 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번 싸움은 MBC, KBS 당사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싸움이다. 공영방송이 공영방송다워야 한다는 움직임,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자율성, 공정성은 지켜져야 한다는 움직임, 이러한 이야기가 외부의 주장이 아니라 내부적인 움직임으로 실천적으로 격동칠 때, 공영방송이라는 불편한 제도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제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제도는 공영방송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정부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세력 간의 논쟁을 통해 담론적으로 구성된다(이준웅, 2009, p486). 이 담론 투쟁에서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는 공영방송의 정체성과 영향력을 규정하는 주된 변수다. 이 투쟁의 주도권이 외부에 있을 때, 공영방송의 색깔과 채도는 늘 외부의 힘에 의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투쟁의 주도권이 내부에 있을 때, 공영방송의 색깔과 채도는 늘 흔들리면서도, 늘 일관된 가치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싸움은 공영방송의 정당성과 정체성을 스스로 찾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면서, 공영방송을 둘러싼 담론 싸움의 주도권을 자신들 스스로가 가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또한 이 주장이 정당하고, 이 주장이 정치적으로 승리할 때, 비로소 공영방송은 우리 사회에 인정받는 제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타자의 인정, 외부의 인정은 공영방송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4.
결국 이번 파업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적인 승리다.
“왜 이놈의 방송국이 점점 더 정치판이 되어 가는거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사실 이놈의 방송사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정치적’인 인물보다 프로그램으로 말하는, 기사로서 말하는 인물이 존경받고, 인정받고, 위로 올라가야 할 게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KBS, MBC 스스로가 자신의 힘으로 정치적인 독립과 자유를 쟁취하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공영방송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산물이기 때문이다. 싸워서 쟁취하지 않으면, 늘 정치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될 때, 어떤 권력이 정권을 잡든, 이놈의 방송국은 점점 더 정치판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적인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고전적 정의에 따르면 그것은 ‘적과 동지의 구분’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화해할 수 없는 존재방식을 가진 자들간의 집단적 대결을 함축한다(Schmitt, 1993/1966). 이 대결은 공영방송의 존재 방식, 정체성, 운영방식, 프로그램 내용, 발전 방향 등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 관계, 태도 등을 지닌 집단 간의 대립을 통해서 형성된다. 이 대립에는 협상과 거래, 토론과 논쟁, 그리고 무자비한 권력의 행사가 동반되며, 여기에는 이러한 정치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가치, 이념, 주장, 근거가 설득을 위한 자원으로 동원된다(이준웅, 2009, p496).
KBS와 MBC는 이 싸움에서 누구와 손을 잡고 어떤 자원과 논리를 동원하면서 어떤 집단을 완벽하게 패배시킬 것인가? 패배시킬 주체는 명확하다. 공영방송을 권력의 수단으로 삼고자 하는 모든 개인과 집단들,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개인의 안위를 지켜내려고 하는 기회주의자들, 이 모두를 패배시켜야 한다. 그것도 철저하게 패배시켜야 한다. 다시는 공영방송에 그러한 사적인 욕망이 개입할 수 없는 불편한 역사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이번 파업의 유일한 목표는 아닐 게다. 또한 이러한 목표가 설사 달성한다 할지라도, 향후 KBS, MBC가 어떤 모습으로 진행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정치적 갈등은 당사자 누구도 완벽히 통제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돌이킬 수 없는 결말로 귀결되곤 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투쟁의 본질에 따라 갈등 당사자들은 결국 ‘이기거나’ 혹은 ‘지는’ 어느 한 편에 속하게 되겠지만, 이로 인해 발생할 결과가 반드시 ‘이긴 편’을 만족시키리란 보장도 없다(이준웅, 2009, p497).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싸움에서 또 진다면, 이 파업은 또 하나의 짙은 무력감과 자괴감을 공영방송 내부에 각인시키는, 아주 몸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점이다. 결국 지금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한가지 뿐이다.
“무조건 이길 것!”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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