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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쿨/독서일기

5월 23일 쓸쓸한 동생에게. <지금도 쓸쓸하냐>

1.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것, 상처로부터 자유로운 것, 우리에게 그것은 가능한 일일까요?

2. 지난주 오랜만에 동생 집에 갔습니다. 동생이 넌지시 이런말을 전합니다.           나 요즘 이상해. 시간이 흐르면 잊혀질 줄 알았는데, 점점 더 기억은 또렷해져. 밤마다 병원에서 보내던 시간을 살고 있어. 사고가 났던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쳇바퀴처럼 돌아가. 잊어야지하면 더 기억하게 돼. 힘들어 아퍼. 난 이렇게 아픈데 그때 울었던 사람들이 다시 웃기 시작해. 여행도 다녀. 난 여전히  그 시간을 멤돌고 있는데...

3. 저도 그랬습니다. 한참동안 나무 근처에 가지 못했고, 한참동안 TV에서 중환자실이 나오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과거의 아픈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운 것 쉬운 일이 아닙니다.

4. 나는 여전히 아픈데, 세상은 참 잘도 돌아간다고 생각할 때 어떤 기분이 드나요? 그 마음을 굳이 표현하자면 쓸쓸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 제 동생이 쓸쓸함에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5. 문득 동생에게 다음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이현주 목사님의 <지금도 쓸쓸하냐>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6. 선생님 오늘 종일토록 참 쓸쓸했습니다. 알고 있다 축하한다. 그게 어째서 축하받을 일입니까? 무엇보다 네가 아직 살아있지 않느냐? 죽은 자는 쓸쓸할 수 없다.

7. 왜 쓸쓸한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왜 쓸쓸한지 알아냈느냐? 곁에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만, 전에도 사람 없는 데서, 온종일 말 한마디 없이 라디오도 듣지 않고 지내봤는데, 그때엔 쓸쓸함이 느껴지지 않았으니, 곁에 사람이 없어서 쓸쓸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결국 왜 이렇게 허전하고 쓸쓸한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아내지는 못했습니다.

8. 지금도 쓸쓸하냐? 모르겠습니다. 쓸쓸함도 너에게 온 손님이다. 지극 정성으로 대접하여라. 어떻게 하는 것이 쓸쓸함을 잘 대접하는 겁니까? 쓸쓸한 만큼 쓸쓸하되, 그것을 떨쳐버리거나 움켜잡으려고 하지 말아라. 너에게 온 손님이니 때가 되면 떠날 것이다.

9. 언젠가 읽었던 김형경씨의 <좋은 이별>이 생각납니다. 사람도 감정도 잘 보내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잘 떠나보내는 이별 작업, 애도 작업의 마지막 단계는 잃은 대상을 마음에서 떠나보내는 일이라고 합니다. 죽음 쪽으로, 텅 빈 상실 쪽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적절한 시점에 과거의 인물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과거의 인물과 관계 맺으며 형성한 과거의 자기도 떠나보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10, 과거의 자기와의 이별, 결코 쉽지 않지만, 그렇게 이별하지 않으면 오늘의 나는 여전히 어제의 세상을 살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그러기엔 오늘 바라보는 태양, 바람, 하늘이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11. 그 이별 과정에서 느낄 수 밖에 없는 외로움, 쓸쓸함. 이 감정은 어쩔 수 없습니다. 제 동생이 쓸쓸할 때 쓸쓸한만큼 쓸쓸했으면 좋겠습니다. 울만큼 울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그냥 손님이니깐요. 손님처럼 맞이하고 손님처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12. 쓸쓸한 동생이 생각나는 오후, 오빠가 몇 자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