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 스쿨/뉴스 놀이터

공유경제의 최전선? 난 오버라고 생각한다.



이재웅 쏘카 대표는 흥미로운 기업가입니다. 다음 창업자로 벤처기업 1세대를 대표합니다. 2007년 다음 경영에서 물러나 사회 혁신 투자자로 지내왔는데요, 20184월에는 차량 공유 스타트업 쏘카의 대표가 됐고, 7월에는 기획재정부 혁신성장본부 민간 공동본부장을 맡았습니다. 10월에는 쏘카의 자회사 VCNC가 모빌리티(이동) 플랫폼 타다를 출시했습니다. 타다는 한국 진출이 막혀 있는 우버와 유사한 사용자 경험을 국내법에 맞춰 제공하는 길을 찾아낸 건데요. 천관율 기자는 그의 행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돌아온 이재웅 대표는 일관되게 혁신과 공유경제를 정조준한다. 이 흐름에 한국이 올라타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그는 믿는다. 그는 스스로를 기업가라고 되풀이해 강조하지만, 사업 아이템은 하나같이 사회와 맞닿아 있다. 그가 말하는 혁신이 성공하려면 기업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


자 그럼 그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시사인 천관율 기자의 <공유경제 최전선에 카풀과 택시가 있다> 인터뷰 기사를 토대로 한겁니다. 

 

전문을 보고 싶으시면 아래 기사를 클릭. 


우선 작금의 택시 논란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요?

이 이슈가 단순히 택시만의 문제일까? 그러기엔 너무 뜨겁다. 어마어마한 사회 변화의 흐름이 여기 집약되어 있다. 우선 공유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깔려 있다. 다음으로 기술혁명이 있다. 이건 결국 자율주행차까지 간다. 피할 수 없다. 더해서, 이런 큰 변화에 기존 사회체제나 제도가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걸려 있다. 택시 기사들의 노동은 어떻게 될까? 우리 사회가 어떤 식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할까? 새 패러다임, 새 기술, 새 사회문제가 동시에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곳이 바로 모빌리티 시장이다.”


기실 천관율 기자가 이야기한 많은 논리들(앞 블로그 글)은 이재웅 대표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변화하는 세상의 전장이 곧 모빌리티 시장이라는 건데요, 그 모빌리티 시장에서 이재웅 대표는 쏘카와 타다라는 플랫폼을 만들었죠. 이 플랫폼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택시와는 어떤 차이가 있고, 외국의 우버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택시와 우버, 그리고 타다 사용자 경험은 사실 별 차이는 없다. (다만 자동으로 결제되고, 기사와 대화할 필요가 없으며, 승차거부가 불가능하다는 점 등등) 이런 아주 작은 개선들이 모여서 사용자 경험을 더 색다르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도 놀랐는데, 그 정도의 개선만으로도 이용자들은 아주 큰 혁신을 경험했다고 느낀다. 다만 우버와 비교할 때 타다는 차이가 있다. 우버는 차량도 소유하지 않고 기사도 고용하지 않지만, 타다는 둘 다 한다. 비용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버보다 20%만큼 효율성을 더 유지하면 우버만큼 수익이 난다고 본다. 우리 알고리즘을 비롯한 기술 개발로 가능하다고 믿는다. ”


사실 이재웅 대표가 타다라는 플랫폼을 세상에 선보인 것은 단지 기업적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그렇게 천관율 기자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기자는 묻습니다. '타다'는 비즈니스 모델이라기보다는 프로파간다(선전) 모델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게 프로파간다인지는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공유경제를 경험하도록 만들고 싶다. 한국은 이런저런 규제로 그게 막혀 있었다. 우리가 직접 예시를 보여주면서 시장을 형성해보자는 것이 차량 공유 회사 쏘카의 취지였고, 거기에서 좀 더 나간 것이 타다다. 사회에 이런 수요가 존재하는지, 그게 잠재력이 있는지, 또 이런 서비스에서 기사가 되려는 분은 어떤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지 예시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사실 말로만 공유경제, 공유경제를 외치는 사람들에 비해 현장에서 이러한 새로운 예시를 보여주는 사람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현장에서 고민했던 어떤 가치들을 새로움으로 창조해가는 기업가가 어찌 섹시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가 이 사업을 통해 공유하고픈 가치, 사회문제란 뭘까요?

 

자동차를 소유하는 데서 생기는 문제가 매우 크다. 한국에 승용차가 1800만 대쯤 있다. 환경 문제, 교통체증 문제, 주차장 문제 등등 자원 낭비가 매우 크다. 그런데 사람들은 편하게 이동하려는 욕구가 있다. 공유경제는 이 욕구를 충족시키면서도 차량 소유를 줄여준다. 공유는 자산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개념이다.”


그가 이 사업을 하는 이면에는 20세기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한국 도로의 고질적 문제이면서 의 상징으로 기능하는 (너희 아빠) 무슨 차 몰아?”가 있는 거네요. 그는 승용차가 환경 문제, 교통 체증 문제, 주차장 문제 등등 수많은 문제를 배태하는 허브라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이 승용차를 소유하지 않고 편하게 이동하는 방법이 무언지를 고민했고

그것의 잠정적 결론이 타다였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듭니다

편하게 이동하려는 욕구를 좀 더 편하게 충족시켜준다면 자동차 소유에 대한 욕구가 줄어들 것일까


왠지 고개가 갸우뚱하지만, 만약 그렇다하더라도 좀 더 깔끔하고, 좀 더 프라이버시가 존중되고, 좀 더 결재가 편한 개인 택시를 늘리면 되는 것 아닐까

어쩌면 타다는 총량제와 제한된 면허 시장으로 공급이 한정된 현재의 택시 시스템의 변화를 촉발하는 게 아닐까


한마디로 택시의 공급을 늘려 승용차 소유를 줄이는 것, 이게 목표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 목표에는 당연히 택시를 운전하는 아저씨들의 반발이 예상될 수밖에 없는데요. 밥벌이와 관련되어 있으니깐요. 이에 대한 이재웅 대표의 의견은 어떨까요?


질문 : 택시는 면허 시장이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공유경제 혁신이 좋은 일이라고 해도, 면허 소유자들이 결집해서 반대하면 이뤄내기 어렵다.

답변 : 맞다. 정치인도 택시 면허 소유자들 말을 듣는 게 편하다. 그래서 정치인을 불편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그들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따라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사회 전체가 이 문제로 논쟁을 하고 시끄러워져야 한다.


뭔가 쓰리쿠션 당구를 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승용차가 문제라면, 그것을 풀어야 하는 장은 승용차 시장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건들기 어려우니 승용자의 구매 동기(편하게 이동)”를 건들고, “공유 경제를 건들고, “택시를 건듭니다. 그리고 옮음과 그름의 프레임이 적용됩니다. 택시 면허 소유자를 옹호하는 것은 자신만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것, 공유경제 혁신을 옹호하는 것(타다를 옹호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이익을 따라가는 것


전 이런 이분법의 언어가, 내가 이재웅 대표를 섹시하게 느낀다고 하더라도 참 불편합니다. 좀 격하게 말하면 그것이 나의 언어가 될까 무섭습니다. 우리 사회의 보편적 언어가 되고 있는 것이 두렵기도 합니다. 사립 유치원을 다루는 방식도 이 언어 스타일과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타다를 옹호하는 것이 왜 사회 전체의 이익을 따라가는 게 되는 걸까요? 이재웅 대표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택시 면허는 일종의 기득권이고 지대(제한된 재화를 가진 덕에 얻게 되는 이익). 어떻게 버티더라도 이 지대는 10년이면 사라진다. 자율주행차가 다니기 시작하면 사람 운전사를 쓸 이유가 없다. 택시 회사 비용의 70%가 인건비인데 이걸 떼어낼 수 있다. 2023년이면 사람 운전자가 완전히 필요 없는 자율주행차가 판매 차량의 12%에 이를 거라는 예측도 있다. 이건 10년도 아니고 5년 뒤다. 기술만 보면 거의 가까이 와 있다. 예를 들어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에서 특정 도시를 지정해 여기는 자율주행차만 들어올 수 있다, 이렇게 실험한다고 치자. 그러면 몇 년 안에도 완전 자율주행 도시가 구현될 수 있다. 세계의 주요 도시들이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피츠버그나 피닉스에서는 벌써 자율주행 택시가 다니고 있다. 서울은 출발도 못했다. 데이터도 뒤처져 있지만,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사회제도의 준비다. 전혀 대비가 안 되어 있다. ... 지금 전국 택시 면허의 가치가 법인과 개인 면허 합쳐서 16조원 정도 된다. 어느 날 16조원이 갑자기 증발할 텐데, 그 혼란과 반발과 충격을 견딜 수 있을까. 이런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이행 과정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빨리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논리는 이런 것 같습니다

택시 면허를 가진 개인 택시 아저씨는 일종의 기득권층이다

이 기득권은 자율주행차가 다니기 시작하는 10년이면 사라진다

그 시간이 되면 택시 면허의 가치(16)가 갑자기 증발할테고, 그 혼돈과 충격을 견딜 수 없을 거다

이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빨리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더불어 자율 주행차는 세계적 대세인데 서울은 전혀 준비가 안되어 있다. 얼른 준비해야 한다.


. 제가 바보인가요? 이 목소리에서 왜 타다를 옹호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택시 면허의 가치가 10년 후면 자율주행차 때문에 갑자기 증발하여 엄청난 혼돈과 충격이 온다하는데, 이건 좀 오버고 과장이죠. 가짜뉴스죠


기술과 사회 변화, 그리고 미래를 논할 때 이런 과장과 프로파간다는 자칫 잘못된 발걸음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쉽습니다. 자율 주행차, 중요한 이슈입니다. 그리고 가야 할 방향이고 갈 수밖에 없는 방향입니다. 다만 정책결정자가 그것을 검토할 때 보고 싶은 것만 보거나, 과장을 하는 순간 기획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수 있습니다


자율 주행차 문제에 있어 중요한 것은 왜가 아닙니다. 어떻게죠. 자율주행차와 사회를 접목시키는 방향에 있어 디테일의 미학이 필요한 거죠. 이재웅 대표의 목소리만 들었을 때는 좀 깜짝 놀랄 부분이 있습니다. 이렇게 접근하면 안되는 것 아닌가? 그가 정부 일(기획재정부 혁신성장본부 민간 공동본부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아주 긍정적으로 해석해보면, 이재웅 대표처럼 치고 나가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는 게 또한 우리 사회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고, 그렇다면 이재웅 대표는 논쟁적인 화두를 던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재웅 대표가 기업을 넘어 국가의 영역에서 일을 하게 된 이유는 한국 사회에 혁신의 바퀴가 잘 안 굴러간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혁신성장 이야기를 국가에 해야겠다는 게 큰 동기였다는 것이죠. 사실 지금 한국 사회의 침체된 기운을 생각할 때 이재웅 대표 같은 분이 중요한 의사결정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신기술이 사회에 부드럽게 안착할 수 있도록 이행 과정을 잘 관리하고 이행 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기술이 노동을 대체하게 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구조, 점점 더 과감한 도전이 어려워지는 구조 하에서 정부가 기본적인 사회안전망과 기본소득을 보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합니다. 혁신을 일으켜서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의 세금도 더 늘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걷은 세금으로 사회보장을 강화해야 사람들이 뭔가 모험적인 시도를 해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사회가 지속가능해야 자본주의도 지속된다는 믿음 하에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기업을 고민합니다.

 

어떠세요? 이런 고민을 가진 사람이 던진 화두라면 한번즈음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다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혁신이든 뭐든 놓치지 말아야 할 것

그것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는 것이죠

하이테크 기술과 보통 사람, 멋드러진 혁신과 평범한 거리

우리는 자주 하이테크과 혁신의 이야기에 열광하지만

그 열광, 혁신, 기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보통 사람들, 평범한 거리에 대한 애정과 응원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없는 혁신과 기술? 

뭐~ 어쩌라구?