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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2] 배신과 삶에 대하여 배신은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의 시대 배경인 1940년대, 50년대의 혼돈을 보여주는 또 다른 이름입니다. 한 사회가 개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시대뿐만 아니라 평온한 시대에서도 배신은 인간의 단골 메뉴 중 하나죠. 우리는 그만큼 자주 가까운 사람을 배신하고, 또 그들에게서 배신당합니다. 아이라는 의붓딸 실피드의 절친 패멀라와 마사지사 헬기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습니다. 반대로 아내 이브는 그와의 결혼생활을 고백한 책을 통해 아이라를 배신합니다. 의붓딸 실피드는 엄마 이브를 배신하고, 아이라의 절친 박제사는 아이라가 공산주의자임을 폭로합니다. 모두가 믿는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배신하는 이야기, 그것이 바로 필립로스가 응시하고자 하는 삶의 진면목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인간에겐 믿을 수 없는 여러 모습.. 더보기
통즉불통, 통하면 아프지 않다. 통즉불통이라는 말을 들어봤는지. 通則不痛 통하면 아프지 않다. 이것은 동양 의역학을 대표하는 아포리즘이다. 이른바 통한다는 것, 흐른다는 것은 건강하게 산다는 뜻이다. 반대로 아프다는 것은 어딘가가 막혀있다는 거다. 통하고 막히는 것, 이 경계는 실로 다양합니다. 몸과 마음, 나와 너, 몸과 조직, 몸과 우주, 물질과 정신 등등. 요즘 곳곳에서 부동산 값 때문에 말들이 많은데, 사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문명은 그것이 자본, 효율, 이윤, 생산성 등을 강조하기 때문에 아프지 않은 게 쉽지 않다. 자본의 논리는 통함을 욕망하지 않고 축적과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한) 최소비용과 (누군가의 수익을 가로채는) 최대수익과 독식과 배제를 욕망하기 때문이다. 나와 네가 분리되고, 물질적으로는 넘치고 넘치지만 정신.. 더보기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1] 좌절의 공간을 떠나지 못하는 인간들에 대하여. 필립로스가 쓴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필립로스의 팬이 되었습니다. 책을 덮은 후 “필립로스”에 대한 검색질을 시작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목소리는 2015년 절필 선언을 한 후 한 인터뷰에서 했던 이야기입니다. “매일 매일의 절망과 굴욕을 견뎌낼 힘이 더 이상 없다. 쓰는 것과의 투쟁은 끝났다." 그렇습니다. 필립로스의 책을 따라 읽다보면 이건 투쟁이자 싸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집요하게 쫓아가고, 끈덕지게 묻고,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게 세상, 관계, 삶에 메스를 들이댑니다. 스스로에게 묻고, 질문하고, 답하는 방식이 참 대단합니다. 그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삶의 절망과 굴욕을 온 몸으로 현시하는 일이며, 그것과 싸우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문장 하나 하나, 스토리.. 더보기
[대화의 희열] 김숙의 자유로움 [대화의 희열] 1회는 재미있습니다. 왜 재미있었을까, 생각해보면 그건 90% 갓숙때문입니다. 첫 방송 시청률은 2.1%. 수치는 정직합니다. 나는 재미있게 봤어도, 대부분은 그러지 않았다는 겁니다. 갓숙의 이야기를 듣는 패널은 공교롭게도 중년 아재들로 수렴되었고, 그 중 누군가는 잘 듣지 못했고, 누군가는 어색했고, 주변의 경쟁 프로그램은 너무 강력했습니다. 방송 종료 후 인터넷에는 수많은 질타가 쏟아졌습니다. 갓숙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패널은 죄다 아재새끼들인 거냐? 이런 지적들을 어떻게 듣고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어쩌면 [대화의 희열]의 생로병사를 판가름하는 주요한 준거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이 프로그램이 좋았습니다. 내가 왜 “김숙”을 좋아하는 지를 이해하게 돼서 .. 더보기
기의 흐름과 비움에 대하여 가을이 왔다. 바람이 분다. 파란 하늘을 바라보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경복궁의 옆자락 길을 걷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무언가 그 걸음과 함께 내 안의 기운이 잘 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동양 의역학에서 건강함이란 기의 흐름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흐름이 막히면 거기서 병이 생긴다. 그렇다면 어떻게 흐름을 원활하게 할 수 있을까? 이게 관건이다. 경복궁 옆자락에서만 아주 잠깐 흐름이 좋으면 뭐해? 일상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면.. 그런 생각이 문득 드는 거다. 기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과 보폭을 맞추어 가는 거다. 낮과 밤, 기의 조절은 하루의 일상을 태양의 리듬을 따라가는 것에서 시작한다. 하루는 일생의 축소판. 나는 매일 아침 태어나고 매일 저녁 죽는다. 이것은 은유가 아니.. 더보기
[제국의 구조] 6부 자본주의의 끝, 거기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다시 제국이다! 마지막 이야기. 이야기는 서양에서 시작합니다. 이유는 하나. 지금의 오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럽”이 창조한 근대라는 개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죠. 유럽 여행을 하다보면 엄청난 교회와 성당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데요, 유럽의 중세는 교회=세계의 세상이었습니다. 중앙아시아가 세계=제국의 시스템으로 움직일 때 제국의 변방 유럽은 세계=교회의 시스템 위에 자리잡고 있던 것입니다. 세계=교회에 대한 반란은 종교개혁이라는 형태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붕괴 속에 자리잡은 것은 절대왕권이었습니다. 절대왕권은 왕을 신성화하지만 그 왕권이 봉건제후를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은 도시 또는 시민계층과 결탁하면서입니다. 왜 민중의 지지에 의해 민중을 통치하는 절대자가 출현했을까요? 이 비밀을 사회계약에서 찾았던 것.. 더보기
[오늘의 탐정] 상처받은 자들의 이야기, 호러와 탐정의 콜라보. [오늘의 탐정]을 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 미니시리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호러가 더해진 탐정물이거든요. 1~2회 이야기는 대단히 신선하고 재미있습니다. 의 시작은 흥신소가 아니라 탐정이라고 주장하는 이다일(최다니엘)이 실종된 아이 세 명을 찾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범인은 어린이집 선생님 찬미(미람)인데요. 이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이 정도 수준이 아니구요. 찬미를 뒤에서 조정하는 보이지 않는 손, 아니 보이는 손이 있는 겁니다. 창백한 표정과 빨간 원피스를 입고 나온 선우혜(이지아)가 그 “손”인데요. 탐정 이다일은 어린이집 지하에서 아이 둘을 구하지만 정작 이 사건을 의뢰한 아버지의 아이를 찾으려다 누군가 휘두른 망치에 쓰러지고, 비오는 새벽 땅에 파묻힙니다... 더보기
늪에 빠진 경제정책에 대하여 문재인 정부에 대한 작금의 여론이 좋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이유는 하나, 경제정책때문인 것 같습니다. 관련하여 주진형 이사님이 한겨레 신문에 칼럼을 하나 기고했는데 한번즈음 곱씹을 부분이 많습니다. 뉴스 1)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늪에 빠졌다. (한겨레신문, 2018년 9월 14일)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전 대표이사는 묻습니다. 왜 일자리와 소득주도성장엔 그렇게도 과감한 정부가 부동산과 가계부채에는 소극적이고 미봉책 남발에 급급할까? 그러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파퓰리즘에서 찾습니다. 고통이 따르기 때문에 국민에게 인내를 부탁해야 하는 일은 피하고 있다는 것이죠.그러면서 최근 경제정책 중 가장 큰 이슈가 된 최저임금 인상과 부동산 문제를 화두로 잡습니다. 이 두 문제는 사실 성격이 다릅니다. 최저임.. 더보기
[제국의 구조] 5부 세계=경제 시스템의 도래와 제국의 쇠퇴 제국은 몽골의 전과 후로 나뉩니다. 근대 각지의 제국, 이를테면 투르크 제국, 러시아 제국, 무굴 제국, 청 제국 등은 모두 몽골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몽골의 지배가 가져온 중앙집권적 국가체제와 광대한 판도, 그리고 다민족을 포섭하는 제국의 원리는 이들 제국에 고스란히 남아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 제국은 예외 없이 19세기 서양열강에 의해 동반 몰락하게 됩니다. 도대체 서구열강의 무엇이 제국을 쇠퇴하게 한 것일까요? 15세기 전후까지만 하더라도 서양은 변방 중의 변방이었습니다. 거대한 아시아와의 교역에 참여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시아에 가서 팔 산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투르크 제국에 의해 길도 막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콜럼부스로 표상되는 대항해의 시대는 그렇게 시작.. 더보기
[제국의 구조] 4부 도덕적 탁월성과 제국의 관계 [제국의 구조] 네 번째 이야기. “로마제국이 번영했던 것은 로마인의 ‘도덕적 탁월성’에 의해서이고 그것이 멸망한 것은 도덕적 타락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개개인의 도덕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 자체의 존재방식을 의미한다." (p. 127) [제국의 구조] 3~4장은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며 다양한 제국들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와 로마제국, 그리고 당, 원, 청으로 이어지는 중원의 제국들. 이 묘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단어는 ‘도덕적 탁월성’이었어요. 도덕적 탁월성이 한 개인의 도덕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 자체의 존재방식을 의미한다는 것, 이건 제국하면 떠오르는 힘, 폭력, 복종, 무력 이런 단어들과 사뭇 상반된 느낌이더라구요. 그렇다면 제국과 도덕적 탁월성은 어떤 관계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