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 가장 핫한 인물이 누구일까, 돌아보면 이국종 교수의 이름을 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의 에세이 <골든아워>는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기록은 냉혹한 한국 사회 현실에서 업의 본질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각자의 선 자리를 어떻게든 개선해보려 발버둥 치다 깨져나가는 바보 같은 사람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흔적이다.”
이 책에 대한 출판사의 리뷰를 요약해보면 이렇습니다.
“2002년 이국종은 지도교수의 권유로 외상외과에 발을 내딛으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원칙대로라면 환자는 골든아워 60분 안에 중증외상 치료가 가능한 병원에 도착해야 하고, 수술방과 중환자실, 마취과, 혈액은행, 곧바로 수술에 투입할 수 있는 의료진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의 의료 자원이 신속히 투입되어야만 하지만 현실은 원칙과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이때부터 대한민국에 국제 표준의 중증외상 시스템을 정착하기 위한 그의 지난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 책은 2002년에서 2018년 상반기까지의 각종 진료기록과 수술기록 등을 바탕으로 저자의 기억들을 그러모은 기록이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사선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환자와 저자, 그리고 그 동료들의 치열한 서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냉혹한 한국 사회 현실에서 업(業)의 본질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각자가 선 자리를 어떻게든 개선해보려 발버둥 치다 깨져나가는 바보 같은 사람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흔적이다."
2018년 이국종 교수의 에세이가 빛을 발한 것은 “치열함”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는 “업의 본질,” “지속가능한 시스템”, “개인의 희생에 대한 안타까움”을 자주 피력합니다. 치열함을 무력하게 만드는 “자원배분”, “수익”, “우선순위”, “형평성”이라는 말에는 아픔을 느낍니다.
몇 가지 언어들을 발췌해보면..
시스템의 부재와 근거 없는 소문들, 부조리가 난무하는 환경에 맞서 팀원들이 힘겹게 버텨내는 동안, 나는 어떻게든 본격적인 지원을 끌어들여 우리가 가까스로 만들어온 선진국형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여태껏 해온 일들이 ‘똥물 속으로 빠져들어 가면서도, 까치발로 서서 손으로는 끝까지 하늘을 가리킨 것’과 같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곧 모든 것은 잠겨버릴 것이고, 누가 무엇을 가리켰는지는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p.9)
피는 도로 위에 뿌려져 스몄다. 구조구급대가 아무리 빨리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도 환자는 살지 못했다. 환자의 상태를 판단할 기준은 헐거웠고, 적합한 병원에 대한 정보는 미약했다. 구조구급대는 현장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병원을 선택할 것이어서 환자는 때로 가야 할 곳을 두고 가지 말아야 될 곳으로 옮겨졌고, 머물지 말아야 할 곳에서 받지 않아도 되는 검사들을 기다렸다. 그 후에도 다른 병원으로 옮겨지고 옮겨지다 무의미한 침상에서 목숨이 사그라들었다. 그런 식으로 병원과 병원을 전전하다 중증외상센터로 오는 환자들의 이송 시간은 평균 245분, 그사이에 살 수 있는 환자들이 죽어나갔다. (p.148)
손실을 만회할 방법이 없었다. 병원의 ‘ABC 원가분석’의 서늘한 칼날은 정확히 내 목을 겨누었다. 외상외과에서 당연히 이루어 져야 하는 것들 가운데 심평원의 기준을 충족하는 것은 거의 없었다. 심사 기준은 조정되지 않았고 외상외과 업의 본질은 바뀌지 않으므로 나는 계속 깎여나갔다. 대한민국에 외상외과라는 분야는 존재 불가능했다. (p.338)
팀원들 모두가 자주 아팠고, 아픈 것이 기본이 되어 아픔을 일상으로 여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아플 때에 아프다고 알리는 일조차 없었다. 어딘가 부러지고 쓰러질 때가 되어서야 보고가 되었다. 그것이 마치 이곳에서의 생존법칙인 것만 같았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원론적으로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말하고는 있으나, 사실 왜 지속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된 지가 오래다.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이 유일한 장점이었으나, 그것을 위한 대가는 너무 컸다. 쉴 새 없이 고꾸라져 나가는 팀원들을 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p.420~421)
그는 KBS2 <대화의 희열>에 나와 “정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냥 자기 일을 하는 거죠. 물론 첫 번째는 자신의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 모든 직업이 저마다 가지고 있을, 어찌 보면 당연해서 잊고 있었을, 구조대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을 구해야 하고, 의사는 어떻게든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 내 일의 교과서적 의미를 잊는다면 그때 정의는 무너지는 것.”
그 정의를 지키는 게 현실의 밥벌이 현장에서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시스템 때문에, 때로는 조직 논리 때문에...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나의 일이 무엇인가? 그 일을 잘 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그리고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이렇게 깔끔하고 단호하고 정갈하게 정리하는 이교수님의 치열한 현장감, 직업철학을 존경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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