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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스쿨/뉴스 놀이터

온라인 여론을 점령하라. 댓.글.부.대


저희 회사에서 매주 발표하는 시청자 지수 중에 코코파이-nonTV란게 있습니다. non TV, 이른바 TV 밖에서 얼마나 프로그램이 화제를 불러 일으켰냐를 살펴보는 건데요, 이 지수를 개발한 이유는 이런 겁니다. 누가 요즘에 프로그램을 TV로 봐? TV 시청 말고 인터넷이나 그런데서 사람들이 이야기되고 떠드는 것도 평가에 넣어야 하는 것 아냐? 말은 쉽지 사실 이 지수 개발할 때 고민도 많이 하고 시뮬레이션도 많이 돌렸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지표, 사실 온라인 화제성과 관련해서 이만한 지수는 없다고 자부하는데요, 근데 결과를 보면 볼수록 온라인 화제성을 얼마나 프로그램 평가에 반영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게 됩니다. 이유는 하나, 댓글부대가 붙으면 모든 게 끝입니다. 워너원이 나왔다 싶으면 그걸로 그날은 게임 끝입니다. 팬들이 자발적으로 부대를 만들어 짤방 클릭하고, SNS 공유하고, 커뮤니티에서 난리를 치고, 기사에 댓글 달고, 댓글부대가 온라인 화제성을 좌지우지하는 것이지요.


이 지수를 현장에서 관찰하면서 저에게는 하나의 확신이 생겼습니다. 인터넷 여론, 그건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모인 댓글부대가 만들어낸 결과다. 일반적인 여론과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 댓글부대의 연원은 어디일까요? 오늘 이야기는 댓글부대의 계보학.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정치 기사에 대한 댓글 계보학인데요, 한국일보 박지윤 기자의 이야기를 토대로 정리해보려 합니다.

 


 

이야기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2008년에서 시작합니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08년 봄, 국정원은 알파팀이라는 여론조작 단체를 만듭니다. 광화문의 한 식당에 모인 10명 안팎의 우익청년들, “여러분들께 부탁합니다. 이 나라를 위해 여론을 바꾸는 일을 해주십시오.” 이들은 MB정권을 옹호하고 비판세력을 공격하는 글을 조직적으로 써내기 시작합니다. 타깃은 다음 아고라를 포함한 주요 커뮤니티. “악플이 달릴 때마다 틈틈이 들어와 답 댓글을 달 것. 여러 아이디로 로그인하여 게시물에 찬성버튼을 여러 번 누를 것, 링크를 여러 사이트로 옮겨 클릭을 유도할 것.” 세심하고 꼼꼼한 매뉴얼에 따라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클릭수를 늘리는 응용 프로그램이 제공됩니다. 이들에게는 꼬박꼬박 쌈짓돈이 전해졌습니다.

 

2009년 원세훈 국정원장이 취임합니다. 알파팀이 민간인 알바의 위상이었다면, 원세훈 취임 이후 정보원들이 직접 투입되는 국정원 내 공식 조직의 형태로 댓글부대가 발전합니다. 70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력이 4개의 팀으로 분화하면서 진화된 조직성을 갖추게 됩니다. 한 사람당 여러 개의 아이디를 번갈아 사용해 일당백의 역할을 해내는 것은 기본. 직접 게시글을 작성하는 것은 물론, 타깃으로 삼은 글에 찬성과 반대를 반복 클릭해 보수 정권에 유리한 방향으로 게시판을 도배합니다. 내부 조직원을 중심으로 댓글 알바까지 꾸준히 그 규모를 확장해가면서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 내 심리전단 산하 민간인 댓글부대의 규모는 무여 3,500여명에 달했습니다. 이들에게는 매달 3억원 안팎, 1년이면 30억원에 이르는 금액이 지급됐고, 이 돈의 출처는 감사원의 감시조차 받지 않는 돈, 특수활동비였습니다.

 

2012년 대선, 새누리당 SNS 미디어본부장으로 활동한 윤정훈 목사. 속칭 십알단으로 불린 SNS 계정들을 운영하며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고 야당 후보들을 비방하는 내용의 글을 지속적으로 올립니다. 이 활동에도 국정원이 개입해 있었습니다. 국정원과 윤 목사 사이에 여러 차례 통화한 내역과 검은 돈이 오갔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18대 대선 당시 우리의 대권 플랜은 트위터 장악이라는 입장을 공공연히 표명합니다. 이들은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트위터 정복특강을 개최하기도 하는데요, 맞팔률(누군가 자신을 팔로잉했을 때 자신도 그 사람을 팔로잉할 확률)100%인 사람만을 찾아 팔로우하면서 팔로워 수를 늘린 후,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글이나 상대 후보에게 불리한 글을 무한 리트윗(공유)을 해서 트위터 전체를 박근혜 찬양으로 도배하는 것을 전략으로 삼습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사이버 전사대로 불렀다고 합니다.

 

기술의 발전은 댓글 공작의 고도화로 이어집니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포털로 뉴스를 소비하고, 기사의 내용 자체보다는 댓글 평가에 집중한다는 점을 이용해 댓글의 공감수를 조작하기 시작합니다. ‘드루킹당은 아예 매크로 자동화 서버를 자체적으로 구축하기도 했구요, 주요 타깃이 커뮤니티에서 포털 뉴스 댓글창으로 바뀌면서 여론몰이는 이전에 비해 교묘해집니다. ‘관심 있는 특정계층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커뮤니티 공간에서 불특정 국민 대다수에게 전방위로 노출되는 언론 공간으로 공작의 활동무대가 바뀐 것이지요. 활동 방식도 페이크, 꼼수, 보복 등등 다양해졌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민주당 정권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조작을 벌이고, 정치적 잇속과 당장의 이해관계에 따라 노선을 달리하기도 합니다. 강한 공권력이 개입한 댓글부대 1세대는 보수정권의 몰락과 함께 과거가 됐지만, 새로운 형태의 댓글부대 2세대가 등장했고, 이들의 행위는 좀 더 복잡해지고 고도화되는 겁니다.



 

이를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냥 두고만 볼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댓글부대를 쓴 장강명 소설가의 인터뷰는 한 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실까요?

 

 


그는 한국 온라인 문화의 문제점과 이에 대한 대안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인터넷 여론, 온라인 문화라는 것이 오프라인에 부속돼 있는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 세계와 거의 같은 정도의 영향력이 있고 어떤 이슈에 있어선 실제로 사람들이 만나서 논의하는 공론의 장에 거의 필적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가 무법지대다. ‘어떤 질서를 만들자’ ‘이야기를 논의하는 규칙을 세우자고 하는 말들이 표현의 자유를 막는다는 규제 담론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쉽게 손보기가 힘들다. 그러다 보니 정말 무법지대가 됐다. ... 물론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다. 헌법적 가치이며 훼손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보자. 헌법에서는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런데 거주 이전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해 내가 고속도로 한가운데를 횡단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보행자도, 운전자도 안전하고 자동차도 만들어진 목적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도로교통법이 거주 이전의 자유를 훼손한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지금 온라인 세상에 자동차라는 게 생긴 건데 차도도, 보도도 없고 차가 사람을 막 치고 다니는 그런 상황인 것 같다. 여기에서 차도를 만들자, 차는 이 밖으로 나오지 말자고 하는 것을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하면 무리인 거다. 논의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온라인 여론 규제라기보다는 질서를 만들고, 그 질서가 공동선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설계하자는 이야기를 이제 해야 한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자체를 표현의 자유를 훼손한다고 말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

 

, 그렇다면 질문. 온라인 질서는 어떤 방향으로 설계해야 할까요? 어쩌면 지금부터 해야 하는 이야기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온라인 월드를 좀 더 면밀하게 관찰하고, 분석하고, 탐색하는 과정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