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는 오늘을 기록하는 매체다. 지난주부터 지상파 3사는 천안함 특보 체제로 전환했다. 어디 방송만 그런가? 한반도의 시선은 지금 백령도에 쏠려 있다. 처음 천안함 침몰 사고를 접한 토요일 오전, 왜라는 질문이 먼저 내 뇌신경을 자극하는 것을 느끼면서 약간 씁쓸함을 느꼈다. 질문의 선후가 잘못 되었다는 느낌? 너무 이기적이고 원초적인 질문이라는 느낌? 뭐~ 그랬다.
천안함 침몰 사고를 처음 접하면서 나는 그 사고 현장보다 그 사고의 배후로 의심되는 북한을 먼저 생각했다. “또 북한짓이군~~.” 이건 의식적인 게 아니라,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반응이다. 북한의 공격에 대한 의심과 불안, 그리고 적대감? 나는 의식적으로 그런 것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나의 무의식은 어떤 큰 재난이 있을 때마다 자동반사적으로 북한을 염두해둔다. 이 무의식적 반응. 조금은 무서운 거다.
이 의심과 불안은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 나는 분명 TV를 통해 천안함 침몰 사고를 보고 있는데, 정작 내가 보는 것은 그 안에서 죽고, 울고, 아파하는 누군가가 아니라, 저 멀리서 그 실체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추상적이기만 한 북한의 무언가라는 거다. 이건 오늘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내 안의 감옥이다.
제대로 본다는 것. 인간이기 때문에, 살아가고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너무도 중요하다. 차갑고 서러운 서해 바다 안에서 영문도 모른채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수십명의 젊은이가 나의 애인이라면... 나의 자식이라면... 내 남편이라면... 반대로 내가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의 바다 속으로 잠겨 들어가는 상황이라면...
나는 어떤 느낌일까? 무엇을 원할까? 무엇을 후회할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천안함 침몰 사고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내 친구일수 있고, 아들일수 있고, 남편일 수 있는 사람이 인간으로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군 당국은, 방송은, 그리고 이 사회는 조금은 둔감하다. 모두가 시끄럽고 궁금해하지만, 정작 그 시끄러움에 예민함을 찾기란... 쉽지 않다. 솔직히 누군가의 죽음과 아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사실상 쉽지 않다. 병자의 눈에만 병자가 띄고, 고수만 고수를 알아보는 것처럼, 세상의 아픔과 죽음은 마음에 같은 아픔과 죽음을 간직한 사람만 보는 법이다. 그러나 적어도 갑작스런 죽음에 눈물 흘리는 누군가에게 이 사회가 기본적인 예의는 지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삶에서 실종된 사람들과, 그들을 다시 삶으로 건져내길 소망하는 사람들과, 울부짖다 목이 쉰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백령도 절벽에 서 있다. 살아있다는 소망과 죽어가는 현실 사이의 간극은 넓다. 이 간극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예민함과 섬세함과 예의가 필요하다. 분노한 실종자 가족들에게 국가가 총구를 겨누고 위협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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