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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즐거움/노희경, 드라마, 미디어, 사람

We are not alone. 괜찮아 사랑이야


동생을 포크로 찍어대는 형(양익준 분), 스키조(정신분열)에 시달리며 한강우(디오 분)라는 어릴 적 자기 존재의 환시와 함께 살아가는 장재열(조인성 분). 정신과 의사지만 불안장애, 특히 남성에 대한 불안장애를 가진 지해수(공효진 분) 툴렛 증후군 환자 박수광(이광수 분)


이 드라마를 보다보면 우리 모두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살아가지만 저마다 마음의 병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 마음의 병에 대해 노희경은 라디오 DJ로 활동하는 장재열의 목소리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지금 들으신 곡은 1976년 잭 니콜슨의 연기가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 삽입된 클로징 테마였습니다. 주인공 맥 머핀은 처음 정신 병동으로 와 환자들을 보면서 그들과 자신이 절대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철저히 무시하고 비웃죠. 영화를 보는 우리 관객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 저들은 미쳤고, 나는 멀쩡하다 여깁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극이 진행되면서 우리는 혼란스러워집니다. 이상하고 음울하고 기괴하고 미쳤다고 생각한 등장인물들이 귀엽고 아프고 안쓰럽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우리가 쉽게 손가락질했던 정신과 환자들, 그러나 그들의 사연을 알게 되면, 너무나 특별하게 느껴지는 그들의 아픔. 정신과 의사들은 말합니다. 우리 모두 환자다. 감기를 앓듯 마음이 병은 수시로 온다. 그걸 인정하고 서로가 아프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세상은 지금보다 아름다워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 다른 생각을 갖는걸, 우리는 그가 그 사람이 나와 다르니까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무서운 오류죠.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보면 그 오류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는지 알게 됩니다. 생방송으로 진행한 오늘 장재열이 선택한 영화는 여기까지입니다.

 

주인공 장애열(조인성 분)은 의붓아버지를 죽인 후 기억을 잃은 어머니를 사랑하는 아들이자 그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간 형(양익준 분)에게 미안함 마음을 느끼는 동생입니다. 현실에서 지키지 못한 가족과 자신의 어린 시절그는 환영 속에 한강우라는 소년을 만들어 그를 보살펴주는 것으로 자신의 상처를 견뎌내고자 합니다. 강우는 마음 여린 친구가 스스로의 마음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낸 방어기제가 창조한 환영인거죠노희경 작가는 묻습니다과거의 상처 때문에 여전히 괴로워하는 마음 여린 누군가를 보듬는 건 어떻게 가능할까

 

노희경 작가의 대단함은 이상한 것, 이질적인 것을 경계 밖으로 밀어내는 우리의 공동체에서 노멀하지 않은 상태의 인물들을 담백하게 아무렇지 않은 듯 그려낸다는 겁니다.

난 강박 장애야, 난 심각한 성적 혐오야.

이런 이야기가 편하게 이야기됩니다. 툴렛 증후군 즈음이야 시간이 지나면 문제가 되지 않는 증후군일 뿐입니다. 이런 것 때문에 정신병이야, 장애야, 이런 낙인을 찍지 않고, 공동체 밖으로 밀어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이야기가 오가면서 사랑이 만들어집니다. 

 

멸균사회를 지양하는 우리 사회에 놀라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의붓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숨어들었던 피난처 화장실에서 여전히 지금도 잠을 자고 책을 보는 장재열의 모습, 엄마가 바람피는 광경을 바라본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소박하게 이야기하는 지해수의 모습. 이둘의 사랑이 커져가는 과정을 보면서, 어쩌면 사랑이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받았던 상처와 아픔을 서로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보듬는 과정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재열 : 옛날에 어떤 마을에 깊고 깊은 동굴이 하나 있었어. 그 동굴에는 천 년 동안 단 한 번도 빛이 든 적이 엇었지. 천 년의 어둠이 쌓인 깊은 동굴, 사람들은 그 동굴을 무척이나 두려워했지. 지금 너처럼. 사람들은 모두 천 년의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천 년의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빛이 드는 건 지금처럼 한 순간이야. 네가 30년 동안 사랑을 못 했다고 해도, 300일 동안 공들인 사랑이 끝났다고 해도, 괜찮다고, 다시 사랑을 느끼는 건 한 순간일 테니까.

해수 : 정말로 사랑이 어둠을 걷어낼까?

재열 : 그럼.

해수 : 너도 사랑지상주의니? 사랑은 언제나 행복과 기쁨과 설렘과 용기만을 줄 거라고?

재열 : 고통과 원망과 아픔과 슬픔과 절망과 불행도 주겠지. 그리고 그것들을 이겨낼 힘도 더불어 주겠지. 그 정도는 되어야 사랑이지

해수 : 그런 건 또 누구한테 배웠니?

재열 : 사랑한테 배웠지. 어떤 한 여자를 미치게 사랑하거든. 그녀의 이름은 엄마

 


괜찮아 사랑이야가 놀라운 점은 또 있습니다. 사회가 개인의 보호막이 되지 못하는 세상에서 가족 지상주의를 넘어 문제는 가족이야를 외친다는 점입니다. 지해수(공효진 분)의 환자 중 성기만을 그리는 증상을 가진 어린 소년이 있습니다. 이 병증은 어린 시절 옆방에서 낯선 남자와 섹스를 나누었던 엄마에서 시작됩니다. 이 소년의 상처는 역시나 어린 시절 엄마의 외도를 목격했던 그래서 남자와의 사랑이 불안하고 두려운 지해수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아버지에게 맞는 엄마를 두고 도망치지 못해 함께 맞는 소년 한강우는 장재열의 어린 시절 고통과 맞물립니다. 아픔의 중심에는 부실한 가족이 있고, 이것을 넘어서는 지점으로 가족을 넘어서는 작은 공동체를 이야기합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노희경의 이야기는 혁신적입니다. 가족으로 인해 상처를 가진 인물들이 낯선 타인들과 역시 상처받은 타인들가 소통하며 자신의 상처를 회복할 계기를 가진다는 대안적 삶이 공간이 등장하는 것이지요. 영원히 남자와 스킨십을 하지 못할 것 같은 지해수는 장재열과 해변에서 사랑을 나누게 되고, 장재열은 지해숙 덕분에 그의 분신이던 한강우를 떠나보낼 수 있었습니다. 장재열의 형도, 엄마도,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과정에 들어섭니다. 사실 이것은 작가가 열망하는 간절히 바라는 대안일 터입니다.


이 귀결에 박수를 보게 되는 것은 이 드라마를 통해 음지에서, 기억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너무도 멋진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통해 표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점입니다.

 

사막에서는 밤에 낙타를 나무에 묶어둬. 그리고는 아침에 끈을 풀어놓지. 그래도 낙타는 도망가지 않아. 묶여있던 지난밤을 기억하거든. 우리가 지나간 상처를 기억하듯 과거의 상처가 현재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는 얘기지. 난 화장실, 넌 불안증

 

이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것은 결국 하나

괜찮아 사랑이야

사랑의 놀라움에 대해 작가는 장재열의 목소리를 통해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침대가 아닌 화장실에서 자고, 엄마가 1365일 겨울에도 문이 열린 찬 거실에서 잠을 자고, 형이 지난 14년을 감방에서 지낸 얘기, 너 말고 또 다시 구구절절 다른 여자한테 말할 자신이 없어. 내 그런 얘기, 듣고 보고도 싫어하거나 불쌍하게가 아니라 지금 너처럼 담담히 들을 수 있는 여자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나는 없다고 생각해. 해수야 만약 그런 여자가 또 있다면 제발 알려줘. 내가 너한테 많이 매달리지 않게. ”


그리고 작가는 마지막에 외로움과 상처로 흔들리는 수많은 장재열과 지해수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합니다.


여러 사람의 수고로 어느 동굴 수녀원에 하루 24시간 1365일 밤낮으로 꺼지지 않는 촛불이 있다고 합니다. 촛불이 켜지는 이유는 단 하나. 동굴 밖 세상의 모든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서죠. 지금 혼자라도 외로워하는 분들, 누군가 당신을 위해 24시간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억하세요. 여러분은 단 한순간도 혼자였던 적이 없습니다


그래요

돌아보면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참고문헌

이정희 (2014). ‘사랑을 매개로 우리가 사는 세상 속으로 들어온 정신증’ : 노희경의 <괜찮아 사랑이야>. <플랫폼>, 48, 3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