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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예찬

삶에 대한 열망, 누구도 이 흔적을 지우지 마라. 몽트뢰로 가는 길


짹깍짹깍. 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 레만호수의 오후는 조용하다. Silence. 짹깍짹깍, 낮게 나는 새의 조그마한 지저귐 이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 이 고요함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은 짹깍짹깍 마음의 시계 정도다. 이제 움직여야 하는데... 몸이 쉽게 움직여지지 않는다. 오후의 태양 때문도 고요함 때문도 아니다. 내가 내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왔다는 감각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오후 나는 내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조금 더 이동하려 한다. 무엇이 나일까? 이 고요함이 나일까? 분주함이 나일까? 어느 쪽이라도 좋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오후 4, 나와 그녀는 몽트뢰 시옹성으로 향하는 유람선을 탄다. 뱃고동소리와 함께 유람선이 출발한다. 바람이 시원하다. 유람선은 사포린(st. saphorin), 브베(Vevey), 몽트뢰(Montreux)를 지나 시옹성을 향한다. 넓은 호수 건너편은 프랑스라고 한다. 스위스와 프랑스, 로잔과 몽트뢰, 오전과 오후, 호수와 포도밭, 뜨거운 태양 아래 증기기관차의 고동소리를 들으며, 유람선 위를 나는 갈매기를 마주하며, 선착장 주변에서 물장구치며 손 흔드는 십대 친구들을 바라보며 수많은 경계로 만들어진 존재의 균형이 무너진다. 그러니깐 나는 그 모든 것을 오고 갈 수 있는 자유인 것이다. 유람선 앞뒤에는 이 유람선이 오고가는 스위스와 프랑스 국기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그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나는 오늘 하루도 여기에서 저기로 움직이며, 그 안에서 수많은 바람과 향기와 웃음소리와 습기를 머금는다. 평상시에는 그런 생각을 해본적 없지만 이런 날이면 나의 머리 속에 이런 문장을 곱씹게 된다.

죽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다.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이 자유로움을 뒤로한 채 죽게 되는 것에, 이 예기치 않은 기막힌 시간과 공간과 인연을 뒤로한 채 죽는 것에 분함을 느끼는 것이다. 이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시간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시간의 감정과 이야기를 스스로 완성시키지 않으면 그것은 내 인생이 아닌 것이다.



몽트뢰 시옹성에 도착했다. 오후 5. 아직 태양은 호수 위에 걸려 있지만 시옹성의 내부는 어둡다. 시옹성은 중세시대 지하감옥으로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고 한다. 16세기 제네바의 종교 지도자 프랑수아 보니바르. 그는 이 감옥에서 쇠사술에 묶인 채 6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시인 바이런은 보니바르를 떠올리며 <시옹성의 죄수>를 썼다고 한다. “쇠사슬을 벗은 영원한 정신! 자유, 너는 지하감옥에서도 환히 밝도다. 그곳에서 네가 머물 곳은 뜨거운 열정. 사랑만이 속박할 수 있는 열정이어라. 자유여, 너의 자손들이 족쇄에 채워져 차갑고 습기찬 햇빛없는 어둠 속에 내던져질 때 그들의 조국은 그들의 순국으로 승리를 얻고 자유의 영예는 천지에 퍼지리라. 시옹! 너의 감옥은 성스러운 곳, 저의 슬픈 바닥은 제단, 그의 발자국에 닿은 너의 차가운 돌바닥은 마치 잔디처럼 되어버렸구나! 누구도 이 흔적을 지우지마라. 그것은 폭군에 항거하여 신에게 호소한 항거이니.”



죽고 싶지 않다라는 감정을 느낀 종착점에서 마주한 시옹성의 감옥, 거기에는 죽을 수 없다는 자유를 향한 저항과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죽음의 기억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었다. 나는 시옹성 내부 감옥에서 창살 밖의 파란 호수를 마주하며 깊은 수렁에 빠진 느낌이었다. 태양도 별도 달도 볼 수 없는 음침하고 차가운 돌바닥에서 삶을 위해 항거할 수 있을까? 삶을 위해 죽음으로 향할 수 있을까? 감옥 바로 밖에는 벼랑이 있고 그 아래는 호수다. 여기에서 얼마나 많은 피들이 흘러나왔고, 그 피를 먹으려고 모여든 날벌레와 던져진 고깃덩이를 기다리는 갈매기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내가 죄수였다면, 어둠 속에 내던져진 삶이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수많은 관계들이 꺼져가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아직 죽지 않았소. 이제 얼마 남지 않았소.” 상상 속의 나는 진땀을 흘리고 있다. 죽음이 온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창살 너머의 파란 호수의 색이 뿌옇게 흩날린다. 저 멀리서 성당의 종소리가 들린다. 바람 소리가 들린다. 돌틈 사이로 조그맣게 들어오던 햇살이 사라진다. 이때 나는 무엇을 원할까? 이때 역시 죽고 싶지 않다고 느낄까? 아니면 죽을 수 없다고 느낄까? 잘 모르겠다. 모든 게 끝날지 뻔히 알면서도 죽고 싶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아직 매듭지어야 할 이야기가 남았기 때문이다.



해질 무렵 시옹성에서 나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죽음의 기운이 고조됨을 느낀다. 죽음의 기운이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처럼,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소리처럼 내 몸을 떨게 한다. 동시에 소리치게 된다. 죽고 싶지 않아! 유람선에서 레만호수와 라보마을을 마주하며 느낀 삶에 대한 열망은 시옹성의 지하 감옥에서 조용히 가라앉는 대신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간다. 그러니깐 난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매듭지어야 할 이야기가 남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