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60분, 8년 만의 공개 천안함 보고서의 진실>을 보았습니다.
엔딩 멘트가 인상적입니다.
“침몰 원인을 재조사하더라도 46명의 젊은 장병이 순국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들을 위로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진실은 밝혀져야 합니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지난 8년이 씁쓸합니다. 우리는 그만큼 국가를 믿지 못했고, 국가는 우리들의 합리적 의심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너 빨갱이냐?” 합리적 의심은 너무 쉽게 이념 논쟁으로 갔습니다. 그러면서 피해를 본 것은 희생자와 유가족 아닐까요? 언젠가 김제동 형님이 천안함 미스테리를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본 후 SNS에 감상평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봤습니다. 조국이 대한민국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눈물을 흘리며 봤습니다. 이 땅의 엄마들이 아들들이 그들의 눈물들이 조국이고 대한민국입니다. 고작 감기 때문에 누워있던 저를 일으켰습니다. 미안하고 화가 나서 그렇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조국은 장군보다는 청춘을 바다와 육지와 하늘에 바치는 젊은이들을 더 소중히 여기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은 그들을 단 한 번도 잊지 않고 보듬어야 하는 조국입니다. 높으신 분들이 말하는 국가와 조국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압니다. 내가 사랑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진실로 진실로 높은 분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것입니다. 땀을 바치고 열정을 바치고 목숨을 바치는 우리 젊은이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조국이고 대한민국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갑자기 이 이야기가 생각난 것은 지난 3월 28일 (수) 방송된 추적60분을 보면서 잊혀진 얼굴들, 2010년 3월 26일이 떠올라서입니다. 여느 날과 같은 하루였을 겁니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운동을 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잠을 청했을 청춘 장병들의 평범했던 하루, 누구는 여친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을 테고, 누구는 휴가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파도는 높았지만 그건 바다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일상 중의 하루. 그러다 어떤 충격이 있었고, 선박이 깜깜하고 깊은 바다로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평범한 일상은 2010년 3월 26일로 끝났습니다. 그 날이 적국과 전쟁 중의 하루였다면 어쩌면 이야기는 투명했을 겁니다. 이 젊은 친구들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용감한 군인이고, 조국을 지키다 전사를 한 영웅들이며, 여기에 이론의 여지는 없었을 겁니다. 문제는 그 날이 파도만 높았을 뿐 다른 어떤 평범한 날과 다를 바가 없던 그런 날이었다는 겁니다. 적군도 없고, 포성도 없고, 전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동강이 난 전함과 희생자만 존재하는 아주 이상한 날이었다는 겁니다.
“우리 아들이 왜 죽은 거에요? 당신들은 그 시간에 도대체 뭐한 거에요?”
이 이상한 날에 대해 국가는 응당히 납득 가능한 답을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했는지를 두고 사건 발생 시간과 장소 등 기초적인 사실부터 혼란을 거듭했습니다. 열상감시장비(TOD)와 천안함의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은 있다 없다를 반복하다 조금씩 공개되면서 은폐 의혹을 자초했죠. 군과 정부의 정보독점과 부실하고 일관성 없는 발표는 의혹과 불신을 불러일으키는 것 투성이였어요. 언론과 정권, 기득권자는 아직 입증되지 않은 공격세력을 가정한 시나리오를 일찍부터 유포해왔구요. SF 영화도 아니고 너무도 창의적인 내용들로 꾸며진 이야기들이 연일 버전을 달리하며 언론을 장식했었죠. 그러면서 정작 아픈 사람은 희생자와 유가족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사건의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기보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책임전가, 위기와 안보로 그 국면을 넘어가자보자는 게 너무 안일하고 나이브해보였어요. 사실 개연성이 큰 시나리오 중 하나는 당시의 한반도 정세를 볼 때, 북한의 도발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그러나 진실은 저 멀리에 던져두고 ‘북한’을 미리 염두해두고 마치 짜놓은 시나리오처럼 수많은 증거들이 몰려드는 걸 보면서 정말 알아야 할 원인이 저 멀리 사라지고, 그렇게 희생자와 유가족의 의문과 질문과 절규의 목소리도 묻힌다는 느낌이 드는 거에요.
사실 이번 <추적 60분>은 여러 논란이 예상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진실을 다시 한 번 제대로 파헤치자, 그래서 정말 우리 조국이 “희생자”과 “유가족”에게 제대로 애도를 표하자는 의도로 저는 읽었습니다. 언젠가 생존자 중 한 분이 모 언론에서 인터뷰를 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너무 힘들다. 우린 정치적으로 언론에서 이용만 당한다. 수많은 음모론에 우리는 여전히 상처받는다.” 지난 28일<추적 60분> 천안함 편이 방송된 후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일부 언론에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집중 부각했어요. 한마디로 ‘거 좀 그만하시죠’ 이런 이야기죠. 그런데 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진실이 뭔지 한 번 제대로 살펴보는 게 필요하다고는 생각이 들었어요.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했다는 사실에 한국인의 절반 가량이 믿지를 않고 있어요. 이 불신을 키워낸 것은 국가였구요. 이 불신으로 지속적으로 피해를 보는 건 정말 피해자와 유가족, 그리고 생존자 분들 아닐까요? 지금 필요한 것은 빨갱이 타령, 이념 타령이 아니라 정말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하고 꼼꼼한 분석과 성찰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야 46명 청춘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그들의 영혼을 위무하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거 좀 그만합시다”는 잊자는 겁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아프지만 냉정한 현실에 대한 직시, 잊지 않고 정말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과학적인 검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젊은 청춘들의 죽음은 국립현충원이나 영웅서사나 모금운동이나 훈장으로 의미화되어서는 안됩니다. 무엇이 조국을 지키는 젊은 꽃다운 청춘을 떠나보냈느냐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 아니라, 기껏해야 북에 대한 복수 정도로 끝나는 마무리는 너무 아프고, 두 명 중 한 명은 믿지도 않습니다. 지난 8년을 돌아보면, 영문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난 젊은 청년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장군님들의 자기 변명과 권력자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산자들의 악다구니와 침묵에 대한 강요만 있었던 것 아닐가요? 이번 <추적 60분>이 이 씁쓸한 현실에 작은 변화의 물꼬가 되길 바랍니다. 고생길이 훤한 강윤기 피디에게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추적 60분> 천안함 편에 대해 ‘새로운 게 없다’, ‘음로론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분에게 프로그램 시청을 우선 권합니다. 한편에서 생존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지난 8년간 정치권, 언론계, 시민단체 모두가 의아해 했지만 이야기하기조차 부담스러워했던 천안함의 진실, 풀리지 않은 질문에 대한 추적이기 때문에 생존자의 목소리보다, 조금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추적에 방점을 찍었다고, 그게 희생자와 유가족, 생존자를 위한 진실 추적에 좀 더 나은 방법이었다고 이해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추적 60분> 못 보신 분들은 다음을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보다 이야기로 설명을 듣고 싶은 분은 방송 후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강윤기 피디의 이야기를 들으실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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