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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분석과 정치경제학의 조우 가능성 (류웅재, 2010)

뚜벅뚜벅뚜벅 2012. 6. 12. 00:00

류웅재 (2010). 담론분석과 정치경제학의 조우 가능성에 대한 탐색적 연구. <언론과 사회>, 18권 4호, P 37~73.

 

▢ 주요 내용

 

1. 문제제기

담론분석은 텍스트를 특정한 맥락 내에서 두껍게 읽거나 장시간에 걸쳐 텍스트의 기원과 변화양상을 계보학적으로 기술하는 것일 뿐 아니라, 텍스트와는 일견 무관해 보이는 텍스트 바깥의 사회구조적 요인에 대한 분석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텍스트나 수용자의 미시적 범주를 넘어 거시적이고 구조적 층위에 대한 분석에 관심을 두는 정치경제학적 분석은 담론분석과 일정 정도 그 방법론이며 이론적인, 나아가 이념적인 지향점을 공유한다. 이 논문의 담론분석과 정치경제학이 맺는 유기적 관계를 밝혀 커뮤니케이션의 방법론적 논의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2. 비판적 담론분석의 쟁점

담론분석은 구체적이고 현존하는 텍스트를 중심으로 특정 텍스트의 드러나거나 혹은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고, 텍스트에 내재된 단서를 중심으로 보다 거시적이고 일반적인 논의로 확장해나간다는 차원에서 충실한 텍스트분석을 기본으로 한다. 동시에 담론분석은 특정한 발화의 의미가 생성되는 사회적 맥락에 관심을 갖고, 말해진 것과 말해지지 못한 것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특정한 배치와 이것의 함의에 대해서도 분석한다. 이는 언어가 언어를 통해서만 정의될 수 없고, 기호 가치를 성립시키는 힘이 기호들 간의 구별만큼이나, 실제 지시대상 간의 관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담론분석에서 텍스트는 발화자와 수신자 사이의 언어적 의사소통의 도구로 이해될 수 있다. 발화자와 수신자는 역사적으로 제약된 존재이며, 외적 의사소통의 조건인 시간, 장소, 상황 그리고 내적 조건인 발화자 및 수신자의 생물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적 소여의 사실들은 텍스트의 작성과 지각행위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이를 통해 텍스트는 역사적 단위가 되고, 동시에 정적인 것이 아니라 과정적인 역동성을 갖게 된다.

담론분석에 있어 텍스트의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점은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에 관한 것이다. 페어클라우는 텍스트 간의 상호텍스트성이란 다른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 얻어오는 특성을 지칭하는데, 예를 들어 다른 텍스트와 동일시, 반대, 반향 등을 통한 명백한 분리 내지는 동화 등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즉 텍스트의 상호텍스트성이란 텍스트의 모든 의미는 다른 의미와의 작용을 통한 의미의 축적과 생산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한 텍스트에서 다른 텍스트를 차용하는 것은 의미와 관계적 특성의 표현인 것이다. 이러한 상호텍스트성의 전제는 텍스트의 역사성을 명백하게 드러내주고, 텍스트가 문화적으로 다르게 위치한 텍스트들이 경합되어 새로운 구조로 만들어진 산물임을 보여준다(Fairclough, 1992, p84; Barker & Galasinski, 2009, p 107~108).

한편 담론은 사회적으로 구성될 뿐만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기도 한다. 곧 담론은 상황, 지식의 대상, 인간 및 집단 간의 상호 관계와 정체성을 구성한다. 여기에서 구성적이란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하나는 담론이 사회를 현 상태로 유지하고 재생산한다는 뜻과 또 다른 하나는 담론이 사회를 변혁하는 데 기여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한 특징으로 인해, 담론분석은 공평무사하고 객관적인 사회과학을 지향하기보다 사회적 실천에 관심을 가지고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특징을 보인다. 담론의 실천이 특정 맥락 하에서 사물들을 재현하고 사람들을 위치지음으로써,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생산(재생산)하는데 기여하며, 이로 인해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지니지만, 이에 대한 반대와 피지배/피억압 집단의 관점에서 지배 집단에 대립하는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담론의 형성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3. 푸코의 담론이론과 양가성

미셀 푸코는 언어가 어떻게 사용되고, 이러한 언어의 사용이 다른 사회적, 문화적 행위들과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인식론적 관심을 보인다. 즉 언어의 사용과 일반적인 문화행위는 대화 또는 다른 문화적 텍스트나 행위와의 잠재적 갈등 속에서 일어나며, 푸코는 이를 대화적인 것으로 보았다. 이런 의미에서 담론은 권력과 분리될 수 없다. 담론은 기존의 제도들이 정의나 배제의 과정을 통해 권력을 휘두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푸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특정 담론이나 담론적 구조들이 어떤 주어진 소재에 대해 말할 내용을 미리 정해 준다는 것이다. 이 담론적 구조는 특정 분야에서 무엇이 쓰이거나 생각되고, 또 행해질 수 있는가를 조절하는 불문율의 덩어리이다. 니체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푸코는 지식이 권력의 무기로 사용된다는 그의 관점을 취한다. 바꿔 말해 푸코의 목적은 우리가 진리를 만듦으로써, 즉 진리와 거짓의 행위가 곧바로 논리정연하고 타당해 보이는 영역을 확립하게 함으로써, 어떻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게 되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권력이 담론을 통해 작용하는지를, 그리고 이 담론이 항상 권력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권력이 지식을 생산하며, 권력관계를 전제하지 않거나 형성시키지 않는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Storey, 1999, p135~136)고 본다.

이렇게 다양한 담론들이 특정지식에 관한 어떤 것이 아니라 지식자체를 구성한다는 입장은 지식과 이런 지식을 구성하는 권력관계가 담론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푸코의 입장은 그의 후기저작 중 하나인 <권력과 지식(Power/Knowledge)>에 잘 드러나 있는데, 이 저작에서 등장하는 핵심 개념이 통치성(governmentality)과 진실레짐(turth regime)이다(Foucalut, 1980). 푸코는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한 프란시스 베이컨의 명제를 뒤집어 ‘힘이 곧 아는 것이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지식이 권력을 생산해내기도 하지만 권력이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예를 들어 하나의 권력은 그 자신의 권위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진리라는 명목 하에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시키는 기능을 하게 되는데 푸코는 이러한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진실레짐이라고 명명한다. 더 나아가 이렇게 진리라는 이름으로 생산된 권력이 자신의 틀에 맞는 규율을 만들어낼 때, 그 규율에 맞지 않는 모든 것은 거짓이나 비정상적인 것이 되고 만다. 이러한 진실레짐에서 개인이 정상성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주체나 자아를 만들어 내려는 것을 자기 통치, 혹은 통치성의 기술이라 부른다.

푸코의 통치성이란 개념은 지식과 권력, 정상성과 구조, 담론과 자기통치 등 다양한 측면을 포괄하는데, 이는 단순하게 인간이 스스로를 어떻게 통제할 것이며 어떻게 남을 통제할 것인지, 그리고 누가 우리를 통치할 것을 결정하거나 인정하는지 등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ex. 21세기 신자유주의, 효율, 성장이라는 담론이 우리의 인식구조에 상식처럼 자리잡은 과정을 생각해보면 통치성이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그런데 통치성 개념은 권력이 지식을 만들어내고, 권력이 정상이라고 이야기하는 방향으로 개인이 주체나 자아를 만들어 내려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지식과 권력의 관계에서 비판하고 저항하며 투쟁할 수 있는 행위자로서 주체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의도를 내재하고 있다(Foucalut, 1978; 윤평중, 2003, p 177.)즉 푸코는 테크닉이라는 개념을 통해 담론을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표상하고 이해하는 도구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천을 가능하게 하면서 그것을 틀짓는 수단으로 본다. 그런 차원에서 그의 논의는 전술한 (비판적) 담론이론과 유사성을 공유한다. 여기에서 자기의 테크닉(techniques of the self)은 자기자신을 변화시켜 어떤 이상적인 존재의 상태에 이르기 위해 자신의 몸, 영혼, 생각, 행위 등에 가하는 일련의 작업을 위한 테크닉을 말한다.

푸코는 기본적으로 구조주의자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즉 개인의 주체적인 움직임보다, 그 개인을 포월하는 사회적 구조, 권력의 힘에 관심을 둔다. 그렇지만 푸코의 후기 저작에는 구조와 함께 주체성, 인간의 실천, 자기의 테크닉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됨을 볼 수 있다(이에 대해서는 푸코에 대한 다른 논의에서 이야기할 것이다). 푸코가 구조에 쪼그라든 개인을 넘어, 새롭게 부각시키려 한 주체성의 차원은 주체가 스스로에 대해 맺는 자기와의 관계이다. 이는 말하고, 생각하고, 행위하는 방식, 즉 존재의 양식은 자기를 이해하고 통제하는 성찰적 실천을 통해 형성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하며, 자기의 테크닉은 바로 이러한 성찰적 실천을 위한 특정한 논리와 절차를 지칭한다(Foucault, 1987; 1988; 이범준, 2010).

푸코의 통치성이라고 하는 분석틀로부터 우리는 자본주의적 주체화의 계보학적 분석(genealogical analysis)이며, 자본주의의 역사적 지배, 혹은 자본주의의 변화와 주체성의 변형 사이에 놓인 관계를 효과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 또한 미디어와 문화 영역 등을 변화시키려는 국가의 정책이나 제도가 어떻게 구체적인 효과를 발휘하게 되는지를 이해할 때에 유용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국가가 개인을 억압적으로 지배하는 통치권력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이 스스로 통치하는 주체로서 제도나 진실레짐을 지지하고 참여하는 가운데 만들어가는 역동적인 과정을 설명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4. 정치경제학에 대한 몇 가지 오해

정치경제학은 자원의 생산, 분배 및 소비를 상호 구성하는 사회관계나 사회적 총체성(social totality), 특히 권력관계들에 대한 비판적이고 포괄적인 접근(holistic approach)으로 정의될 수 있다. 특히 정치경제학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지배하는 힘 또는 요인이 무엇인지 이해하고자 할 때 상호간의 모순적 개념을 분석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정치경제학은 사적소유와 사회적 생산의 모순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런 이유에서 정치경제학은 사회변동과 역사적 변환을 이해하는 데 주요한 관심을 두고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밝혀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Mosco, 1998; 문상현, 2009; p 80).

미디어 산업의 정치경제학은 자본주의에서 생산, 소비되는 정보나 문화를 권력의 불평등, 세력, 이익의 차원에서 평가하고 이것들이 부자와 권력자의 이익에 봉사하는 방식을 비판하고 대안을 찾거나, 미디어 산업이 광고나 대중문화 등을 어떻게 독점자본의 이윤을 실현하는지에 주목한다(Smythe, 1977; Meehan, 1999; 김승수, 2009). 나아가 미디어 정치경제학은 자본주의 하에서 문화산업의 구조 및 정책적 요인들이 대중문화 및 미디어 텍스트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에 작동하는 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일련의 맥락화된 정치적 결정과 경제적 동기, 엘리트의 이해관계, 한 사회의 지배적 담론들이 특정한 매체와 문화콘텐츠를 통해 발현되는 양상에 대해 주목한다. 그런데 지금껏 미디어 정치경제학은 대부분 커뮤니케이션 제도의 소유와 통제 등에 관해서만 다루는 것이라는 이론적, 방법론적 틀거리로 이해되어온 점이 적지 않다.

 

5. 담론분석과 정치경제학의 조우 가능성

푸코는 물질적 조건들을 통제하는 사회의 구조적 힘과 우리를 설득하고 이데올로기나 상식처럼 사회적으로 우세한 견해에 자발적으로 따르게 만드는 담론적인 힘이 늘 동전의 앞뒤 면처럼 연관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구조적 힘과 담론적 힘의 관계는 서로를 보완하며 강화시키는 상보적 역할을 한다. 곧 담론적 힘이란 사회의 각정 기관 및 주체들이 자신들의 정책과 정치적 행위를 정당화하고 구성원들로부터 합의를 얻어내 목표를 달성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일종의 자기방어적 기제이다. 한편 물질적 힘과 지원, 토대를 갖추지 못한 담론의 힘은 모래위에 쌓은 성처럼 불안하고 위태로운 것이다. 그러므로 담론적 힘은 언제나 예외 없이 구조적 힘의 존재와 조건에 조응하며 이와의 관계 속에서 심화되거나 강화되며 또 확대 재생산되는 속성을 지닌다.

이런 차원에서 담론분석은 정치경제학적 방법론과 일정한 유사성을 공유할 수 있다. 최근 정치경제학은 우선 이론적 차원에서 자본주의 사회하에서의 소유와 소유관계의 통제, 힘과 권력의 관계, 계급과 생존의 문제,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구조적인 불평등의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개선하기 위한 적절한 저항과 개입의 전략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이런 인식론적 시각으로 인해 정치경제학은 정치와 경제에 대한 결절적인 분석을 넘어, 언제나 역사, 사회, 문화와 지배적인 담론에 관한 총제적이고 종합적인 분석을 시도하는 방법론적 전략을 구사한다.

커뮤니케이션학의 관점에서 정치경제학은 문화, 미디어 현상을 후기자본주의 혹은 포트스포디즘적 발전과정이라는 보다 큰 사회경제적 맥락 속에 위치지움으로써 문화를 탐구함에 있어 총체적이며 중층적인 시각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가령 하비(David Harvey)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에서 기표들의 무한한 환유를 가능하게 하는 물질적 힘이 사실은 자본의 회전수와 가속화로 인한 시간과 공간의 압축(time-space compression)임을 밝혔다(Harvey, 1989). 이는 사회와 문화의 텍스트호를 다룸에 있어 자본의 과잉축적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우쳐, 문화의 생산보다는 소비에 과도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텍스트주의적 문화연구의 편향성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 볼 수 있다(최종렬, 2003, p 211~212).. 문화현상의 분석에 있어 이러한 비판적 정치경제학의 요소들을 가벼이 여길 때 문화산업이 제공하는 기호의 현실적 효과나 쾌락을 강조하는 문화주의 혹은 텍스트주의에 함몰되거나, 상품화, 물신, 소외처럼 자본주의의 부정적 영향만을 강조하는 비관주의에 빠질 우려도 상존한다(Harvey, 1989, 1999).

 

▢ 짧은 의견

내 문제의식과 접목해 있다. 그래서 조금은 자세히 읽었는데, 뭐라고 할까 다 읽고나니 약간 공허한 느낌이다. 너무 이론적이고 원론적이라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핵심은 양 진영이 공히 지향해오던 비판적 정신을 바탕으로, 양자의 창발적 접합을 희망해본다는 것인데... 음... 동의하면서도 공허하다.  통섭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들을 때와 같은 심정..

그리고...

나는 이상하게 정치경제학의 단순성, 모든 문제를 전지구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로 환원하는 관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정하면서도, 그다지 재미가 없다.

 

담론분석이 텍스트 밖을 마음껏 상상하는데 있어 정치경제학적인 관점을 차용하겠구나,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경제학의 방법론적 프레임을 좀 더 공부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는 것이 수확이라면 중요한 수확.

 

어쨌든 정말 중요한 것은 내게 담론도, 정치경제학적 맥락도 아니라, 그것을 배경으로 한 주체의 실천, 선택, 푸코가 말한 자기의 테크닉이다. 나는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담론도 정치경제학도 공부하는 거다. 이건 잊지말자..

 

▢ 더 읽을 거리

류웅재 (2008). 한국 문화연구의 정치경제학적 패러다임에 대한 모색 : 한류의 혼종성 논의를 중심으로. 『언론과 사회』, 16-4, p 2~27.

문상현 (2009). 미디어 정치경제학의 학문적 지형과 이론적 과제. 『한국언론정보학보』 봄호 (통권 45호), p 77~110.

조항제 (2008). 한국의 비판언론학에 대한 비판적성철 : 문화연구와 정치경제학을 중심으로. 『한국언론정보학보』 가을호(통권 43호), p 7~46.

Althusser, L. (2001). Ideology and ideological state apparatus in Lenis and philosophy and other essays. New York, NY: Monthly Review Press.

Harvey, D. (1989). The condition of postmodernity. 구동회 역(1994).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 한울.

Harvey, D. (1999). Limits to capital. 최병두 역(1999). 『자본의 한계』. 한울.

Harvey, D. (2005). A brief history of neoliberalism. 최병두 역(2007). 『신자유주의』. 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