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경 작가의 <라이브>가 끝난 지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전편을 다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회를 보고 “노희경”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볼 수 있는 것은 현장과 사람입니다.
아픈 사람, 다친 사람, 눈물 흘리는 사람, 소외되고 평범한 사람. 이들이 빚어내는 선한 기운을 담아냅니다.
“정의, 동료애, 사명감, 어른다운 어른, 젊은이다운 젊음, 공감, 유대, 연대, 이해는 여전히 찬란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노희경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그 이유에서 미디어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 중에 누군가는 노희경을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고자 하는 사람들 역시 노희경을 하나의 중요한 레퍼런스로 삼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더불어 노희경 작가의 이야기는 TV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를 선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노희경 작가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이 블로그에 노희경의 이야기를 짬짬이 올릴 예정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작은 책 한권을 쓰고 싶은데 우선은 그 밑작업으로 “노희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축적해 보려 해요.
일단 노희경 작가의 약력부터 살펴보죠.
1966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서울예전 문예창작학과 86학번입니다. 1995년 드라마 공모전에 『세리와 수지』가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1996년 단편 『엄마의 치자꽃』으로 방송 데뷔를 했고 2개월 뒤 데뷔작 『세리와 수지』도 전파를 탑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1996)』과 『거짓말(1998)』을 통해 마니아층을 거느린 젊은 작가로 급부상한 뒤 『내가 사는 이유(1997)』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1999)』, 『슬픈 유혹(1999)』『바보 같은 사랑(2000)』 『화려한 시절(2001)』『고독(2002)』『꽃보다 아름다워(2004)』 『유행가가 되리(2005)』『굿바이 솔로(2006)』 『기적(2006)』『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2007)』『그들이 사는 세상(2008)』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 박동 소리(2011)』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 『괜찮아 사랑이야(2014)』 『디어 마이 프렌드(2016)』, 『라이브(2018)』 등 거의 매해 굵직굵직한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에세이집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를 펴냈으며, 대본집 『그들이 사는 세상』 『거짓말』 『굿바이 솔로』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괜찮아 사랑이야』로 ‘읽는 드라마’라는 장르를 개척하기도 했습니다.
서른 살에 드라마 공모전에 당선된 것을 보면 20대 청춘 시절의 노희경 작가의 삶 역시 녹록치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제가 노작가의 이야기를 마주하면서 놀라는 것은 도돌이표 없이 넓어지고 깊어지며,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 자기 경계를 깨뜨리는 일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던진 질문에 대해 밀고 나가는 집요함은 점점 더 커지고 있고, 너무도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끌어올리는 힘은 깊어지고 있으며, 인간과 세상에 던지는 따뜻한 메시지는 점점 더 강력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거에요. 이것은 젊은 시절 문예창작과에서 습작하던 시절의 열망, 습작, 공부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경지인데,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이에 대해 노희경 작가는 2009년 채널예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Q: 드라마 집필이 끝나서 잠시 쉬고 계시다고 하시는데요. 평소에는 어떻게 작업하세요?
A: 굉장히 규칙적이에요.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일어나서 1시간 정도 할 일 하다가, 12시에 작업실로 가요. 그리고 밤 12시까지 글을 씁니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12시는 넘기지 않으려고 해요. 다음 날 작업에 지장이 있으니까. 그리고 2시쯤 잡니다. 거의 매일이 이렇죠. <그들이 사는 세상> 끝난 후에 잠시 쉬면서 책을 많이 읽고 있어요. 다음 작품 시놉시스도 쓰고 있고요.
Q : 굉장히 규칙적으로 사시네요.
A: 드라마 작가로 데뷔하고 1년은 안 그랬어요. 불규칙하고 제멋대로 살았는데, ‘이렇게 살다 보면 제대로 된 대본을 쓸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가 대본을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기다리고 있는 감독, 배우, 스태프를 생각하면 나태해질 수 없어요. 드라마 제작비를 생각하면 더욱 그래요. 제대로 하려면 나를 잘 관리할 수 밖에 없는 거예요. 그때부터 내가 나를 키운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단련하고 있어요. 처음엔 굉장히 힘들었어요. 사람은 정말 절박하지 않으면 안 변하거든요. 지금처럼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 6~7년 동안은 수면제를 먹고 잔 적도 있었어요. 습관 고치는 게 어마어마하게 힘들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죠. 주변에서는 “노희경 씨 자기 관리 잘하네.”라고 가볍게 말하지만 실제로는 죽기살기로 해서 겨우 이만큼 한 거예요.
Q : 20대 때는 어떠셨어요? 드라마 작가가 되기 전에는.
A : 그때는 더 심했죠. 지금 생각하면 내 몸을 함부로 취급했던 것 같아요. 밤도 많이 새고, 담배도 하루 네 갑씩 피우고, 밥도 잘 안 먹고. 체력이 한도 끝도 없이 떨어졌죠. 그런데 그땐, 그렇게 자기 몸을 학대하는 게 문학에 대한 내 열정인 줄 알았어요. 어마어마한 착각이죠. 건강한 삶이 건강한 정신을 만들고, 건강한 정신에서 좋은 글이 나와요. 지금은 경험적으로 그걸 알죠. 글쓰기가 20대 때는 내 전부였는데, 지금은 두 번째예요. 첫 번째는 행복하게 살기예요. 이렇게 말하면 많은 문학 지망생들이 “노희경이 변절했다.”고 말할지도 몰라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글에 투자해요. 20대 때는 고뇌하느라, 한 달에 한 줄도 못 쓴 적도 있었는데, 요즘은 하루에 10시간 동안 글을 써요. 그때를 돌아보면 그렇게 문학을 하고 싶다는 열망, 글을 쓰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음에도 정작 글은 안 썼고, 요즘은 글쓰기가 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도, 정작 내 인생의 대부분을 글쓰기로 보내고 있어요. 그때는 문학이 뭔지 토론하고, 핏대를 세우고, 밤새도록 싸우고 그랬는데 요즘 내 관심사는 인간이고, 삶이에요. 그런데 그 삶이 글이 되니까, 참 묘한 일이라고 생각하죠. 이제는 글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는 것 같아요. 혼융되어 있죠. 20대 때에는 여기까지가 글쓰기, 여기서부터는 삶, 이런 식이었는데, 지금은 글쓰기가 삶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어요. 글을 열심히 쓰면 삶도 성실히 사는 셈이죠.
글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는 것, 결국 좋은 글이란 좋은 삶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글을 통해 나를 바꾸고, 내가 넓어지면서 이야기도 깊어지고 풍성해지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라이브 종영과 맞물려 한 인터뷰에서 노희경 작가는 타성에 젖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의 삶을 관찰하라는 것이 ‘라이브’의 의미라고 전합니다. 이 역시 궁극적으로 글과 생활의 일치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를 살기 때문에 그의 글은 늘 지금 이 순간으로부터 분리되지 않고, 그 분리되지 않음을 통해 그의 이야기는 점점 더 성숙해지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고, 그런 선순환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노희경 월드는 그래서 “늘 라이브”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하게 될 이야기는 노희경이 지난 20년간 미디어 곳곳에서 만들어낸 수많은 “라이브”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공부의 즐거움 > 노희경, 드라마, 미디어,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정과 연대의 대서사시, 디어마이프렌즈 2 (0) | 2018.06.10 |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지만, 당신들은 디어마이프렌즈 (1) (0) | 2018.06.02 |
We are not alone. 괜찮아 사랑이야 (0) | 2018.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