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여행의 마지막 흔적은 프레디 머큐리가 사랑한 도시 몽트뢰다. 몽트뢰를 마지막으로 스위스 이야기를 매듭져야지 생각한 것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때문이다. 영화의 미덕은 퀸의 음악에 집중한다는 거다. 인도 소수 파사르계였던 태생이나 게이였던 성 정체성, 에이즈로 인한 이른 죽음과 같은 떡밥을 쉽게 물지 않고 그저 배경처럼 건조하게 그려낸다. 그보다는 친구, 연인, 가족과 같은 소중한 사람들 간의 유대를 회복하고, 우정을 회복하는 보편적인 서사를 배경으로 음악에 집중한다. 이 집중이 참 좋았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몽트뢰가 떠올랐다. 프레디 머큐리가 사랑한 도시, 그는 지인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면 몽트뢰로 가라"고 말할 정도로 이곳에 깊은 애정을 가졌다. 1978년부터 1991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부분의 음반 작업을 이곳에서 했다. 사랑, 우정, 음악, 평화, 사랑. 이 보편적 정서를 가장 아름답게 창조할 수 있는 도시가 바로 몽트뢰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평화로운 거리를 걷고 해지는 레만호수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사랑하는 사람과 맥주 한잔을 마시다보면 “we are the champion"을 외치게 된다.
프레디 머큐리가 영국 런던에서 스위스 몽트뢰로 삶의 터전을 옮긴 것은 대중과 언론의 나쁜 호기심 때문이기도 했다. 그가 양성에자이고, 에이즈로 죽어간다는 소문이 런던 저작거리에 무성했고, 프레디는 아팠다. 어느 날 프레디는 퀸의 멤버들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한다. “친구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무슨 병에 걸렸는지? 더 이상 이 얘기에 관한 것은 하고 싶지 않아. 그냥 죽는 날까지 음악을 하고 싶어. 그냥 계속 하던대로 하자” 그렇게 만들어진 곡이 “the miracle(1989년)"이다. 세계에서 계속 발견되는 기적에 대한 이야기였다. 죽음 앞에서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것 자체가 어쩌면 기적이었다. 그가 아름다운 기적과 같은 이야기를 쓸 때 영국의 일간지 <the sun>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린다. “이 남자 죽어가나요?” 병원에서 바로 나온 프레디의 사진 밑에 달린 기사였다. 런던 프레디의 집에는 늘 2백명 정도의 파파라치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화장실 창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상황, 프레디가 런던을 떠나 몽트뢰를 택한 것에는 불가피한 부분도 없지 않았다.
음악과 호수와 산책길과 파란 하늘이 어울러진 몽트뢰, 그는 그곳에서 죽는 그날까지 노래를 불렀다. 유머를 잃지 않으며 <going slightly mad>를 불렀다. 몽트뢰의 풍경을 닮아가는 듯 그의 마음은 이곳에서 놀라울 정도로 평화롭고 단 한번도 “끔찍해, 내 인생은 끝났어.”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병이 악화될수록 그는 몽트뢰의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부르고, 할 일을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게 매일 아침 레만호수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이유였다. 그의 마지막 곡은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1991년)>, <mother love(1995년)>였다.
When we were kids, when we were young, things seemed so perfect, you know? The days were endless, we were crazy, we were young. .. These days are all gone now but some things remain
When I look and I find, no change. Those were the days of our lives, yeah. The bad things in life were so few. Those days are all gone now but one thing is true. When I look and I find I still love you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 중(1991년)>
우리가 젊고 어렸을 때, 모든 것은 완벽해 보였어. 그 시절은 끝이 없을 것 같았고, 우리는 미쳤었고 젊었었지.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그래도 몇 가지는 남은 것 같아. 내가 볼 때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어보여. 그냥 그게 우리 삶의 시절이었던 거야. 삶에서 나쁜 것들은 적었던 것 같아. 그 시절은 모두 사라져갔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나는 아직도 너를 사랑해.
All I want is the comfort and care. ...I've walked too long in this lonely lane. I've had enough of this same old game. My heart is heavy, and my hope is gone out in the city, in the cold world outside. .. I long for peace before I die. All I want is to know that you're there. You're gonna give me all your sweet. Mother love ah ha (mother love). My body's aching, but I can't sleep. My dreams are all the company I keep. Got such a feeling as the sun goes down. I'm coming home to my sweet. Mother love. God works in mysterious ways. Eeeeh dop, de dop, dep dop I think I'm goin' back to the things I learnt so well in my youth. <mother love 중(1995년)>
내가 원하는 건 위안과 보살핌뿐이야. 나는 이 외로운 차선에서 너무 오래 걸었어. 똑같은 오래된 게임, 이제는 충분해. 마음은 무겁고 희망은 사라졌어. 이 도시 밖에서..이 추운 세상에서.. 나는 죽기 전에 평화를 간절히 원해. 내가 원하는 건 당신과 함께 있는 거야. 내 몸은 아파. 그러나 잠들 수는 없어. 꿈은 내 삶의 소중한 동반자야. 해가 지고 나는 달콤한 나의 집, 엄마가 머무는 그 집으로 돌아가는 꿈. 신은 신비한 방식으로 역사하셔. 나는 내 젊은 시절에 배웠던 것들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해..
브라이언이 그를 마지막으로 본 날, 머큐리는 이런 말을 전했다. “억지로 얘기를 만들지 않아도 돼. 너희들이 왔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 그러니까 아무 말 하지마. 이 순간이 너무 좋아.” 레만호수 앞에 자리한 머큐리 동상에 새겨진 비문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프레디머큐리, 인생을 사랑한 사람, 노래를 부른 사람>. 그는 의심의 여지없이 인생을 최대한으로 산 남자다. 이 남자가 사랑한 몽트뢰는 태양, 호수, 바람, 여유, 사랑, 햇빛을 최대한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몽트뢰에서 우리가 묵은 곳은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호텔 <헬베티>였다. 오래된 가구, 침대, 화장실, 그리고 내가 문을 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고, 닫지 않으면 출발하지 않는 엘리베이터. 그녀와 내게는 이 호텔의 낡음, 고풍스러움, 불편함, 삐걱거림, 이런 것이 기막히게 좋았다. 짐을 풀고 레만호수 앞의 한 식당에서 피자와 맥주 한잔씩을 먹는다. 그저 호수가 보이고, 재즈 페스티벌을 며칠 앞에 둔 시간의 설렘이 느껴질 뿐이다. 여유롭다. 아름답다.
체르마트 산행의 후유증으로 발톱이 빠져 점점 더 걷기가 불편해진 그녀는 먼저 호텔에 들어가고, 나는 홀로 레만호수를 걷는다. 벤치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기도 하고, 머큐리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을 구경하기도 한다. 몽트뢰에서 기억나는게 있다면 포근한 햇살, 빨갛게 물든 호수, 여유로운 사람들의 웃음, 벤치, 선베드. 이런 것들이다. 책 한 권을 들고 마냥 앉아있을 수 있는 곳, 파란 호수와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곳, 퀸의 음악을 듣고, 재즈를 들으며 거리를 소요할 수 있는 곳, 그래서 언젠가 다시 한번 오고 싶은 곳. 꼭 재즈 페스티벌의 기간에...
스위스 여행기는 여기에서 마무리한다. 그 다음 이야기들, 골든 패스 라인 기차를 타고 인터라켄을 경우해 라우터부르넨의 밸리호스텔에서 묵었던 시간, 다리를 절룩거리며 루체른의 카펠교와 해질 무렵의 취리히를 걸었던 시간은 사실 몽트뢰의 연장성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한 공간에 묵으며 수다를 떨고, 술을 마시고, 가볍게 산책을 하고, 음악을 듣고 그랬던 것 같다. 우연히 만난 그녀의 학교 제자들에게 배낭에 있는 모든 음식과 약간의 용돈을 선물로 줬고, 밸리호스텔에서 만난 20대 약사 청년에게는 맛있는 저녁과 와인을 선물했다. 스위스의 상징인 융프라호를 오르지 못한 것은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지만, 이 정도의 아쉬움은 남기는 게 삶이고, 여행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스위스가 내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취리히, 베른, 체르마트, 고르너그라트, 리펠알프, 로잔, 라보지구, 몽트뢰, 라우터부르넨, 루체른으로 이어지는 여정, 스위스는 자연이 아름답다라는 말을 많이 하고 실제 그렇다. 그러나 이 스위스 여행에서 내가 느낀 것은 자연의 위대함이 아니라 삶의 위대함이었다. 죽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다. 체르마트에서, 라보지구 포도밭에서, 시옹성에서, 그리고 머큐리가 사랑한 몽트뢰에서 내가 건져낸 하나의 단어는 삶이었다. 그래 난 죽는 그날까지, 하루하루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삶을 만들어갈 거다.
삶의 위대함을 가려쳐 준 스위스~ 쌩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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