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001. 정아씨가 1년 6개월간 가슴에 달고 있었던 수인번호. 4001을 달고, 여론의 뭇매를 마지면서, 그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억울함, 배신감, 분노, 절망, 좌절,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아픈 감정의 밑바닥까지 다 겪었을 듯 싶다. 그것은 그녀가 살아온 지난 시간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이 시대의 언론이 과도하게 그녀를 상품화시켜 융단 폭격을 한 결과이기도 하다. 정아라는 이름이 대중의 관심에서 조금씩 빗겨가면서, 그녀는 작정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토해내지 않으면 화병이 날 것 같은 마음, 자신에게 등을 돌린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의지, 공적인 영역에서 제대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섞여 4001은 탄생했다. 나는 그녀의 마음과 의지, 그리고 욕망을 존중한다. 그것은 언젠가 시간이 한참 흐른 뒤 30대 후반의 정아씨를 돌아보면 그녀를 부쩍 성장케 만드는 씨앗이기도 했다.
2.
4001, 책장을 넘길수록, 그녀가 쓴 문장을 보면 볼수록 씁쓸하다. 그녀는 지난 4년간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그녀는 스스로부터 솔직하지 못했고, 지난 개인의 아픔으로부터 캐어낼 수 있는 보물들을 성찰하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문제는 그녀의 글 속에는 수많은 남자와 그들이 바라보는 신정아만 있을 뿐, 그녀 스스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녀는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존재일 뿐, 스스로를 사랑하고, 스스로의 삶에 당당한 여자는 아니었다.
글은 그 사람의 오늘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4001은 신정아가 여전히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관점으로 설계하지 못하고, 여성 대 남성의 이분법에서 넘어선 인간 관계를 사유하지 못함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이 시대와 개인의 과거가 오늘의 그녀에게 부여한 삶의 방식이기도 했지만, 그녀는 지난 4년의 침묵 속에서 그 논리에서 과감히 이탈했어야 했다. 그녀 자신을 위해서... 그러나 이 책으로 드러난 바는 여전히 그녀는 과거의 신정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3.
지난 2007년, 정아씨는 자신의 잘못 이상으로 많이 다쳤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는 하필이면 당시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던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이었고, 조중동 등 당시 노무현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은 이것을 놓치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의 이야기는 대중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암흑 속에 8시간 갇혀있다 극적으로 구조된 20대 초반의 아이가, 미술계의 신데렐라로 등장, 승승장구하다가, 학력위조 파문과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무너지는 과정, 신데렐라가 순식간에 꽃뱀으로 전락하는 과정은 너무나 극적이어서, 우리 사회는 집요하게 그것을 즐겼고, 그녀의 마음은 잘못 이상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시간이 한참 흐르자, 언론과 대중은 정아라는 이름을 잊었지만, 그녀의 가슴에 남은 상처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깊은 흔적으로 남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 상처가 지난 4년간 원고지 8천 매 가량을 쓰게 만든 힘이었는지도 모른다.
4.
“만물은 평정을 얻지 못하면 소리 내 운다. 초목은 본디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흔들면 소리 내 울고, 물은 본디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치면 소리 내 운다. 솟구치는 것은 무언가가 그것을 쳤기 때문이며, 끓어오르는 것은 무언가가 그것을 막았기 때문이며, 끓어오르는 것은 무언가가 그것에 불질을 했기 때문이다. 금석(金石)은 본디 소리가 없지만 두들기면 소리 내 운다. 사람이 말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도무지 어쩔 수가 없어서 말을 하는 것이니, 노래를 하는 것은 생각이 있어서고, 우는 것은 가슴이 품은 바가 있어서다. 입에서 나와 소리가 되는 것들은 모두 평정치 못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맹동야를 보내는 글 중, 한유>
정아씨가 글을 쓰는 것은 가슴에 품은 바가 있어서며, 끌어오르는 것이 있기 때문이며, 울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글이, 원망과 변명의 문턱을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와 맞물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아씨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까지 나의 내밀한 이야기를 일일이 내보여야 하는지 고민스러웠지만, 사실과 다른,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풀린 이야기들을 바로 잡고 싶었다"며 "'소문속의 나'로 사는 것이 싫었다. 한번쯤은 신정아가 하는 이야기도 들어달라고 조르고 싶었다"고 에세이집을 내게 된 이유를 밝혔다. 프롤로그에서부터 이 책의 한계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부풀린 이야기들을 바로 잡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새로운 신정아를 쓰는 것이었다. 부풀려진 과거들, 왜곡된 과거들은 그게 아니라고 조르고 변명하는 것을 통해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말하는 신정아와 오늘의 신정아가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음을 드러냄으로서 재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다. 과거는 과거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내일을 향한 걸음걸이를 통해 다시 드러나고 평가받는 것이다. 아쉽게도 4001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있는 신정아만을 볼 수 있는 장이었다.
5.
그녀는 2011년 ‘4001’을 세상에 내놓음으로서 여전히 그녀가 2007년에 묶여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에 등장한 과거의 남자들이 법적 대응을 한다면,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 그녀는 2007년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공적으로는 우리 사회 권력층의 부패, 비윤리성, 마초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긍정적일 수 있지만, 그녀의 개인적 삶에 있어서는 100% 마이너스다. 물론 한 세상 살아가면서 지금의 선택이 자신에게 마이너스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시간들이 있다. 어쩌면 정아씨에게 2011년이 그런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2007년 신정아 사건이 우리의 기억에서 조금씩 지워졌던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2011년 ‘4001’도 그렇게 세상의 관심 속에서 지워질 것이다. 그것이 지워질 때쯤 정아씨가 다시 글을 낸다면 그 글은 ‘4001’ 수인번호를 털어 내는 글, 숙여진 고개를 당당히 올리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그녀에게 가한 폭력은 너무 잔인했지만, 그래서 나는 그녀가 보란듯이 이 세상에 새로운 이야기들, 새로운 가치들, 새로운 길들을 창조해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녀에게는 그런 열정과 욕심, 그리고 능력이 잠재되어 있다. '4001'은 그녀 자신에게 잠재된 가능성을 신정아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슬픈 자서전이다.이 글을 가볍게 넘어서지 못하면 40대의 신정아의 삶 역시 비극일 수밖에 없다.
6.
“소위 문장이라는 것은 반드시 마음속에 무엇인가가 차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군자들은 삼가 내실을 닦았지요. 내실의 아름답고 추악함은 가려지지 않고 그대로 드러납니다. 뿌리가 깊으면 가지가 무성하고, 모습이 장대하면 소리가 우렁차며, 행실이 엄격하면 소리가 서릿발 같고, 마음이 순정하면 기운이 조화롭습니다. 성품이 밝은 자는 글에 애매한 부분이 없고, 유유자적한 자는 글 또한 여유 있습니다. 몸뚱이를 갖추지 못하고서는 사람이 될 수 없고, 문사가 부족하면 문장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울지생에게 드리는 답장 中, 한유)
정아씨의 ‘4001’을 읽으며 글을 쓰는 것이 무엇인지, 글을 읽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사실 글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삶이 중요하다. 삶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 못하는 글은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정아씨가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그녀의 어제가 만들어 놓은 감옥에서 하루 빨리 탈주했으면 좋겠다. '4001' 그 다음의 삶과 글 속에서 장대하고 우렁찬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7.
어쩌면 지금 우리는 정아씨의 ‘4001’을 통해, 그리고 그것을 즐겁게 훔쳐보는 우리 자신의 시선을 통해, 새로운 길을 사유하지 못하고, 과거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매는 우리 시대의 모습, 관음증을 넘어서 새로운 관계를 상상하지 못하는 2011년 한국의 모습을 목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4001'은 신정아라는 개인이 아니라, 그것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든, 우리 시대가 만든 슬픈 유산물이다. 정아씨도 그렇고, 그녀를 바라보는 우리도 그렇고,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아씨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를 원망하고 변명하는 글이 아니다. 그 글을 관음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관계도 아니다. 오직 오늘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 그리고 그 가치를 새로운 판에 새겨넣을 (애정어린) 친구들을 만드는 것, 어쩌면 '4001'이 베스트셀러가 되어버린 출판계와, 그것을 이슈화하는 언론계와, 신정아의 이야기로 들끓는 소셜미디어와, 내가 기자이자, 감독이자, 미디어라고 외치는 디지털 세대와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슬픈 희생타가 되어버린 정아씨가 앞장서 만들어야 하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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