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 스쿨/뉴스 놀이터

월드컵 스웨덴전을 본 후 기억나는 한 사람. 이영표


월드컵이 한창입니다. 어제 스웨덴전 경기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2014년에도 그렇고, 2018년도 그렇고 월드컵을 통해 개인적으로 기억하는 한 사람을 꼽는다면 이영표 KBS 해설위원입니다. 사실 월드컵 개막 이후 지금까지 언론에서 떠드는 시청률 성적표는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SBS 박지성 해설위원, MBC 안정환 해설위원에 조금은 밀리는 형국이었지요. 그러나 한국전의 경우 이야기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시청자들은 한국전에 있어서는 KBS 이영표 해설위원을 택한 것이죠. 왜일까요? 다른 국가와 달리 한국전에 있어서는 영표 형님의 전문적인 식견과 예측, 그것을 뒷받침하는 깨알 같은 분석과 해설을 듣고 싶었던 것이지요.

 

이영표 해설위원은 어떻게 지금의 이영표가 되었을까? 그리고 한국 축구는 어쩌다 지금의 한국 축구가 되었을까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검색질을 해봤습니다. 지금부터는 이영표 해설위원의 짧은 스토리입니다


이영표.

강원도 홍천 시골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어릴 적부터 날렵하고 달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강원도 홍천을 배경으로 한 이영표의 헛다리 퍼포먼스. 잘 어울리지 않나요

그러나 시작은 헛다리 퍼포먼스가 아니라 육상이었다고 해요. 학교 대표로 육상대회를 나가고,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그러다 축구감독 눈에 띈거죠. 마치 일본의 어느 만화처럼. 


너 축구 안할래?”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축구를 시작한 건 오로지 재미 때문이었습니다. 열심히 한 이유도 재미있어서였다고 합니다. 축구를 더 잘하면 더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죠.

이처럼 심플한 진리가 있나?

실제로 이영표는 노력형 인간의 대표명사입니다. 축구를 할 때도, 해설을 할 때도, 공부를 할 때도 그는 남들보다 열심히 하고, 꾸준하게 하고, 독하게 합니다. 고교 시절 이영표는 매일 새벽 5시면 눈을 떠 홀로 산을 뛰었다고 합니다. 축구부 훈련은 새벽 630분에 시작하는데 그보다 90분 일찍 훈련을 시작한 거죠. 축구로 치자면 한 게임 먼저 시작한 거죠. 훈련 벌레였던 이영표 때문에 대학에 간 친구들도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일례 하나. 고등학교 3학년 이영표는 일찌감치 건국대학교 입학이 확정되었다고 해요. 문제는 같이 운동했던 친구들이죠. 전국대회에서 4강에 올라야 체육 특기자로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데 성적이 좋지 않았던 겁니다.

주장을 맡고 있던 이영표.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 동료, 후배들을 데리고 나가 줄넘기를 시작합니다. 왜 줄넘기일까? 체력이 축구의 근간이라는 철학은 어린 시절부터 이영표의 의식 밑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효과는 3개월 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매일 땀 뻘뻘 흘리며 줄넘기를 하기 시작한지 언 100여일, 모두의 체력이 몰라보게 좋아진 겁니다. 그리고 그해 6월에 열린 전국 대회에서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우승컵을 거머쥐고 기세를 몰아 8월에 열린 대회에서도 우승을 합니다. 그해 여름이 끝난 어느 날 돌아보니, 동료들, 후배들 모두 줄넘기 2단 뛰기를 600개씩 하는 무사가 되어 있었다고 하네요.


줄넘기 지옥 훈련으로 친구들과 옹기종기 대학생이 된 이영표. 그러나 바로 이 시절부터 이영표에 시련이 닥칩니다. 대학 시절에 그의 축구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었다고 스스로 회고합니다. 오랜 무명의 시절이었습니다. 복숭아뼈에 피멍이 들고 양말에 핏물이 밸 정도로 드리블하고, 전매특허 헛다리짚기를 연마하지만 이상하게 축구 실력은 제자리를 멤도는 겁니다. 건국대 운동장, 훈련이 끝나고 해가 지면 운동장 벤치에서 30분 정도 해가 넘어가는 걸 지켜보며 별생각을 다했다고 합니다.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다네요. 도저히 넘어갈 수도 없고 뚫을 수 없는 강철벽을 만난 느낌이라고 할까요?


대학 4학년, 돌아보니 졸업이 눈앞이고, 같은 팀에 올림픽 대표가 6명이나 있었습니다. 6명에 영표는 끼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오후, 땀을 잔뜩 흘리고 차가운 운동장 바닥에 누웠는데 눈물이 흐르는 겁니다.

후배도 대표가 됐는데 주장인 나는 뭐 하는 건가. 어른들은 열심히 하면 꿈을 이룬다고 했다. 그런데 축구는 아닌 것 같다. 재능이 있어야 하는 거구나. 나는 속았구나.”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기회가 찾아옵니다. 졸업을 코앞에 둔 1999,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 선발이 끝난 뒤 추가 테스트가 있었고, 기를 쓰고 뛰었고 그렇게 국가대표가 된 겁니다. 2002년 월드컵 때 거스 히딩크 감독을 만난 건 또다른 기막힌 인연이자 노력이 거머쥔 행운이었습니다


이영표는 대회 개막을 이틀 앞두고 종아리 부상으로 6주 진단을 받습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순간입니다. 이때 히딩크 감독이 부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 “못 뛰어도 같이 간다.” 전담 치료사를 1주일 내내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붙여줬고, 이영표는 이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이영표의 해외 진출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입성을 가능케 한 것 역시 히딩크 감독이었습니다. 함께 유럽리그에 진출한 후배 박지성은 동반자 같은 친구였습니다. 낯설고 말도 안 통하는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에서 박지성과 이영표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절친이었습니다. 룸메이트였고 버스에서도 늘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월드컵 3회 연속 출전, 프리미어리그 진출, 제가 기억하는 이영표 선수는 늘 승승가도를 종횡무진 누비는 대한민국의 대표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수 시절 내내 스스로를 성공한 축구 선수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항상 스스로에게 부족하고 실망했던 기억만 많다고 기억합니다. 명성이 쌓이고 돈이 쌓이면서 불안도 커졌습니다. 프리미어리그 진출 후 축구가 더 재미있어야 하는데 경기가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구단버스가 교통사고가 나서 몇 달을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합니다.


어디서 그런 스트레스가 왔을까? 돈과 주의의 평가였습니다. 돈을 받으면 경기의 목적이 즐기는 게 아니라 승리가 됩니다. 최선을 다하고 즐겁게 준비하는 건 나의 몫이지만 승리는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겁니다. 내 맘대로 안 되는 걸 하려니깐 마음은 자주 불안을 오갑니다. 주의의 시선과 평가도 과도하게 의식하게 됩니다. 날 칭찬했던 사람들의 입에서 비난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걸 버티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칭찬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던 겁니다. (정말 우리는 언제즈음 외부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걸까요?)


2013년 이영표는 캐나다 벤쿠버화이트캡스에서의 이력을 마지막으로 그라운드를 떠납니다. 은퇴 후 많은 선수들이 지도자의 길을 가지만 이용표는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밴쿠버 구단에서 엠버서더로 활동하는 동시에 KBS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그가 궁극적으로 지금 시점에서 꿈꾸는 길은 행정가입니다.

 

제가 축구를 하면서 전술적인 부분이나 심리적인 부분은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작은 지식은 있을 수는 있지만 그런 것을 안다는 것과 감독이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감독은 축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이고 사람을 다루는 기술과 정직함 그리고 강인함과 부드러움을 함께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지도자라는 직업은 대단히 매력적인 직업이지만 제가 지도자를 안 하겠다고 한 이유가 몇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한가지는 저 스스로 생각했을 때 저는 좋은 지도자가 되기 어렵다는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행정가로서의 길에는 관심이 있습니다. 좋은 선수보다 더 중요한 건 좋은 지도자에요. 좋은 선수는 1015년 정도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지만 은퇴를 하면 거기서 끝이죠. 하지만 좋은 지도자는 수십 년 동안 좋은 선수를 수십 명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한국에 정말 필요한 건 좋은 선수보다 좋은 지도자입니다. 그러나 제가 유럽에서 선수생활을 하면서 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느낀 것은 축구를 잘하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축구를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겠다 라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시스템말입니다. 한국 선수들이 축구를 잘 하는 편이에요. 이 환경과 이 분위기에서 이렇게 유럽에서 성공한 선수들이 여러 명 나온다는 건 특별하게 축구를 잘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술적인 면에 비해서 시스템이나 행정력은 여전히 뒤쳐져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결국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결국에는 한국 축구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고 그것이 제가 MLS를 택하고 캐나다에서 여러가지를 배우는 이유입니다.” (골닷컴,인터뷰 중)


 

이영표는 무엇을 배우든지 성실하고 독합니다. 이광용 캐스터는 한 인터뷰에서 이영표 해설위원의 성실함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모든 전문가들이 예측을 한다. 그게 전부 맞지는 않는다. 이영표 위원도 마찬가지다. 경험과 분석을 바탕으로 예측을 한다. 그런데 워낙 현장 경험이 많고 다양한 데이터를 들여다보기 때문에 정확한 예측을 하는 것 같다. ‘저런 데이터는 아무나 생각지 못하는 건데싶은 것까지 준비한다. 나 역시 이영표 위원의 중계를 들으면서 놀랄 때가 있다.” (시네 21 인터뷰 중) 


그가 선수를 넘어 해설에 있어서도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는 근저에는 결국 연습, 연습, 연습, 치열한 성실함이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은퇴 이후 이영표 선수의 새로운 화두는 시청자들에게, 시민들에게 좀 더 축구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즐길 수 있는 환경 마련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 스포츠 마케팅을 공부하고, 리그운영, 비즈니스를 배우고, 시청자와 호흡하는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그 역할을 아주 지독히도 성실하게 수행해나가는 것 같습니다


좀 더 잘 즐기기 위해 좀 더 성실하게 준비하고 연습하는 것이지요. 마치 고딩시절 줄넘기를 하던 것처럼, 마치 매일 새벽 5시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산을 한바퀴 뛰던 것처럼.

 

어쩌면 이 모습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 스웨덴전을 보면서 한국 축구에, 그리고 나의 삶에 필요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성실한 게 꼭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좀 더 잘 즐기기 위해 성실하게 준비하고 체력을 키우고, 꾸준하고 공부하고 운동하는 것. 더불어 히등크처럼 좋은 스승을 만나고, 박지성처럼 좋은 벗을 만나는 것. 스웨덴전 관람 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남은 경기 파이팅...


<참고문헌>

여성중앙 (2014.1.03). 이영표의 성공DNA

시네 21 (2018. 6. 18). KBS 이영표·이광용, "중계도 경기처럼 신뢰하는 파트너라면 감점 요인을 최소화할 수 있다.

동아일보 (2014.2.10).[김종석 기자의 스포츠 인생극장]<11>축구 국가대표 이영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