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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내 맘대로 감상문

2011년 5월 12일 TV와 감정의 표현

 감정을 가진다는 것이 본능적이고 생물학적인 것이라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사회적이면서도 문학적인 것이다. 얼마나 나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가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데, 그리고 개인의 인문학적 감수성을 키워나가는데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은 많은 부분 내 감정을 얼마나 표현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스스로의 감정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서, 타자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TV라는 매체, 더 나아가 인터넷이라는 매체는 원론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경험할 수 있는 장이면서, 감정 표현을 통해 타자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TV는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이번 개편에 신설되는 프로그램의 기획안을 훑어나가면서,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한국 사회의 TV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일상, 문화, 맛, 여행 등 각각의 분야에서 시청자들이 느끼는 감정들을 얼마나 풍부하게 반영하고, 또는 얼마나 창의적으로 표현하고 있는가? 너무도 관습화된 코드에 맞추어 감정의 표현이 획일화되는 것은 아닐까? 맛기행 정보 프로그램에서, 여행 프로그램에서, 뉴스에서, 국제시사 프로그램에서 현장에 참여한 사람의 감정이 표현되는 방식은 너무 정형화된 것은 아닐까? (또는 감정의 표현이라는 것이 다양한 방식으로 창출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물려 가장 창의적이라고 이야기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조차 기쁨을 표현하는 방식은 상황과 대상이 특정 트렌드와 인기스타로 수렴되면서 웃음의 다양한 표현 양식, 감정 양식을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이다. 어쩌면 TV가 인터넷에 밀리는 이유가 인간의 풍부한 감정 표현을 제대로 반영하고, 창조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매화꽃 졌다 하신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란 대답을 보내었소. 둘이 다 봄이란 말은 차마 쓰기 어려워서 (이은상, 개나리)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지극하면, 그냥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없어 자기 마음을 담아 전할 표현을 고심한다. 
봄을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지극하면, 그냥 봄이왔다,라고 말할 수 없어 그것을 담아낼 어떤 이야기를 고심한다.

 지금 TV에게 필요한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최종 개편안을 정리하면서 생뚱맞게 이런 생각이 드는 오후다. 이 고심 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이야기하는 것은 공허하다. 시청자들이 TV 콘텐츠를 통해 기대하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화학적으로 만나게 되는 감정의 울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고심하기에는 TV는 참 바쁘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노가다 공장이다. 즉각적으로 웃고, 울고, 분노하고, 소리치기에도 버거운....

"로맨스타운 1회 프로그램 분석 좀 부탁!"
"여수 엑스포 방송 조직표 좀 만들어줘."
"장수 프로그램 리스트 정리됐어?" 
"야 이 프로그램 협찬 때문에 시간 조정해야 한대. 어디로 가야 하냐?"
"일본 편성표 번역료 아직 입금 안되었는데요. 확인좀 부탁."
"개편 기자간담회 준비 얼마나 됐어요? 우선 책자 작업부터 시작하죠"

뭐~ 이런거다. 일상은..
이런 일상에서 감정의 표현에 대한 고민이란 
의식적인 노력 없이는 관행적이면서도 분주한 일상에 쫓겨 페이드아웃되기 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