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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즐거움/논문아 놀자

담론분석과 담론의 정치학 (이기형, 2006)

이기형 (2006). 담론분석과 담론의 정치학. 언론과 사회, 14권 3호, P 106~145.

 

 

▢ 주요 내용

 

1. 들어가기 : 사회갈등과 담론의 정치학의 부상

담론분석은 말과 사물, 문화와 권력작용, 그리고 제도적 실행이 결합되는 양상, 그리고 그 결합이 주는 효과를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을 통해 규명하려는 방법론이다. 이 논문의 목적은 담론개념을 정리하고 체계화한 일종의 표지판을 제시하는 데 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 공고화’ 과정 속에 있는 한국사회 내에는 다양한 형태의 갈등이 존재한다. 진보와 보수의 첨예한 이데올로기적 갈등, 각 정당과 정파적 세력을 포함한 다양한 정치세력 사이의 갈등, 자본과 노동자의 갈등, 노동자와 노동자의 갈등,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각양의 직능단체 사이의 갈등, 정부와 지방의 갈등, 정부와 시민단체의 갈등, 세대 갈등 등이 매우 복합적이고 중층적 관계를 형성하면서 한국사회 내에 존재한다. 이러한 복합적 이해관계와 갈등의 표출은 물리적 충돌이나 사회세력 간의 힘 겨루기 투쟁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담론들을 매개로 한 정치행위와 의제설정 그리고 설득과 쟁론의 공적이고 사회적인 양상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기도 한다. 다수의 공론과 토론 그리고 표현의 장을 통해 부상하기 시작한 ‘담론의 정치학’이 현재 한국사회 내에서 상징권력과 소통권력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 작용하며, 담론의 생산과 수용과정에 다수의 행위자들의 참여와 개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정치, 경제, 일상, 그리고 미디어 영역을 아우르면서 영향력과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담론의 의미작용, 담론적 실천, 그리고 담론의 정치, 사회적 기능에 좀 더 구체적이고 맥락화된 관심을 가질 필요성을 느낀다.

 

2. 담론이란 무엇인가?

일상적이고 사적인 수준의 대화, 정부 발행 문서, 법정 판결문, 정부 포고령, 미디어에 실린 사설, 평론과 기고문, 영향력 있는 공인의 발언이나 연설문, 미디어나 온라인을 통해 전달되는 시각적 기호와 이미지, 전문가의 진단서와 소견서..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와 형식, 그리고 의미화와 권력작용을 발휘하는 담론들이 존재한다. 형식과 내용은 다양하지만, 담론은 공통적으로 언어적이고 이야기적이며 문화적 요소로 구성되며, 사물이나 현실에 대한 일정한 인식이나 재현, 주장을 담고 있다.

담론분석의 이론적 체계화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인 이정우(2005)의 말을 빌리면 담론은 다음과 같다.

“하나의 담론은 하나의 사회적 집단을 함축한다.... 담론의 다양성은 사회집단의 다양성을 함축하며, 새로운 담론의 출현은 새로운 사회집단의 출현을 함축한다. 담론을 통해 하나의 집단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하나의 집단이 특정한 담론을 만듦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표현하기도 한다. 따라서 신체적 차원에서의 사회집단들은 담론적 차원에서의 각종 담론과 맞물려 사회를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987년 이후 담론의 시대가 다원화의 시대인 것 또한 조금도 우연이 아니다.”

 

담론은 특히 사회제도적인 층위에서 주도적으로 발생, 교환, 수용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담론은 복잡하게 얽힌 의미망을 형성한다. 가령 대통령 탄핵사건, 대북정책, 대체복무제, 4대강 사업, 미디어법 등 한국사회에서 논쟁적인 사안들이 떠오를 때면 어김없이 서로 차별화되거나 대립각을 세우는 입장의 담론이 사회 내에 복수적으로 존재하고 순환하게 된다. 그리고 정당성과 지지세력을 구현하기 위한 과정 속에서 이들 담론은 서로 갈등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들 담론들은 주어진 특정한 국면에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회세력의 움직임이나 사건, 그리고 조직적인 운동과 맞물리면서 증폭되거나 폭발할 소지를 내장하기도 한다. 굵직한 사회적 사안에 개입하는 담론의 생산과 유포를 통해 다양한 사회세력들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전술적으로 - 많은 경우 공익 혹은 공공성의 이름으로 - 포장하거나, 때로는 대항담론의 생성과 배포를 통해 적극적으로 지배담론에 도전하거나 균열을 내면서 특정 이슈를 중심으로 한 의미와 힘 겨루기의 장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담론이 복수적으로 존재하고 서로 길항관계를 맺으면서 형성되는 공공적 담론의 장들은 때로는 민주주의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는 조건으로 하버마스가 설파한 합리적 소통과 의견교환의 장으로 기능하기도 하고, 공박과 근거 없는 주장이나 정파적 당파성이 난무하는 닫힌 담론들의 각축장 혹은 ‘담론들의 게토’로 변모하기도 한다.

 

3. 담론의 부상과 담론작용 : 푸코 효과와 푸코를 통한 문제제기

 

역사적으로 담론이론은 서구사회의 근간을 뿌리채 흔든 1968년 5월의 사태 이후에 객관성과 과학성 그리고 가치중립성을 내세우던 주류의 지식생산의 방식에 적극적으로 반기를 들면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런 측면에서 담론이론은 매우 정치적이고 급진적인 모습을 지닌다. 담론이론은 인간주체를 사회적인 의미생산과 행동의 중심에 둔 서구의 근대철학과 사회이론의 근간을 해체했다. 그리고 언어, 기호, 담론, 이데올로기, 욕망과 같은 새로운 개념들을 전면화하면서 인식론의 혁명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특히 이 부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 연구자는 미셀 푸코다. 푸코는 담론이 다양하게 얽힌 층위에서 사회적 실재와 사건들을 형성한다는 구성주의적 입장을 취하면서, 특히 담론이 주체와 자아, 사회관계와 지식의 체계를 형성하는 방식과 과정에 천착했다. 흔히 지식의 고고학이라 불리는 그의 전반기 연구에서 푸코는 한 시대의 지식의 질서와 체계를 구성하는 일종의 역사적 선험성(historical apriori)으로서, 혹은 일정한 시대에 인식의 지평과 문화적 구조를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하부구조로서 에피스테메의 형성에 대한 연구를 시도했다. 고고학은 역사적으로 지식이 권력과 결합되면서 형성한 지식생산의 근본적 조건과 규칙들을 마치 고고학자가 겹겹이 형성된 지층이나 단층을 세밀하게 분석하듯이 접근하는 방식을 말한다. 지식의 고고학은 담론들이 형성하는 효과와 역동성을 추적하기보다 담론이라는 익명의 규칙들의 집합과 질서의 형성에 주로 천착하는 상당히 구조주의적인 지향성의 한계점을 드러냈다. 그래서 푸코의 연구와 문제의식은 더 치밀하게 질병이나 지식, 성, 병원이나 감옥의 형성과 같은 역사적 대상의 형성과정과 사회 내로의 출현 및 배치과정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계보학으로 선회하게 된다.

고고학에서 계보학으로 나아간 푸코의 글쓰기, 더 나아가 담론이론이 특별히 주목한 것은 언어의 사회성과 물질성이었다. 언어와 상징, 기호와 상상의 영역을 통해서 사물과 제도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의미들을 획득함으로써 (재)인식되고, 그러한 의미화를 기반으로 제도 자체에 변화를 가져오는 역동적 능력과 과정에 대한 분석을 비판적으로 수행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담론이론은 과거에 홀대 받았던 언어와 상징 그리고 이데올로기들이 발휘하는 사회적 효과와 영향력을 재평가했던 것이다. 이는 매우 혁신적인 이론틀이었다. 기존의 주류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언어는 이미 존재하는 사물이나 사건을 투명하게 혹은 수동적으로 재현하는 부수적인 구성물이나 매개물 정도로 정의되었다. 하부구조, 계급, 체계, 경제, 혁명, 생산양식 등 제도적이고 물질적인 층위에 대한 이론화에 방점을 두었을 뿐, 담론, 텍스트, 상징, 기호와 같은 문화적이고 담론적인 영역의 역할은 부차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담론이론은 이러한 인식틀을 부정하면서, 언어를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힘이자,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변동에 내재하는 주요한 구성요인으로서의 역량으로 자리잡게 했다.

 

담론이론이 채용하는 지적인 자산을 살펴보면, 이 이론은 구조주의와 기호학적인 언어의 모델, 그리고 탈구조주의와 탈근대주의와 같은 두 개의 그룹을 지적이고 방법론적인 주요한 기반으로 삼는다. 첫 번째 그룹은 사회기호학, 사회언어학, 화용론, 스피치 액트 이론, 대화분석 등이 해당되고, 두 번째 그룹은 비판적 담론분석, 포스트-맑스주의, 민속지학, 수용자론 등이 해당된다. 전자가 도구론적으로 인식되던 언어의 개념에 반기를 들고, 언어와 소통의 문제 그리고 행위성을 연계시키는 비교적 좁은 범주의 언어학적 전통에서 부상한 이론들이라면, 후자는 언어와 권력, 언어의 역할을 제도적이고 물리적인 층위들과 유기적으로 접합해 접근하는 문화이론과 문화연구의 전통 속에서 부상한 이론들이다.

전자는 소쉬르의 영향 아래 확립된 구조주의의 영향이 지대한데, 특히 기호와 코드라는 장치들이 만들어내는 의미효과의 의미들의 실행에 주목한다. 후자는 기호학적인 의미화 과정에 대한 관심을 수용하지만, 동시에 역사성이 상실되고 언어외적인 영역에 마땅한 관심을 보이지 않던 구조주의적 언어관에 강력한 비판을 제기한다. 결국 담론이론은 구조주의와 일정한 역사성과 사회성을 구현하려고 하는 탈구조주의를 전술적이고 비판적으로 조합한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푸코의 영향을 받은 주류적 의미의 담론이론은 보통 후자를 이야기한다. 언어를 독립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체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물적인 다양한 제도와의 관계망과 접합과정 속에서 파악하며, 언어가 행사하는 능동성과 수행성, 언어가 형성하거나 매개하는 구체적 제도성과 물질 간의 접합과정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러한 담론이론은 크게 두 가지 입장을 지니고 있다. 첫째, 사회적 실재(the real)는 언어에 의해 상당부분 구성되거나 추동된다는 사회적 구성주의 입장. 담론이 형성하는 룰과 질서 안에서 인간사고의 지평이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다. 동시에 담론 자체가 일종의 주체가 되어 의미화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본다. 즉 담론은 우리가 사물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과 사물을 파악하고 해독하는 방식을 구조화하며, 발화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인지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제시한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 인식론적 측면에서 반본질주의와 지식의 상대주의, 그리고 반근본주의적인 입장. 담론이론은 어떤 사회적인 사안이나 대상이 본질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형성하고 매개하는 시대적 구조와 사회적 실천들에 의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재)형성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섹슈얼리티, 동성애 등은 역사적으로 고정된 인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기에 만들어지고 접합된 전문가 담론과 사회적 정책과 훈육권력의 작용에 의해 형성된 매우 복잡한 효과 내지 결과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정우(2005)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담론의 시대는 인식론적 상대성이 발견된 시대이기도 하다. 담론의 공간이 달라지면 주체의 성격 또한 달라진다. 따라서 담론의 종류가 비약적으로 증폭하기 시작했던 바로 그 시기가 인식론에서 상대주의가 첨예한 문제로 대두된 시기였다는 사실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보편성, 객관성은 이제 단지 주어진 어떤 것이 아니라 만들어야 할, 해결해 나가야 할 무엇이 된 것이다.”

담론이론이 추구하는 이러한 인식론적 상대주의는 나아가 정치적 다원주의, 그리고 주류담론에 의해 배제되었거나 소외되었던 ‘주변적 지식’들과 타자들에 대한 관심을 복원하려는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노력이나 현실개입과도 종종 결합한다.

 

4. 이데올로기와 담론

담론은 사회 내의 불평등하고 불균등한 권력관계를 반영하며, 언어와 상징, 기호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영역을 통해서 지배적인 권력관계의 유지나 피지배자들의 동의를 구하는 데 필수불가결하게 사용되는 요소다. 이런 이유로 담론이론은 맑시즘의 영역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헤게모니를 둘러싼 정치학과 이데올로기를 통한 주체형성의 이론을 선택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나아가 담론은 복수적으로 형성되며, 다양하고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합한 담론구성체를 형성하기도 한다. 담론구성체의 성립은 항구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 사회적 맥락과 조건을 통해서 형성되고 유지된다는 특징을 지닌다. 특히 담론구성체의 초기 형성과정은 필연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구체적인 국면에서 우발적 요소들의 결합으로 결정되며, 여기엔 필연적으로 권력작용이 개입하게 된다(Macdonnell, 1986; Simons, 1995).

 

담론구성체에서 만들어진 담론은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이해관계가 반영된, 자신이 명명하고 해석하는 사안을 특정한 방식으로 발언하고 능동적으로 지지를 유발시키려는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담론은 이데올로기가 물질화하는 장이다. 그렇지만 푸코와 주요 담론 이론가들은 이데올로기 개념을 사용하지 않거나 이 개념의 사용에 조심스럽다.

 

이에 대해 푸코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데올로기 개념은 세 가지 이유로 사용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로 우리가 그것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개념은 항상 진리와 같은 개념과 결정적 대립 속에 있다는 점이다. 내가 믿기로는 여기에서 문제가 된느 것은 하나의 언설에서 과하겅과 진리에 속하는 것과 다른 무엇에 속하는 것을 구분한느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어떻게 진리효과들이 그 자체로서는 진도, 위도 아닌 언설들 내에서 생산되는가를 보여주는데 있다. 두 번째 어려움은 이 개념이 필연적으로 주체와 같은 개념을 가리키는 데 있다. 세 번째로 이데올로기는 하부구조 혹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경제적이거나 물질적인 규정자리로서 기능해야만 하는 무엇과의 관계에서 이차적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나는 이러한 이유에서 이 개념이 반드시 신중하게 사용해야만 하는 개념이라고 믿는다.”

 

5. 문화연구와 담론분석

문화연구에서 담론이론에 대한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담론의 절대적 행위자성(agency)를 강조하는 라클라우와 무페의 작업. 이들은 담론이 사회적 구성물을 형성하는 주된 행위자라는 입장을 철저히 고수한다. 이들은 사회나 물질세계의 존재와 독립성은 인정하지만, 이들 세계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은 담론이라는 의미의 체계들의 매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시각을 취한다. 이들은 “담론 자체가 우리 사는 세상을 전적으로 구현한다”는 급진적인 입장을 취한다. 라클라우와 무페는 사회라고 우리가 흔히 인식하고 정의하는 대상은 담론과 제도 간의 접합작용에 의해서 끊임없이 구조화되는 존재인 동시에 완결될 수 없는 일종의 미완성품이자 불안정한 형성체로 인식한다. 나아가 이들은 경제나 물질적인 영역, 사회제도 역시 담론의 일부로 간주하며, 따라서 담론 자체는 언어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요소도 포함된다. 이들은 기존의 계급론을 비판하면서, 변혁의 주체로 상정되는 사회 내 다양한 주체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파편화되기도 하고, 다양한 접합과정에 의해서 유동적으로 변화되고 변형된다는 시각을 견지한다. 라클라우와 무페의 입장은 스튜어트 홀을 비롯한 영국의 문화 연구자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홀 역시 사회는 의미화와 담론 속에 존재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주체의 형성과 관련해서 특정한 계급이나 젠더와 주체의 형성 사이에 만들어지는 자동적 상응관계를 거부한다. 즉 계급적 배경이나 존재가 반드시 그러한 계급의 이익에 부합하는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반본질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홀이 바라보는 인간은 일관성 있게 통합된 주체가 아니라, 언제나 특정 조건 아래서 형성되고, 사회적, 종족적, 젠더적인 차이에 의해 생성되며, 그 결과 유동적이거나 미완의 상태에 있는 존재다

 

둘째, 푸코나 라클라우, 무페의 사회적 구성주의의 기본 전제를 상당수 받아들이되, 이들의 개념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으로 페어클라우와 그의 동료들이 주창하는 비판적 담론분석. 이들에게 담론은 언어학적이고 기호학적 구성물이다. 비판적 담론이론은 언어학적 자율성과 독립성을 인지하고 그 특성을 일정부분 유지한다. 동시에 담론이 사회적 실행과 재생산과정의 특정한 단면이거나 그러한 실행들이 이루어지는 특정 순간을 의미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담론이 제도적이거나 비담론적인 요소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이들에 의해서 불균등하게 영향을 받기도 하며, 양자간에 일종의 변증법적 관계가 성립된다고 본다.

한편 푸코가 인간주체를 담론이나 사회구조에 의해 형성되는 일종의 효과나 구성물로 보는 반면에, 비판적 담론이론가들은 인간주체가 언어적이고 담론적인 구성물만이 아니라, 이들 대상을 적극적으로 성찰적으로 활용하는 행위자라를 시각을 고수한다. 따라서 방법론적 측면에서 비판적 담론분석가들은 미시적 층위의 대화분석이나 텍스트 분석을 통해서 어떻게 복수의, 그리고 경쟁관계에 있는 이데올로기 담론들이 인간주체에 의해서 성찰적으로 수용되거나 새롭게 정의되는지 파악하고자 한다. 페어클라우(1995)에 따르면 때로는 이러한 개인들의 창조적 행동이 집적되면서 기존의 담론질서가 재구성되고 사회문화적 변화가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페어클라우가 해석학의 전통을 따라 담론의 해석자에게 너무 큰 역량과 능동성을 부여한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페어클라우와 그의 시각을 수용한 비판적 담론이론은 푸코, 라클라우, 무페와 달리 이데올로기 개념의 유용성을 인정하고 이 개념을 완전히 폐기하지는 않는다. 푸코, 라클라우, 무페 등은 사실을 은폐하는 일종의 허위의식의 담지기제나 무의식의 발현물로서 정의된 기존의 이데올로기 개념을 비판한다. 그리고 구조주의 맑스주의 이론가인 알튀세의 저작에서 지나치게 절대화되어 인식되는 이데올로기 호명과정이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도전, 틈새 내기, 응전 이데올로기의 존재 가능성을 과소평가했다는 측면을 비판한다. 이들은 이데올로기가 사회권력이나 훈육권력의 외부에 존재하거나 권력에 의해 도구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권력이나 훈육권력의 내부에 이미 존재한다고 지적하면서 이데올로기 개념을 폐기하는데, 페어클라우는 반대로 이 개념의 필요성을 인정하며, 이데올로기를 지배적 위치를 점유하는 담론들이 만들어내는 특수한 효과로 간주한다.

 

6. 비판적 담론분석을 통한 사례분석

비판적 담론분석은 사회언어학과 기호학 그리고 그람시의 헤게모니론과 푸코의 권력론을 선택적으로 조합한 접근방식이다. 비판적 담론분석의 이론적 측면의 기본 전제는 다음과 같다.

- 언어는 이미 존재하거나, 실재의 단순한 혹은 가치중립적인 반영물이 아니다.

- 언어는 담론으로 구조화되며, 이것은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일련의 그리고 복수의 담론들의 체계에 의해 이루어진다. 동시에 사회적으로 배분되거나 순환되는 의미들은 특정 담론에 따라 그 의미가 변한다.

- 담론의 유형들과 이들이 변하는 양상은 이들이 특정한 사회적 효과를 만드는 특정한 맥락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통해 탐구될 수 있다. (Phillips, L. & Jorgensen, 2002, p.12)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페어클라우와 우닥(Fairclough & Wodak, 1997)은 비판적 담론분석의 강조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비판적담론분석은 사회적 문제에 발언한다.

- 권력관계는 담론적으로 형성된다.

- 담론은 사회와 문화를 구성한다.

- 담론은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수행한다.

- 담론은 역사적으로 형성된다.

- 텍스트와 사회 간의 연결고리는 매개된다.

- 담론분석은 해석적이고 설명적이다

- 담론은 사회적 행동의 한 형태다.

 

비판적 담론분석은 언어 자체만을 분석의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언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는 맥락을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중심으로 검증한다. 누가 누구와 어떤 이유로 소통하고 있으며, 어떠한 사회적인 상황에서, 어떤 매개물을 이용해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며, 각기 다른 유형의 커뮤니케이션들은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으면서 진화하는지를 조사하는 것이 담론분석의 관심사다.

이 분석틀은 특정 사회 내의 권력과 지배,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에 관심을 가진다. 특히 관심의 초점이 되는 것은 지배적으로 사회 내에서 순환되는 담론들 속에 배치된 특정 용어나 기표가 어떻게 출현했고, 이데올로기적이고 계급적인 요소들을 담고 있으면서, 롤랑 바르트의 말을 빌리자면, 어떤 방식으로 일종의 현대판 ‘신화’를 형성하고 있는지 탐색하는 작업이다. 즉 비판적 담론분석은 사회적으로 유통되고 미디어를 비롯한 제도적 장치에 의해 조명되는 전술적 언어의 사용이 특정 사회적, 제도적 공간이나 일상의 영역에서 어떻게 사회통제나 지배계급이 선호하는 사회적 재생산과 헤게모니의 유지를 위해서 사용되는지 탐색한다(Fairclough, 1992).

 

이러한 탐색의 과정은 첫째, 특정 정치적 국면이나 맥락 속에서 미시적 층위의 텍스트나 장르 혹은 대화 분석을 이용해서 미디어 장르에 반영된 특정 입장이나 개개의 정치적 담론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둘째, 담론의 연결망이나 친화성을 고려하면서 장기간에 걸쳐 사회 내 지배적 담론이 어떻게 특정한 정치적 입장과 헤게모니를 둘러싼 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수행하는지를 더 확장해 동시에 과정적으로 밝히려는 작업이다.

 

7. 소결 : 담론분석의 명과 암

담론은 의미, 기호와 이데올로기, 의례, 상상과 상징을 질료로 사회 내에서 상징권력과 문화 그리고 일상의 영역을 가로지르며 매우 구체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담론이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때는 구체적 제도나 물리적 요인과 긴밀하게 결합되고, 인간주체에게 영향을 끼치고 그들의 행동을 규율하는 권력작용을 행사하는 경우다. 따라서 좁게 정의된 담론효과에 대한 과도한 강조나 담론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확장해 평가하는 분석은 담론의 외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류의 사회적 갈등관계와 투쟁의 함의나 물리력의 행사과정 속에서 발현되거나 스며든 폭력의 문제를 주변화하거나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담론작용에 주어지는 지나친 강조와 관심은 정치적으로 상당한 퇴행성을 지닐 수 있고, 인간주체의 역할을 과소평가한다는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한편 비판적 담론분석은 역사적 맥락이 매우 방대하게 전개되는 푸코식 담론분석 방식과 비교할 때, 연구자가 다루기에 비교적 용이한 경계와 영역이 선명한 미디어와 정치담론, 커뮤니케이션 현상을 다룬다. 이 방법론은 정치적 발화와 같은 대상을 세밀하게 분석함으로써 언어, 이데올로기, 그리고 권력작용간의 관계와 동학을 특정한 상황이나 국면에 위치시켜 탐색한다. 비판적 담론연구는 특정 텍스트나 장르 안에 담긴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을 징후적으로 파악하는 데 머물기보다는 이들이 연계되는 다양한 사회 내 실행을 분석하고, 분석을 통한 제도적 개입과 개선을 도모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우닥에 의하면 실행이 비판적 담론분석의 궁극적 목표가 되는 것이다. 연구자가 보기에 이 방법론이 치밀하게, 그리고 자기 성찰적으로 수행되지 않을 때, 현실개입과 비판적 지식실천을 강조하는 비판적 담론분석의 이상과 목표는 말 그대로 이상이나 발상에 머무를 수 잇으며, 경험적 분석과 이론화 과정, 현실 개입 사이에 채우기 어려운 간극이 생길 수 있다.

 

▢ 의미

읽기가 쉽지는 않은 논문이었음.

담론에 너무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하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끄덕끄덕..

담론은 담론일 뿐...

말과 글이 중요한 시대에 담론이 현실을 바꾸는 경우도 일상다반사이지만,

알고보면 말 이전에 어떤 욕망이 현실을 바꾸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수 있음.

결국 담론분석은 공식적으로 이야기된 이면의 어떤 숨겨진 이야기들, 그림자들, 의미들을 캐어내는 작업이 아닐까 싶은데.. 이 작업은 마치 정신분석학에서 어떤 한 단서를 가지고, 많은 것을 해석하는 작업과도 같은 작업이 아닐까 함. 고로 상당한 감수성이 필요.

또하나 너무 결론을 정해놓고, 작업을 하다가는 낭패당하기 십상. 누구도 할 수 있지만, 그래서 누구도 하기 힘든 방법론이 아닌가 싶음.

담론과 함께 제도와 역사적 맥락, 주체의 행동들을 함께 봐야 무언가 이야기가 풍부해질 것 같다는...

 

 

▢ 더 읽을 거리.

강준만(2003). 『오버하는 사회』. 인물과 사상.

Fairclough, N. (1992). Discourse and social change. Oxford: Blackwell.

Fairclough, N. (1995). Media Discourse. London: Edward Arnold.

Fairclough, N. (2000). New labor, new language?. New York: Routledge.

Fairclough, N. (2003). Analyzing discourse: Textual analysis for social research. New York: Routledge.

Laclua, E. & Mouffe, C. (1985). 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ies. London: Verso.

Hall, S. et al. (1986). Culture, media, language. London: Hutchi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