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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예찬

오스트리아, 새로운 여정의 시작


어느 여름날, 오스트리아 여행을 떠나기 2주 전. 나는 이미 오스트리아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구글맵에서 길을 익히고, 동선을 짜고, 호텔닷컴에서 숙소를 찾아보고... 시작은 환불이 불가능한 비행기 표를 사는데서 시작했다. 어느 평일 저녁, 주말 부부였던 나는 퇴근 후 홀로 라디오를 들으며 저녁을 준비하는데 모차르트의 음악이 나오는 거다. 그 음악이 어떤 촉매제가 되었을 거다. 노트북을 열고 몇 번의 클릭으로 오스트리아 빈으로 들어가 독일 뮌헨으로 나오는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빈과 뮌헨 사이에 15일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출발 2주전, 나는 진행하던 이런저런 프로젝트, 한 출판사와 계약한 단행본 초고의 마지막 챕터 등등 그해 초여름까지 마무리해야 할 일들을 매듭지었다. 여행에는 이런 기능도 있다. 일상에서 매듭지어야 할 일들을 마무리 짓게 만드는 힘.


아침, 저녁으로 153번 버스에서 동선을 짜기 시작했다. 자주 활용한 것은 구글 맵이었다. 지도를 클릭하면 그 지역의 풍경을 찍은 수많은 네티즌들의 사진이 가감 없이 올라와 있다. 그 지역까지 갈 수 있는 대중교통 노선, 다른 지역에서 이동할 때 소요 시간이 덤으로 제공된다. 서강대교를 지나 여의도로 진입하면서, 반대로 서강대교를 지나 연남동을 지나치면서 내가 확정한 루트는 오스트리아 빈(세기 말의 도시) - 멜크(수도권의 공간) - 오버트라운과 할슈타트(호수가 만들어 낸 마을) - 볼프간 길겐과 바트이슐(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휴가 별장) - 잘츠부르크(음악의 도시) -이탈리아 최북단 볼차노(돌로미티 트레킹의 게이트웨이) - 오르티세이와 셀바 디 발가르데나(돌로미티 트레킹) - 인스부르크(알프스로 둘러싸인 도시) - 뮌헨(맥주의 도시)이었다.




스위스를 간 이유가 체르마트의 마테호른에 빠져서라면, 오스트리아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배경으로 알프스를 좀 더 깊게 보고 싶어서였다. 생각해보니 지난 40년 동안 나와 오스트리아의 관련성은 0.1도 없었다. 관심이 없었고, 그만큼 아는 것도 없었다. ‘무엇을 하고 싶다’, ‘꼭 여기는 가야 한다이런 생각과 지식이 없으니 매력적인 공간은 인연처럼 운명처럼 불쑥불쑥 솟구치곤 했다. 구글맵의 어느 지역을 검지 손가락으로 눌렀는데 뭔가 내 마음에 찡한 느낌을 주는 이미지가 뜨면 일단 루트에 들어갔다. 누군가의 블로그를 보다, 다큐멘터리를 보다, 관련 책을 읽다 마음이 텅 내려앉는 느낌을 주는 곳 역시 루트에 포함되었다.

물론 찡하다고 모두 방문한 것은 아니다. 그 다음부터는 동선의 문제, 하루에 3시간 이상 움직이지 않을 것, 한 공간에 2~3일 씩은 체류할 것, 이런 원칙하에 동선을 체크했고 그렇게 얻어진 루트가 위의 루트였다. 갈 곳이 정해지면 정해지면 그 다음은 숙소와 교통의 문제, 렌트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일단 역에서 가까운 숙소를 1순위로 찍은 다음 다음으로 네티즌들의 별점과 피드백을 살펴봤다. 이동은 일단 기차로 장거리(2시간 이상)로 움직여야 하는 곳은 사전 예약을 했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국가마다 다른데 오스트리아의 경우 2시간 이상을 기차로 이동할 경우 사전 예약하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가격 우위에 있다. 좀 멀리 이동하는 굵직굵직한 일정은 미리 시간까지 정해놓고, 세세한 이동은 유연하게 가는 것이 발걸음을 자유로우면서도 합리적으로 끌고 가는 방향이라는 생각도 이런 결정의 이유였다.

이렇듯 여행에도 원칙과 기준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의 기준에 따라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깐 이것은 우주에 단 하나밖에 없는 여행 코스인 거다.


 


여기까지 정해진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그 공간의 인물, 문화, 공간,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된다. 막연히 알프스 때문에 그곳에 가기로 마음먹었지만, 세부적인 루트를 짜고 지역을 검색하고, 관련 이야기들을 모으다보면 애정이 생기기 마련인 거다. 그리고 이 관심과 애정으로부터 오스트리아는 놀라운 공간으로 변주하게 된다. 거기에는 음악이 있다. 천재가 있다. 자연이 있다. 호수가 있다. 커피하우스가 있으며, 세기 말의 풍경이 있다. 자 무엇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지금부터 하게 될 이야기는 바로 이 이야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